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로 지역 읽기 | 익산ㆍ완주
소외된 문화 살피고
새로운 문화를 입히다
한 도시공학자는 ‘일백탈수’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일 년에 백만 명씩 수도권을 탈출해야 나라가 산다는 의미이다. ‘지역민국’, 지역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도 선보였다. 그러나 2024년 새해 업데이트된 소식은 이러한 바람과 다소 거리가 있다.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전북의 인구 감소율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소식이다. 물론 전북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공통의 사회적 과제로 놓인 지방소멸의 문제. 문화저널은 신년기획 ‘문화로 지역 읽기’를 통해 지역에서 꿋꿋이 문화의 힘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나선다.
첫 번째 무주, 진안, 장수 지역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익산과 완주의 이야기를 만난다. 전주와 근접해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두 지역은 매력적인 문화 관광지로도 소소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두 곳 모두 지역문화재단을 두고 있어 재단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계의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문제는 지역의 예술가와 활동가, 청년들이 지속성 있게 지역에 발을 딛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가이다.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지역의 문화는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익산 그리고 완주에는 어떤 사람들이 걸음을 내딛고 있을까.
익산
전북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호남의 관문으로 통하는 익산. 이름 앞에는 ‘백제문화’나 ‘보석의 도시’ 등 따라붙는 수식어가 꽤나 많다. 그렇다면 ‘문화의 도시’라는 수식어는 어떨까. 익산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삶에서 자연스레 길어올린 예술과 문화가 보인다.
호남평야에 위치한 익산은 예로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매일 논밭을 일구며 기쁠 때보다는 고단한 순간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애환은 곧 노래와 춤으로 발현되고, 흥이 담긴 민족예술이 자연스럽게 생활 안에서 피어났다. 그날의 흥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익산의 뿌리 깊은 문화를 이루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리농악을 비롯해, 나무꾼들이 지겟다리를 두드리며 부르던 익산목발노래, 풍년을 기원하는 성당포구농악, 정월 대보름 익산에서 행해지던 기세배 등이다.
익산 사람들은 손재주를 타고났는지 미술하면 공예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원광대학교가 배출한 작가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금속, 도자, 목칠, 섬유공예 등 공예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매년 익산에서 열리는 한국공예대전이 큰 역할을 했다. 원광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도예가인 이광진 교수는 지난 2000년, 전북 공예인들의 뜻을 모아 전국 규모의 공예 공모전을 만들었다. 이는 현재까지 24년 동안 이어지며 익산 공예문화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익산여성영화제와 장애인인권영화제 등 해마다 다양한 영화제가 열리고, 가람 이병기 선생, 소설가 윤흥길 등의 문학인들로부터 파생된 문학의 갈래까지. 풍부한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익산은 지역만의 문화 정체성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문화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현재 약 1,400여명의 예술인과 70개 가까운 문화예술단체가 익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역의 소외된 문화를 살피고 새로운 문화를 입히는 사람들. 과거 민속음악이 뿌린 씨앗을 토대로 우리 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이와 생소한 공연 장르를 지역에 전파하며 또 다른 예술과의 상생을 고민하는 사람. 썰렁하던 골목에 문화로 활기를 불어넣는 청년까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만났다.
일상에 더 가까이,
‘큰’ 소동을 일으키다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
익산 사람이라면 소극장 ‘아르케’를 기억할 것이다. 2007년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의 이도현 대표가 중심이 되어 문을 연 아르케는 지난 2019년 1월, 운영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 공연장이 사라지는 것은 곧 극단의 위기와도 같은 일. 예전만큼 활발히 공연을 올리지 못하고 버거운 순간도 찾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위기에서 또 다른 기회를 발견했다. 소극장보다 더 작은 공간, 일상의 공간으로 연극을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작은 연습실이라도 사람이 모일 수 있다면 그곳이 곧 무대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보다 우리의 이야기를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줄여서 ‘작은소동’이라 불린다)은 1995년부터 활동한 익산의 오랜 극단이다. ‘아리랑’, ‘하녀들’, ‘할머니의 레시피’, ‘파수꾼’ 등 가족극부터 사회비평극까지 폭넓은 작품을 선보이며 익산의 문화예술을 지켜오고 있다. 올해도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며 야심찬 신년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대표는 ‘작은’ 공연에 집중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전하며 기나긴 이야기의 운을 띄웠다.
“올해는 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려고 해요. 극장이 없으면 내 스스로 공간을 마련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상의 공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쉽게 생각하면 이 연습실에서도 공연이 가능하고, 카페에서도 짧은 공연을 할 수 있어요. 거리에서는 연극 버스킹도 할 수 있겠죠.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요?”
그는 갈수록 문화판이 협소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즐길 거리는 너무나도 다양해졌지만 개개인이 누리는 문화는 여전히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연극만 잘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함께 가며 시민들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국악이나 무용 등 다른 장르와의 협업이나 미술하는 청년들과 연계해 공연과 전시를 더하는 새로운 시도도 해보려한다. 결국 예술이 한데 모이면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문화가 된다는 생각이다.
낯선 장르를 익산만의 장르로
익산에서는 매년 낭독극 페스티벌이 열린다. 낭독극은 조명이나 음향 등의 무대장치를 최소화하고 배우들이 소설이나 희곡을 읽으며 진행하는 연극이다. 이 대표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요즘 사람들에게 읽는 책 대신 보고 듣는 책의 매력을 전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희곡집을 펼쳤다. 적은 수의 배우만으로도 몰입감 있는 공연이 가능하기에 장점도 뚜렷했다. 소극장에서 꾸준히 이어오던 낭독극 공연은 익산 지역 전체를 무대로 한 ‘낭독극 페스티벌’로 이어졌다. 이 축제가 특별한 점은 시민이 함께 무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낭독극은 장르의 특성상 전문 배우가 아니더라도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가족이나 개인이 직접 낭독을 하며 색다른 문화예술의 경험을 안기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시집을 낭독하며 지역 작가를 알리는 역할도 함께했다.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어떤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사실 잘 몰라요. 낭독극을 보고 많은 분들이 익산에도 책 쓰는 사람이 있다며 놀라세요. 작가는 전부 서울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우리 지역에도 이렇게 멋진 작가가 있다는 걸 낭독극을 통해서도 꾸준히 보여주고 싶어요.” 지역에서는 낭독극이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활발하게 공연되는 장르 중 하나다. 올해는 해외 극단을 초청해 국제 낭독극 페스티벌을 열고 싶은 계획도 있다. 규모를 확대하면 그 안에 다른 장르의 문화를 더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익산에 다양한 문화가 차근차근 정착하길 꿈꾼다.
여성극단에서 출발해 달려온 30년
1980년대 말, 그때만 해도 익산은 문화와 예술로 북적북적한 동네였다. 20대의 이도현 대표는 친구를 따라 한 극단의 오디션을 보러갔다. 덜컥 합격을 하고 그저 ‘재밌다’는 생각 하나로 연극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많은 무대에 오르며 어느 순간 그의 마음 한편에는 물음표가 떴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왜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이야기는 남성 중심으로 흘러가고 남성이 주인공이었다. 그는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1995년, 여성 연극인들이 모여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여성극단으로서 ‘작은 소리와 동작’은 탄생했다. 이후 범위를 넓혀가며 지금은 사회의 여러 면면을 전하는 익산 유일의 향토극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싶다는 이 대표의 포부대로, 극단은 시대를 부지런히 따라가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익산을 무대로 한 웹드라마 제작은 물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인 양성 교육도 계획 중이다.
“앞으로는 지역 안에서도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거든요. 예술인들도 그냥 내가 내 것만을 표현하기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힘을 좀 주는 역할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느덧 5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나이. 그는 아직 청년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한다. ‘청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보인다며 꼭 ‘청년’이어야 한다고 해맑게 강조한다. 청년 이도현과 극단 작은소동이 올해는 익산에 ‘큰’ 소동을 일으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