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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 | 기획 [문화로 지역 읽기 ]
우리는 지역에서 ‘문화’하는 중입니다 ②
무주
고다인 기자(2024-01-10 11:20:20)

신년기획 | 문화로 지역 읽기


무주


무주와 문화를 연결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 꽤 많다. 매년 초여름이면 찾아오는 낭만적인 축제 산골영화제를 비롯해, 스포츠를 넘어 문화 자원으로서 활용되고 있는 태권도까지. 또한 무주를 대표하는 문학가 김환태 선생, 조선시대 화가 최북, 서예가 김용범 등 문화예술계에 이름을 알린 인물들도 많다. 덕분에 인물들을 테마로 한 ‘김환태 문학관’, ‘최북 미술관’과 같은 공간들이 무주의 대표적인 문화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이 있기 전, 무주군에는 1959년 공관(公館)이 건립되면서 처음으로 문화 공간이 생겨났다. 이후 무주문화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호황기를 누렸다. 1989년에는 무주문화원이 설립되어 본격적인 향토문화 발전에 집중했다. 현재까지도 무주문화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중음악 동호회인 ‘주계 음우회’는 문화원 설립과 동시에 만들어져 30년 넘게 그 이름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단체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무주군민들로 구성된 단체들의 활약은 여전히 지역에 활기를 전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악예술단 ‘시엘’을 비롯해, 퓨전 국악밴드 ‘더율’, ‘무주군민합창단’, ‘소리샘’, ‘MJ문화예술단’, ‘혜윰달’, ‘춤아리’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이라는 큰 장르 안에 속한다는 것. 문화저널은 그 범주에서 벗어난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을 조명해봤다. 무주 사람들이 모여 이곳의 이야기로 무대를 채우는 극단 ‘그림 있는 풍경’, 지역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특별한 선물을 만들어내는 청년 송광호 씨다.



무주 사람들이 짓는 무주 이야기

극단 '그림 있는 풍경' 양상모 감독



무주를 대표하는 조선후기 화가 최북. 그의 생애를 그린 연극 <호생관 최북, 바람처럼 살다>가 2022년 처음 무대에 오른 뒤 지난 봄, 다시 한번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군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무대를 완성한 사람들 역시 모두 무주군민이라는 점이다. 극단 ‘그림 있는 풍경’은 무주 사람들이 모여 시나리오를 비롯해 연출과 연기, 의상, 소품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 소화해낸다. 이 작은 동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극단을 이끌고 있는 양상모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무주 표 악극의 탄생

번듯한 공연장 하나 없는 무주에서는 문화를 접할 기회도 흔치 않다. 가끔 외부에서 공연을 오기도하지만 관객 대부분이 어르신인 산골에서 반응을 얻는 경우는 드물다. 양 감독은 이런 현실에 늘 의문을 던졌다. ‘이곳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은 뭘까?’ 고민했다. 그리고 이들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자연스레 떠올린 얼굴은 자신의 부모님이었다. 우리 엄마, 아버지의 이야기는 곧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울 엄마’라는 작품을 통해 연출가로서, 작가로서, 또 배우로서 무대에 섰다. 그가 쓰는 작품은 단조로운 연극이 아닌 우리 음악을 더한 악극 장르에 가깝다. 아버지로 인해 어릴 적부터 음악을 일상처럼 여기고 살아온 덕이었다.

“저희 아버지가 농악을 하셔서 매일 집에서도 장구 치고, 꽹과리를 치셨어요. 밤이면 술에 취해 들어오셔서 민요와 트로트를 밤새 틀어놓으셨죠. 어릴 때부터 매일 그런 음악을 듣고 자라다보니 뒷동산에 나가서 하루 종일 민요를 따라 부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벌써 1,000곡이 넘는 민요를 부를 만큼 음악은 제 평생의 삶을 함께했어요.”

당시 수많은 노래를 익힌 덕분에 극을 구성할 때도 이야기에 맞는 노래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 지금에서야 아버지께 고마운 이유이기도 하다. 악극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대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극보다 지루함이 덜한 동시에 음악을 통해 관객들의 추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그의 작업은 항상 공연의 주된 관객인 무주 사람들을 향한 세심한 고민이 녹아있음이 느껴졌다.



연극 '호생관 최북, 바람처럼 살다'


그 시절 애환을 노래하다

그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노래교실을 연다.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가 구수한 민요 한 가락을 선물하고 그 대가로 살아있는 이야깃거리를 얻는다. 어머니들의 지난 시절 사연을 듣고 나면 하나같이 절절한 애환과 한을 품고 있다.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 속에서 생생한 대사를 건져 올리고 영감을 받는다. 밭을 매며 푸념처럼 부르던 어머님들의 노래도 그에겐 소중한 영감이 된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이런 유명한 노래가 있죠. 실제로 콩밭 매는 때가 한여름 날이 가장 뜨거운 때에요.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쟁기질을 하면, 같이 일하던 남편이 괭이가 부러졌다며 얼른 고쳐오겠다고 한대요. 그럼 ‘이 인간은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덜 않고 저녁 늦게 막걸리 한 사발에 취해서 들어 오는겨’ 한탄하면서 어머님들 다같이 ‘맞아 맞아!’ 박수 치며 웃으세요. 이렇게 얻어진 이야기들이 나중에 연극 무대에 녹아들면 보시는 관객 분들은 더 크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게 되죠.”

내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이들의 설움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우리 삶 가까이의 이야기를 짓는 일은 이제 계속 해야만 하는 임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뜻을 함께하는 15명의 단원들 덕분에 꾸준히 다른 도전을 이어갈 수 있다. 그의 가족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다. 아내와 딸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극단의 일을 도우며 연기자로 직접 무대에 나서기도 한다. 그는 외부에서 배우를 찾는 대신 주변인들에게서 연기자로서 자질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역할도 같이한다. 그렇게 지역민들로만 채워진 유일무이한 극단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편으론 동네 극단이라고 무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수준 낮은 무대는 절대 올리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연습을 반복하며 무대 소품, 연출 등에 완성도를 더해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그림 있는 풍경’은 앞으로도 무주 사람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무주 이야기를 만들고 전할 것이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무주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무주에는 할 이야기들이 넘쳐나거든요. 언젠가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조각공원과 함께 공연장다운 공연장을 하나 만들어서 더 좋은 문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연극을 통해 무주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무주의 매력을 전하는 안내자

청년 로컬 크리에이터 송광호



무주읍의 빼곡한 상가 사이, 정겨운 동네 분위기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작은 가게 하나가 문을 열고 있다. 간판조차 달려있지 않아 더욱 궁금해지는 이곳의 정체는 무주의 유일한 기념품샵이다. 아기자기한 공간 안에는 무주를 담은 엽서와 마그네틱, 노트 등이 진열되어 있다. 모두 이곳의 주인인 송광호 씨의 손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그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무주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남기며 이 지역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고 있는 지금, 젊은 청년이 무주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주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매력

그의 직업을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하긴 어렵다. 굳이 정한다면 로컬 크리에이터라 부를 수 있겠다. 무주 관련 굿즈 제작뿐 아니라 무주 여행을 위한 도슨트, 관광 마을 컨설팅 등 지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다양한 활동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20대를 보낸 그는 서른 무렵 고향인 무주로 돌아왔다. 군청의 환경산림과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6개 읍면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무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알았다. 이후 새로운 일을 찾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문화복지 관련 일에 종사하며 무주의 문화와 예술을 접한다. 다음에는 무주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사무국장을 지내며 무주 곳곳 100여개의 마을에 대해 공부했다. 마치 운명처럼 무주를 다방면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간들을 거치며 자연스레 지역에 뿌리를 둔 활동들이 하나둘 가지를 뻗어나갔다.

“여러 직업을 거치다가 청년 창업을 위한 지원사업을 통해 굿즈 제작에 도전하게 됐어요. 무주는 레저 관광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여행객들을 위한 기념품 같은 게 전혀 없었거든요.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데 ‘한번 해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무주의 자연과 건축물들을 그려서 상품화시켰죠. 작은 기념품 가게 ‘그리고’라는 공간을 열면서 꾸준히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어요.”

그가 처음 그린 것은 정기용 건축가가 남긴 무주의 건축물들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담은 등나무 운동장과 공중목욕탕이 있는 안성면사무소 등 정기용 건축가는 10여년에 걸쳐 무주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30개가 넘는 건축물을 남겼다. 평소 건축에 관심을 갖던 그는 건물 하나하나를 직접 보고 스케치했다. 건축에 대해 아는 건 없었지만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며 무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공공건축물 투어를 안내하는 도슨트의 기회까지 찾아왔다. ‘여행 도슨트’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림도 사진도, 건축도 어느 분야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단 도전하며 의미 있는 행적을 만들어가는 그를 보니 ‘도전하는 젊은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무주군 기념품샵 '그리고'


더 나은 무주를 꿈꾸다

앞으로의 꿈은 거창한 게 아닌 무탈하게 지금의 활동들을 이어가며 지역에 소소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무주에는 여전히 청년이 부족하고, 거기에서 느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 중인 기념품 브랜드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더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 외에 다양한 작품이 놓이길 바라지만 함께 할 지역 작가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같이 협업할 수 있는 청년들을 찾았는데 없더라고요. 무주에도 청년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있긴 하지만 다들 본업이 있다 보니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진 않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처음 가졌던 의욕이 떨어지는 걸 느끼기도 하죠. ‘우리동네 아카이브’라고 사라져가는 옛 상점이나 마을 풍경들을 그린 프로젝트였는데, 찾는 사람이 없다보니 몇 번 시도를 하다 말았어요. 이런 프로젝트들도 언젠가 완성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죠.”

아주 먼 훗날의 꿈을 꾼다면, 그의 목표는 복합문화공간을 짓는 것이다. 1층에는 지금의 기념품샵을 확장해 무주만의 굿즈를 판매하고 2층에는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유 오피스를 만든다. 3층에는 누구든 쉽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조성해 활기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물론 로또에 당첨되어야만 실현 가능한 꿈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쌓아가다 보면 그 꿈에 가까워질 날이 오지 않을까 작은 응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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