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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 | 인터뷰
수많은 ‘아무개’를 기억하는 방식
동학 현장을 담아내는 사진작가 김갑련
고다인 기자(2023-07-10 17:14:29)



수많은 ‘아무개’를 기억하는 방식

동학 현장을 담아내는 사진작가 김갑련



고운 한복 치마 위로 이름 모를 들꽃이 둥그렇게 놓여있다. 그냥 보면 어여쁜 꽃 사진이지만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사발통문을 표현한 작품이다. 들꽃 하나하나가 이름 없이 스러져간 한 명 한 명의 농민군이다. 작가 김갑련 씨는 동학농민혁명을 색다른 창작 사진으로 풀어냈다. 그동안 미술이나 문학, 영화 등의 분야에서는 동학을 주제로 작업이 자주 이루어졌지만 사진으로 혁명의 의미를 재해석한 시도는 새롭다.   






이미지로 이해하는 동학농민혁명 

전시장 맨 앞자리에 사발통문을 비유한 작품이 걸린 이유는 따로 있다. 사발통문은 본격적인 혁명을 일으키기 전, 이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이들의 결의를 상징한다. 다음은 정읍의 배들평야가 펼쳐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일대는 당시 혁명의 씨앗이 된 수탈의 현장이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나열하며, 관객들이 이미지로서 동학농민혁명을 쉽게 이해하길 원했던 그는 정읍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50번 넘게 답사하며 작품을 얻었다.


“목적이 명확한 작업이다 보니 스스로도 푹 빠져서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해가 뜨고 지는 때를 기다리며 혼자 밤 새우기도 하고, 되도록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실제 시간에 현장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동학농민군의 혼이 서려있는 고부관아 옆의 향교는 네 번이나 방문했는데요. 관아 터는 사라졌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남아있어요. 세 번째까진 보이지 않다가 네 번째 갔을 때 우연히 나무 뒤쪽에 마치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을 포착했죠. 당시 싸워야만 했던 농민군의 표정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절규>라는 작품이 바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김갑련 <혼불>


개똥이, 무명씨, 아무개라는 제목을 나란히 달고 있는 세 작품이 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여기에 숨어있다. 전봉준 장군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 외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그들로 인해 우리는 민주와 자유, 평등과 평화를 누리며 풍요로운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실제 사용하는 밥그릇에 수국을 가득 담아 촬영한 <꽃밥>을 마지막 작품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다. 흔히 동학농민혁명을 표현한 미술작품은 강렬한 분위기를 품지만 그의 사진은 대부분 나무와 들판, 하늘과 같은 자연물을 담아내며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일명 건지산 예찬론자로 불리며 오랜 시간 자연을 애정해온 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집 바로 뒤에 건지산이 있어서 거의 매일 산책을 다녔어요. 1년에 한 200번은 오른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며 프리랜서로 오래 일하다 보니 안정적으로 출근하는 직장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내 나이에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에 많이 위축되더라고요. 그때마다 건지산을 올랐는데 평범한 나무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은 한 그루가 유독 햇볕에 반짝였는데요. 평범한 나도 언젠가 빛나고 주목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무에게 위로 받으면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죠. 덕분에 2020년 <건지 나無> 전시로 나름의 데뷔도 하게 됐어요.” 


그는 관광을 전공했지만 대학에서는 방송국장을 지냈고,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10년 넘게 일 해왔다. 여행 기사를 쓰거나 취재를 다니며 사진을 찍다보니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게 됐다. 전북도립미술관 사진아카데미의 학생이던 그는 이제 그곳의 강사가 되었다. 올해는 전주대학교 공연영상사진학과 대학원을 졸업, 끊임없이 사진작가로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성장하고 있는 그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학농민혁명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알고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그는 앞으로는 역사를 더욱 세분화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전 <꽃밥>은 6월 6일부터 11일까지 교동미술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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