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문화, '플레이'에서 '관전'으로
게임을 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 즐긴다니, 모순된 이야기 같지만 'e스포츠'와 '스트리밍 문화'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대가 흐르며 게임을 향유하는 문화 또한 변하고 있다. 이제 유저들은 직접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타인의 플레이를 관람하는 형태로 게임을 즐긴다. 게임 산업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e스포츠와 게임 스트리밍 문화를 통해 게임 산업의 현재를 내다본다.
e스포츠
게임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e스포츠’, 그중 한국의 e스포츠 문화는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리자드사에서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는 그해 가을 정식 출시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며 국내 게임 문화를 이끌었다. 이후 국내 프로게이머들이 해외의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국내에도 프로게임리그의 필요성이 제시되었고, 1999년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을 시작으로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활성화된다. 2000년 한국 e스포츠협회가 창립하고 선수 관리와 대회 방식 등이 체계화되었으며, 홍진호나 임요환과 같은 스타 프로게이머들이 탄생하며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식고 승부조작을 비롯한 사건들이 발생하며 잠시 주춤했던 e스포츠는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일명 '롤')’ 등 인기 게임이 등장하고 해외 자본이 거대 유입되며 다시 한번 부흥한다. 현재 국내에는 수십 개의 e스포츠 프로팀이 존재하며 팀 별 팬덤도 형성되어있다.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은 국내에만 10개가 넘고, 직접 경기를 보는 '직관' 문화도 활발하다.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e스포츠는 ‘스포츠’로서 성장해있다.
인기에 힘입어 e스포츠는 최근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올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진정한 ‘스포츠’로서 데뷔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게임이 가지는 폭력성과 선정성이 스포츠 정신과 맞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일반적인 스포츠들이 그 시초를 알 수 없는 것에 반해, 게임은 특정 회사의 사유물이며 저작권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저작권료를 게임 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또한 국제 대회인 만큼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자칫하면 특정 게임의 광고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게임 회사들의 로비 우려도 있다. e스포츠의 스포츠화는 이러한 난제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게임 스트리밍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는 이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콘텐츠는 '게임'이다. 게임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이 게임하는 모습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계하고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몰입한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게임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때로는 훈수를 두기도 한다. 게임에서의 '리뷰'는 합리적인 소비를 위한 정보를 넘어 재미를 위한 콘텐츠로 사용되고 있는 것.
스트리밍 문화는 넓게 보면 게임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직접 먹는 것 대신 먹방 시청을 택하고, 드라마를 챙겨보는 대신 핵심만 요약한 리뷰영상을 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게임 스트리밍은 시청자와 스트리머가 함께 소통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일방적인 중계가 아닌 게임을 매개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보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즐긴다.
게임 스트리밍에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저작권'이다. 게임도 엄연한 창작물이기 때문에 저작권은 해당 게임회사에 귀속되며, 특히 게임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스트리머의 경우 더욱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넥슨, 스팀 등 게임 분야 대기업들은 홈페이지에 2차 창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소규모 인디게임 회사들이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저작권을 어긴 사례를 발견하더라도 게임 스트리밍에 의한 홍보 효과가 매우 큰 편이기 때문에 제제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인 저작권이 보장되어 건전한 스트리밍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숙제가 되고 있다.
게임, 과연 예술인가
혹은 굳이 예술이어야 하는가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1항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및 뮤지컬 등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을 말한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는 ‘게임’의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들여다봤다. 그렇다면 ‘게임’은 ‘예술’로도 볼 수 있을까. 작년 9월 문화예술진흥법의 개정에 따라 게임도 문화예술의 한 분야가 되었다. 게임이 문화예술로 편입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대중문화가 확산되고 문화예술의 영역이 넓어지며 '고급', '순수' 등으로 설명되던 예술의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예술의 영역 중 상업적인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이 '게임'이다. 문화예술에 편입시켜 기존 게임 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산업을 확장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목표 또한 반영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게임이 예술이라는 사회적, 제도적 합의는 완성되지 못했다. 게임이 예술이라면, 게임 개발자는 예술가인가? 게임 회사는 예술가집단 혹은 예술단체인가? 게임 직군 종사자는 예술인복지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가? 이러한 일련의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답을 내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또한 게임이 상업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지나친 과금 유도와 선정적인 광고, 폭력적인 스토리, '아이템 뽑기'로 인한 사행성까지. 일부 게임은 공공성을 띄는 '문화예술'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여러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예술계에서는 이미 게임을 예술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다.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은 팩맨, 테트리스, 심즈 등 유명 게임 14점을 소장품 목록에 포함시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5월 열린 전시 '게임사회'를 통해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문화에 미친 영향을 되짚었다. 공연도 예외는 아니다. 2020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메타 퍼포먼스:미래극장'을 연주했다. 이는 게임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에 실시간 중계 되었으며, 온라인 관객들이 게임 플레이어처럼 명령어를 선택해 공연 진행 방식을 결정했다. 또한 24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밤을 새며 게임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예술의 관점에서 게임은 굉장히 매력적인 분야이다. 게임 안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영화나 문학이 예술가가 설정한 세계를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인데 반해, 게임은 그 세계 속에 유저가 직접 들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업데이트'라는 제도를 통해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 또한 특징이다. 게임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가능성을 최대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예술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계기는 게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