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는 지금 클래식과 친해지는 중
완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해설이 있는 상상음악회-동물의 사육제
어렵다, 지루하다, 딱딱하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이렇다. 엄숙한 공연장의 분위기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생각하면 더욱 아득해진다. 하지만 한 번 친해지면 그 어떤 음악보다 마음속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하는 것이 클래식이다. 지난 2018년 창단한 완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완주군민들에게 이러한 클래식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클래식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 혹은 관심이 있었으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들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대표이자 지휘자인 조두호 씨는 익산이 고향이지만, 이탈리아 유학 후 돌아와 2016년 완주에 터를 잡았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완주의 현실을 알게 된 후 2년간 완주의 문화판을 뒷조사(?)하며 오케스트라 창단을 준비했다. 지역에 전문 연주자가 부족해 학교 선후배였던 강지수 악장과 배수진 단무장의 도움을 받아 스무 명 남짓의 단원을 겨우 모았다. 창단 후에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무대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의 특성상 연습 공간을 마련하기가 어려워 빈 공연장을 전전하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해 연습과 공연을 할 수 없어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25명의 정단원 중 완주군민의 비율이 70퍼센트가 넘는 명실상부 완주군 대표 클래식 단체가 됐다.
이들의 공연은 '관객에게 재밌는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만들어진다. 클래식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가져갈 수 있도록, 대중적인 음악들을 활용한 레퍼토리를 창작하고 있다. 요즘은 노력의 결실인지 나름대로 단골(?) 관객도 생겼다. 샌드아트를 활용한 클래식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 영화와 함께 즐기는 ‘스크린 뮤직 콘서트’ 등을 꾸준히 선보였고, 지역 관광지와 축제를 찾아가 주민들에게 클래식을 노출시켰다. 많은 공연 중 특히 <해설이 있는 상상음악회-동물의 사육제>는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으며, 조두호 대표 스스로도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다.
조두호 대표/지휘자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라는 곡은 재미가 없어요. 동물을 표현한 14개의 모음곡인데 예를 들어 조랑말이 달려가는 모습을 피아노 두 대가 표현하는 거예요. 신기하거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겠으나, 재미를 찾긴 어렵죠. 클래식을 전공한 저도 이런데 관객들이 보시기엔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그래서 원곡 사이에 여섯 곡 정도 다른 클래식 곡을 발췌해서 삽입하고,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나 작곡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쉽게 풀어서 전했어요. 그랬더니 중간에 박수가 나오는 거예요. 공연에서 박수가 나온다는 건 관객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거기서 보람을 느꼈죠.”
학교에서 가지는 클래식 '첫 만남'
완주는 3개의 읍과 10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주와 맞닿아있는 삼례, 봉동, 용진 등 3개의 읍에 미술관과 공연장 등 문화예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 전북의 시·군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
2019년부터 상관면 남관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해마다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고 있는 것도 이런 문화 소외 지역을 위해서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음악회는 25명 정단원 모두가 참여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어서 반응이 더욱 뜨겁다.
“공연이라고 해서 연주만 하고 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문화적 소양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을 소개하고, 가볍게 연주해서 악기의 모습과 소리를 인식시키기도 하고요. 그걸 바탕으로 쉬는 시간에 악기 이름 맞추는 퀴즈를 내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소통을 유도하며 음악회를 하니, 학교와 아이들 모두에게 반응이 좋아요.”
찾아가는 음악회
청소년들은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무대를 올리는 연주자가 되기도 한다. 2023년에는 전북문화관광재단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에 선정되어 ‘완주유스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취약 계층 아이들에게는 무상으로 악기를 제공하고, 단원들이 직접 강사가 되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타악기 4개의 파트를 교육했다. 약 30명의 아이가 5월부터 10월까지 꾸준한 연습을 하며 완주소셜굿즈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클래식 연주의 매력을 알게 된 청소년 단원들은 벌써 올해의 수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다.
“교육 사업은 지속성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서 6개월간 연습으로 끝났지만, 올해는 규모를 키워 교육 기간도 늘리고 다른 파트들도 보강하려고 해요. 작년에 완주군 교육통합지원센터가 저희랑 MOU 체결을 했거든요. 그곳이랑 같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군이나 교육청에서 예산도 더 받으려고 합니다. 작년이 시작하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오케스트라로서의 제대로 된 면모를 갖추는 과정이 될 것 같아요.”
완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더 큰 목표가 생겼다. 6년간의 활동으로 생겨난 클래식 입문자들을 확실한 클래식 애호가로 끌어들이는 것. 공연 단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공연이니, 조금 더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연주 역량을 높이는 것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동안 많이 노력했지만, 전주나 군산처럼 비교적 큰 도시들에 비하면 완주의 클래식 관객층은 아직 부족하죠. 예술가로서 대중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조금은 진지한 음악을 하고 싶은 갈망도 있거든요. 완주의 문화 의식이 높아져서 그런 공연을 완주에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