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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 | 문화현장
다양한 시각으로 채집한 역사의 풍경
제16회 전주국제사진제
고다인 기자(2023-12-04 18:28:44)

전쟁이 남긴 과거와 현재의 참상

‘블랙투어’ 주제전에는 여섯 명의 작가(박종우, 노순택, 장일암, 이재각, 주용성, 박도)가 참여해 다양한 전시관에서 각기 다른 테마로 전시를 선보였다. 가장 먼저 걸음 한 서학동사진미술관에서는 소설가이자 역사저술가로 활동 중인 박도 작가의 ‘나를 울린 한국전쟁 한 장면’을 만났다. 흑백의 사진 속에는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이 사진들은 모두 박도 선생이 미국 워싱턴의 ‘NARA(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묻혀있던 사진들을 직접 발굴하며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는 NARA를 수없이 방문해 수십만 장의 사진을 일일이 눈으로 보고 손수 스캔하는 집념을 보이며 지금의 우리가 한국전쟁의 참혹한 장면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11년 동안 기자로 근무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취재해온 박종우 작가는 현재 세계 각지의 오지를 탐사하며 사라져가는 문화와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사진가이다. 서학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그의 전시 ‘역설의 풍경_DMZ’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10년, 그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인 DMZ를 기록하기 위해 나섰다. 국방부가 이를 위해 DMZ를 개방하며 60년간 민간인 출입이 불가하던 곳에서 최초의 사진 촬영이 이루어졌다. 종전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자 시각적 결과물인 DMZ를 중심으로 6.25전쟁 이후의 풍경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분단은 멀미를 자아낸다”

아트갤러리전주에서는 세 작가의 테마전이 열렸다. 그 중에서도 초점이 흐려진 채 잔뜩 흔들린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노순택 사진가의 전시 ‘멀미’이다. 부조리한 사회 풍경에 주목해 온 그는 오랜 시간 서부, 중부, 동부전선을 오가며 버스 안에서 북한을 바라보았다. 온전히 담아보려 애써도 흔들리는 버스에선 풍경들이 제멋대로 담겼다. 멀미가 날 것 같으면 찍기를 포기하고 그냥 바라보기도 했다. 분단의 풍경들은 이 과정처럼 멀미를 자아낸다고 그는 말한다.

이재각 작가는 ‘하제, 바다와 기지 사이’라는 제목으로 군산의 바닷가 마을인 하제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들이 뛰놀던 옛날의 하제를 기억하는 그는 마을 위를 지나는 전투기의 비행훈련 소리를 듣고 하제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진 속의 마을은 평화롭고 고요하지만 그 안의 의미를 듣고 나면 커다란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용성 작가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죽음에 관심을 두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터를 촬영한 ‘붉은 씨앗’을 선보였다. 장일암 작가는 ‘희미한 네거티브’를 통해 참전 군인의 유품에서 발견한 필름들을 공개했다. 1949년부터 6.25전쟁 기간, 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 사이에 찍은 것들로, 얼룩지고 부패된 필름들이 대부분이지만 ‘네거티브’한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 역사를 있는 그대로 느끼도록 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쟁은 멀리 있지 않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소식으로 세계가 또 한 번 떠들썩하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봐야하는 이유는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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