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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 | 특집
무대와 객석, 작품과 관객의 경계를 지우다
배리어프리, 함께 누리는 문화예술
고다인 기자·류나윤 인턴(2023-12-28 17:51:56)


배리어프리, 함께 누리는 문화예술

무대와 객석, 작품과 관객의 경계를 지우다


장애예술 담론 플랫폼 <모두예술주간 2023>


'배리어프리(Barrier-Free)', 여전히 이 단어가 생소한 사람이 많다. 최근 생겨난 용어인가 싶지만 알고 보면 1974년, 건축계에서 생활환경의 물리적 장애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말이다. 50년 전 등장한 이 단어는 점차 분야에 상관없이 쓰이기 시작하며 문화예술계에도 ‘배리어프리’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배리어프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예술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린이, 노인 등 우리 사회의 약자에게 편의를 더하며 비장애인에게는 공연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의 몇몇 대규모 공연장에는 ‘접근성 매니저’라는 이름의 직원이 존재한다.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이다. 지난 10월에는 국내 최초의 장애예술 전문 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이 문을 열었다. 전체 공간을 평평하게 만들어 장애인의 편의를 높이고, 휠체어석 수에 맞춰 좌석 규모의 조정이 가능하도록 구성하는 등 장애 예술인과 관객 모두를 생각한 표준공연장이다.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올해는 지역 안에서도 배리어프리를 앞세운 현장이 적지 않았다. 모두가 누리는 문화예술, 그 의미를 우리 일상 속 다양한 현장에서 찾아보았다.


무장애 무용극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

공연의 A부터 Z까지, ‘함께’ 하는 길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더해 제작한 무용극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은 국립국악원, 전주세계소리축제 등에 초청되며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11월 3일과 4일 국립민속국악원은 해당 공연을 ’무장애‘ 무용극으로 재구성해 선보였다.

공연 예매부터 모든 과정에 배리어프리를 접목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언어 장애인들을 위해 실시간 통신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손말이음센터'를 통해 예매를 진행했다. 공연 시작 전에도 특별한 시간을 준비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작품의 내용을 사전에 이해할 수 있도록 실제 무대를 축소해 소품과 의상 등을 직접 만질 수 있는 ‘터치투어’를 마련한 것. 이는 일반 관객에게도 공연을 새롭게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작품 소개와 공연장 안내는 음성 및 수어 자막을 넣은 영상으로 제작해 편의를 더했으며, 점자가 있는 팜플렛을 제공하는 등 세심한 노력이 엿보였다.

배리어프리 공연의 음성해설은 일반적으로 개인용 이어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음성해설자가 직접 무대에 등장하여 동화책을 읽어주듯 진행된 점도 눈에 띈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올해 리모델링 과정에서 휠체어를 위한 보행로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바닥에는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등의 방향을 표시해 공간 자체의 배리어프리 실천에도 앞장섰다. 앞으로도 매년 다양한 국악작품을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제작해 선보일 계획이다.


제1회 무경계 락페스티벌 '날다’

배리어프리와 대중음악의 만남

지난 10월 7일, 부안에서는 특별한 락페스티벌이 열렸다. 부안군문화재단이 주최ㆍ주관한 〈제1회 무경계 락페스티벌 ‘날다’〉이다. 국내 대부분의 배리어프리 공연이 무용, 연극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중음악 분야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이 열린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웠다.

실내 공연장이 아닌 야외에 세워진 부안군청 특설무대에서 진행되어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방해'라고 생각되는 관객의 소음이나 움직임까지도 모두 받아들여졌다.

시각장애인 2인과 비장애인 3인으로 구성된 '배희관밴드'를 비롯해 크라잉넛, 로맨틱펀치, 맥거핀 등 국내 인기 밴드들이 무대에 올랐다. 청각장애인도 함께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음악에 맞춰 진동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우퍼조끼를 구비해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음악을 전했다. 또한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고 수어통역사가 무대에 함께 올라 '액티브 수어'를 펼치며 실감나는 연기로 공연의 현장감을 더했다.

‘무경계 체험 부스’에서는 저시력장애 안경과 우퍼조끼를 체험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 도내에는 배리어프리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지역 내 배리어프리 문화예술 기획자를 양성하기 위해 '무경계 아카데미'를 운영한 점도 주목된다. 정식 페스티벌 전 10월 4일 사전 진행하여 '배리어프리 문화예술기획' 특강과 '배리어프리 예술 창작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교동미술관 디지털 배리어프리

손과 귀로 감상하는 미술관


대부분의 미술관에는 작품과 함께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그렇다면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관람할 수 있을까. 공연예술뿐 아니라 전시 공간의 배리어프리 역시 이러한 기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시 관람에 불편함이 없도록 음성해설과 수어 가이드, 점자 인쇄물 등 무장애 요소를 최대한 반영한 전시로, 입체 작품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촉각전시를 기획하는 사례도 있다.

전시 분야는 특히 수도권에 한정된 실천에 아쉬움이 있었으나 최근 우리 지역에도 반가운 변화가 엿보인다. 전주 교동미술관은 올해 디지털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구축해 신체와 언어, 문화의 장벽을 허문 디지털 기반의 관람 환경을 조성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통한 <모두의 미술MoA> 사업의 일환으로, AI키오스크, 촉각패드 키오스크, 디지털 LED패널, 디지털작품 반응형 체험존 등을 제공한다.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키오스크를 통해 주요 소장품의 특정 작품을 선택하면 촉각패드를 통해 해당 그림이 점자 형태로 나타난다. 작품을 보는 대신 만지며 감상하는 것이다. 음성해설로 관련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다.

AI키오스크를 통해서는 전북의 상징적인 무형문화재와 100여 명의 청·장년 작가들의 프로필 및 작품 등을 디지털 수어와 외국어로 제공한다. 수어를 직접 인식하여 원하는 정보를 불러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교동미술관은 앞으로 지역의 다문화가정이나 장애인 단체, 초등학생 등을 초청해 실질적인 대상자들의 반응과 의견을 듣고 지속적으로 전시 관람 환경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묻다


올해는 도내의 대표적인 축제들도 배리어프리에 주목한 해였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수상작 세 편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 무료로 상영했다. 단순 초청이 아닌 '제작'을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오셀로와 이아고〉 작품을 초청해 배리어프리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였지만, 105회에 걸친 공연 중 단 한 편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큰 규모의 축제들이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첫 시도였던 만큼 다음해에 더욱 적극적인 실천을 기대한다.

문화기본법에는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등과 관계없이 문화를 향유할 권리(문화권)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문화예술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공연장과 갤러리 입구의 턱,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온 문화와 예술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배리어프리가 정말로 '프리'한가?" 라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없다. 실제 장애인들에게는 배리어프리 문화예술조차도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존재할 것이다. 문화예술의 배리어프리 담론 자체가 국내에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예술가와 기획자, 관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러한 흐름을 자연스레 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모든 문화예술이 나와 너, 장애와 비장애, 어린이와 노인을 굳이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가깝고 친절하게 다가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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