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에서 인문학 '완주'하기
완주인문네트워크 협동조합
위기에 처한 인문학.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제시되던 문제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그 중요성에 대해 주창했으나, 자본주의의 논리를 앞세워 인문학은 언제나 후순위가 되었다. 갈등과 혐오의 시대인 오늘날 인문학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대두된다. 미디어의 자극적인 단어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하게 세워줄 인문학이 절실하다. 더 이상 ‘인문학’하는 것을 미룰 수 없는 현대사회, 완주인문네트워크(대표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는 인문학 운동을 펼치며 지역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시는 삶을 견디게 해준다
완주인문네트워크는 완주군 고산면의 완주인문학당에 자리 잡고 있다. 공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수많은 시집이 눈에 띈다. 많은 인문학 분야 중에서도 문학, 특히 '시'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시집을 후원받아 작은 시집도서관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시를 읽고, 사유의 시간을 가진다. 시와 관련된 특별한 프로그램도 많이 열려 안도현, 김사인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시인들부터 이제 막 시집을 내기 시작한 신인 작가들까지 이들의 기획에 함께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시집 완주 모임'이다. 줌으로 시인과 함께 시집 한 권을 완독하는 모임으로, 2021년부터 지금까지 26명의 시인과 만났다. 시인의 말부터 마지막 시까지 쭉 읽어나가며 중간중간 궁금한 점을 시인에게 질문한다. 대면이 아닌 줌을 통해 이루어지니 처음 참석하는 사람도 부담감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시인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독자와 '함께' 낭송하며 완독한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독자들이 받아들인 시와, 자신이 의도했던 바를 비교하며 생각에 빠진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안도현 시인은 시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고 공부해야겠다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는 후기를 전하기도 했단다.
시집 완주 모임
18세기 영국의 시인인 매슈 아널드는 '시는 삶을 견디게 해준다'고 했다. 사실 시를 비롯한 모든 예술은 삶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진 않는다. 다만 예술가가 남긴 작품을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상상력을 읽으며 사유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생활에선 체험할 수 없는 삶의 경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삶에서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당했을 때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는 일종의 '마음의 근육' 같은 것이다.
“시를 읽고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혼자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이별과 아픔이 없는 인생이 있나요. 모든 인간은 언젠가 외롭고 혼자 남겨진 듯한 순간을 맞이하게 돼요. 그걸 인문학을 통해서 준비를 좀 하는 거죠. 공자, 소크라테스, 셰익스피어 같은 옛사람들이 이미 다 고민해놓은 거예요. 우리는 그들이 남긴 글을 보면서 받아적는 것 뿐이지. 공자님도 그랬어요, 군자는 남에게서 구하지 않고 자기에게서 구한다. 그 말도 그 말이거든. 결국 내 존재 의의는 스스로에게서 찾아야지.”
'치유의 시, 위로의 노래' 콘서트
이 교수는 인문학의 치유 능력을 증명하듯 지난해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와 함께 문화치유학교 사업을 진행했다. '치유의 다큐 영화제', '시로 보듬고 노래로 안아주는 인문학 특강', '치유의 시 위로의 노래' 등을 통해 주민들은 위로받고, 마음의 근육을 얻어갔다. 문화치유학교가 더욱 특별한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어중간한(?)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문화예술로 사람을 치유한다고 하지만, 그럼 문화예술인들은 어디가서 치유하냐 이거에요. 코로나 시기에 예술인들이 얼마나 힘들었어요. 생계 유지도 문제이지만,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시공간도 없었어요. 그래도 유명한 예술인들은 낫죠. 보통 문화행사들은 소위 '뜬' 사람들을 위주로 기획해요. 기획자 입장에서는 모객을 위해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제 막 자리를 잡으려 하는 예술인들은 설 자리가 없어요. 사실 완주에 있는 주민도 중요하지만 이 사업에서 더 마음을 쓴 건 후배 문화예술인들이에요.”
이종민 대표
작은 오지랖을 모아 만드는 문화
완주인문네트워크는 스스로를 '인문학 오지라퍼'라고 소개하는 이 교수가 이끌고 있다. 인문학을 가지고 오지랖을 피다보니 여기까지 왔다지만, 그가 문화판에 남겨온 족적은 굵다. 전주 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당 단장을 맡아 전주한옥마을을 구축하기도 했고, 동학농민운동기념회 100주년 기념 사업도 중심에서 이끌었고 천년전주사랑모임을 만들어 전주의 문화예술을 일구기도 했다. 완주인문네트워크 또한 전북대 '인문 역량강화 사업추진단'을 맡았던 시절 만든 완주인문학당이 예산 문제로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그 취지를 이어가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기획과 행정 모두 제가 감당해요. 난 이제 퇴직하고 할 일이 없잖아요. 연금이 나오니 수입도 필요가 없고. 그래서 인건비가 들어가는 것들은 내가 다 하겠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다보니 일을 크게 못벌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만 작게 하고 있어요. 미미하더라도 지속성을 가지는 게 목표예요. 물론 혼자는 어렵죠. 주변의 문화예술인들이나 제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잠깐씩 도와줘요. 3년쯤 되니까 그 팀이 어느 정도 구성되어 있어요. 행사한다고 하면 제가 커피 살게요, 간식 좀 사갈게요, 하는. 이게 완주의 하나의 문화가 된 것 같아요. 동아리처럼.” 적은 예산을 가지고 단체를 꾸리기에 애를 먹을 때도 많지만, 옆에서 함께 '오지랖'을 피워주는 이들이 있기에 계속 나아간다. 완주인문네트워크는 작더라도 지속적으로, 완주에 오지랖을 부릴 것이다. 그렇게 모인 오지랖이 깊게 뿌리내리면, 어느순간 완주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