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의 대체재로 일회용품을 권하는 사회
글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머그잔에 주세요”라는 말은 그만해도 될 줄 알았다. 커피를 사랑하고 차를 즐기는 나는 거의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다. 쓰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텀블러나 머그잔과 비교해 맛도 덜하고, 쉽게 식고 쉽게 녹기 때문이다. 일회용 컵으로 마시는 커피나 차는 맛이 없다. 코팅이 되어 있는 컵 안이 안전하고 깨끗할 것인가? 라는 우려도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쓰레기와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을 규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텀블러는 교양 있는 지구 시민의 필수품이 되었다. 바다거북의 코를 찌른 빨대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빨대는 뺄 때” 캠페인이 시작되고 종이 빨대, 스테인리스 빨대가 퍼져나갔다. 전주 객리단길에는 음료 포장용 ‘공유 다회용 컵’이 등장하고,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생분해 컵이 대체재로 쓰였다. 비용 증가와 일손 부족 문제로 카페 주인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정부의 계도와 홍보, 지자체의 지원,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자연스럽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매장에서 사라졌다.
환경부는 2018년 쓰레기 대란 이후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일회용컵, 비닐봉지 사용 저감 대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해 왔다. 규제 시스템과 개인의 실천이 맞물리면서 커피전문점 매장 내 일회용 컵의 75%, 제과점 일회용 비닐봉지 84%가 감소했다. 법과 제도에 따른 규제와 시민의 실천이 맞물린 놀라운 변화였다. 22년 11월에는 코로나로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식품접객업소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다시 시작하고, 일회용 종이컵과 빨대·젓는 합성수지 막대, 일회용 우산 비닐을 추가 규제했다. 다만, 업주들의 과태료 부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카페·식당 등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제한에 대해 1년간 유예 기간을 두고 단속 대신 지도와 안내 중심으로 계도 했다.
그런데, 지난 9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 시행을 백지화한 환경부가 계도 기간 종료 2주를 앞둔 11월 7일, △종이컵 규제 철회, △플라스틱 빨대의 계도 기간 무기한 연장, △비닐봉지의 과태료 부과를 철회했다. 종이컵은 아예 금지 대상에서 빼버렸다,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는 대체재가 충분한 시기, 다른 말로 값이 싸질 때까지 무기한 미뤘다.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를 거친 규제의 핵심은 '플라스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의 문제이다. 플라스틱 재질과 비교해 오염 배출이 적다고 해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종이컵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 매장 내 종이컵을 허용하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비롯한 다른 일회용품 규제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이번 일회용품 규제철회와 지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유보에서 소상공인의 부담 경감을 앞세웠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정부 정책과 규제 시행에 발맞춰 준비해 온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외려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일회용 종이컵을 많이 쓰는 카페는 어딜까. 도시 외곽 경관 조망이 좋은 기업형 카페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의 프랜차이즈 카페일 것이다.
플라스틱 빨대 규제만을 기다려 온 종이 빨대 제조업체들은 정부를 믿었다가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제주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동참 업체들이 무더기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제도 안착이 멀어졌다. 1년의 계도기간을 거쳤지만 아쉽게도 충분한 준비에 이르지 못했다는 환경부의 발표는 준비할 의지가 없었다는 무책임한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일회용 종이컵 규제 대신 ’권고와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지원‘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결국 일회용품 사용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다. 일반 담배는 금연이지만 전자 담배는 허용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회용품 감량의 책임과 의무가 있는 환경부의 직무 유기이다.
환경부 차관은 종이컵을 규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면서 규제철회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재질과 관계없이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했다. 네덜란드는 플라스틱 포장 음료와 플라스틱 코팅이 된 종이컵을 사용할 경우 플라스틱 세를 내야 한다.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명분도 아이러니하다. 종이 빨대의 품질 개선과 가격이 안정화가 될 때까지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품질개선과 원가 절감을 위해 수억 원을 투자한 소상공인은 어쩌란 말인가. 2023년 기준 플라스틱 빨대는 개당 6~7원 종이 빨대는 개당 12~14원 수준이다. 만 개를 구매한다고 가정할 때 약 8만 원 정도 차이 나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금세 극복이 가능하다. 플라스틱 빨대를 규제하면 종이 빨대 시장이나 환경인증을 받은 생분해성 빨대가 확대될 것이고, 그만큼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이 이뤄질 것이다.
비닐봉지의 과태료 부과 철회는 대체품 사용 확대가 이유였다. 대체품이 장바구니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다. 생분해성 비닐봉지가 대체품이다. 2023년 한국 편의점 산업협회의 상반기 봉투 사용 실태에 따르면 생분해성 봉지가 70%, 종량제 봉지가 23.5%, 종이봉투가 6.1% 쓰였다. 태울 때 오염물질 배출이 적기는 하지만 일회용품이어서 환경표지 인증 기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잘 썩지도 않는다.
국제사회는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하고, 플라스틱 오염을 멈추기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생산과 소비를 감축한다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 우호국 연합’에 가입했다. 그런데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없던 것으로 하고, 플라스틱 컵의 대체재로 일회용 종이컵을 권장한다. ‘자원순환 사회’가 아니라 ‘일회용품 권하는 사회’로 후퇴하고 있다.
11월 23일, 동네 별다방은 이상 없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이 가지런히 쌓여 있지만 매장에서 종이컵 쓰는 사람은 없다.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드는 카페도 개성 있는 커피잔에 물컵을 쓴다. 제도의 빈자리를 시민의식이 채우고 있다. 그래서 카페에 갈 때마다 이 말을 다시 꺼내야겠다. “사장님, 머그잔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