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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 | 연재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
도래한 김장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12
백희정 (2023-12-29 10:31:33)



도래한 김장


집 앞 저수지 가장자리에 있는 늙은 상수리나무는 아직 잎을 떨구지 않았다. 하늘로 펼친 가지마다 연노랑 잎을 그대로 달고 첫눈을 맞았다. 물가의 단풍은 아직도 어여쁜데 저수지 위 수렁의 메마른 억새는 사각거리며 어서 잎을 떨구라고 재촉한다.


해마다 마당 텃밭에 배추와 무를 심는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자족하며, 내게 온 것에 감사한다. 배추와 무는 김장하고, 겨울에 먹을 것은 땅에 묻는다. 전주 사는 오빠네에도 한 포대 챙겨 보낸다. 올해는 지인에게도 나눔을 하기로 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무를 뽑았다며 내게 서두를 것을 당부한다. 나는 너무 이른 것 같아 망설여진다. 그래도 혹시나 무가 얼지 않을까 염려되어 바람이 차면 저녁으로는 천막지로 덮어 놓았다. 늦어도 이번 주말에는 무를 뽑아 땅에 묻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간간이 된서리가 내리더니 현관 앞 돌절구에 살얼음이 얼었다. 수능 때만 되면 여지없이 기온이 떨어지고 한파가 몰아닥쳤는데 올해는 평년 기온을 유지했다. 금요일 아침. 엄마의 세면과 식사를 챙기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려던 차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무를 뽑으러 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답하고, 그대로 커피 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대문을 열어 놓았다. 마당의 ‘산이’는 저와 놀아달라며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10분 남짓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데 눈에 익은 차 한 대가 대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곧장 텃밭으로 향했다. 내가 무를 뽑아 놓으면 지인은 포대에 무를 담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가 실하고 야무지다며 지인은 어설픈 농사꾼을 칭찬해 준다. 뽑아 놓은 무를 차에 싣고 지인이 돌아가고, 나는 텃밭의 남은 무를 마저 뽑았다.


​그리고 창고에서 삽을 가져와 텃밭에 작은 구덩이를 팠다. 칼로 무청을 제거한 후 일부는 땅에 묻고 나머지는 포대에 담았다. 다음 주면 김장이어서 무김치도 담고, 배추김치 속 양념으로 써야지 싶다. 그날 오후, 텅 비어버린 텃밭 고랑 위로 요란하게 진눈깨비가 흩날리었다. 다음날에는 첫눈이 소복이 쌓였다. 


나는 지난주부터 김장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봄에 농가에서 사 처마에 매달아 놓았던 마늘을 까고, 3kg 남짓 생강도 흙을 털어내고 씻어 껍질을 벗겨 두었다. 육수를 낼 재료와 양념에 넣을 생새우, 배, 채소류, 죽을 끓일 찹쌀가루, 김장할 때 사용하는 물품 등 앞으로도 사고, 챙겨야 할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작년에는 고춧가루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올해는 마른 고추를 사서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직접 꼭지를 따고 방앗간에 가서 가루를 내어 왔다. 해마다 김장 품앗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새우젓을 사러 강경까지 갔는데, 올해는 언니가 내 것까지 사주어 가지 않았다. 예년에 비해 양을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는 여전히 그대로다.


집은 젓국 냄새로 요란했다. 옛날에 엄마는 김장에 앞서 뒤안에 솥을 걸고 황석어젓을 달였다. 황석어젓을 달이고 나면 며칠 동안 집은 젓국 냄새가 진동했다. 생젓을 넣고 김장하는 집도 있었지만, 우리 집은 젓을 달여 사용했다. 황석어젓 특유의 비린 냄새를 싫어하는 막내 오빠를 위해 젓갈 양을 줄인 양념도 따로 만들었다. 다른 집 김장 양념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죽이었다. 엄마는 찹쌀죽뿐 아니라 생들깨를 갈아 죽을 끓여 식혀서 김치 양념을 만들었다. 


나는 김장할 때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섞어 쓰는데, 우연히 직접 담근 멸치생젓을 넣은 김치를 맛보고 반해 멸치젓을 담그기 시작했다. 멸치생젓은 비린 맛이 거의 없고 감칠맛이 진한 젓갈이다. 4~5월 전주 남부시장에서 생멸치 20kg을 사와 천일염에 버무려 서늘한 곳에 놓았다가, 2년째 되는 해부터 체에 삼베 보자기를 깔고 내려서 사용한다. 나는 2년에 한 번 멸치젓을 담고 올해는 두 번째 담근 멸치젓을 사용한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김장 품앗이를 했다. 8~90년대만 하더라도 집마다 100포기는 다반사였고, 식구가 많은 집은 2~300포기까지도 김치를 담았다.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김장 김치를 먹어야 하고, 추운 날씨 탓에 채소가 귀한 만큼 김치는 가정에서 국이나 찜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김장하는 날이면 어느 집이나 유난히 인심이 후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김치맛을 보고 가라며 집으로 불러 김치를 권하곤 했다. 김장철이면 마을 아저씨도 스스럼없이 김장하는 집으로 들어가 김치에 수육 한 점을 올려 막걸리를 마시며 김치맛을 품평했다. 어린 나는 절임 배추의 노란 속대를 뜯어 들깨소금을 묻혀 먹는 것을 좋아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들깨의 고소하면서도 진한 향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김장철이면 김치를 이웃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집 밥상에도 엄마가 품앗이를 다녀온 집에서 가져온 김치와 이웃들이 나누어 준 김치로, 날마다 조금씩 다른 김치를 맛볼 수 있었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김장하러 가는 집이 있다. 다행히도 우리 집 김장과 겹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시골 마을이어도 예전같이 이웃의 김장을 도우러 갈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집마다 김장하는 양이 줄었고, 김장하지 않는 집도 더러 있다. 그러다보니 김장철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동네 김치를 맛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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