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이나 진실 등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란 꽤 어려운 작업에 속한다. 예술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함은 사실과 재현 사이의 틈을 자연스럽게 메꾸어 주거나 유사하게 변용시킨다는 점에서 신선한 동질감을 던져주기도 한다. 예술 작품에 나타난 사실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비유적으로 환기시켜 주고 새로운 비전을 암시해 준다는 점에서 역사성과 교훈성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데 기여한다. 세조와 사육신의 만남 그라고 처절한 살육과 그 황폐한 파장은 여러 장르의 예술매체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조명되어 온바 있다. 〈태〉(오태석 作·박병도演出·제6회 전국제 우수상 수상. 대전시민회관)의 공연은 지금까지 접근방식과는 다른 전위극적 요소, 상황극적 요소, 경우에 따라선 서사극적 요소 내지 표현주의 극적 요소가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걸작이라는 점에서 지방 연극사에 일대 전환점을 기록해 내고 있다.
기존 연극의 틀거리가 대부분 주동인물과 반동 인물간의 대립과 갈등을 그 근본 축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반해 이 공연은 이 같은 재래성을 철저하게 탈피해 있다. 으례껏 세조와 사육신간의 갈등이 주요 모티브로 등장할 것으로 간주 될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태라는 명칭은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태는 어머니와 자식을 연결시켰던 유일한 통로이다. 이것은 하나의 핏줄의 흐름을 상징할 수 있다. 이 공연에서 각 등장 인물들은 철저히 핏줄의 흐름을 위해 노력하고 경우에 따라서 죽음마저 불사한마. 핏줄의 흐름을 위해 몸부림치는 형상은 왕가의 세계에서 시작하여 박팽년이라는 사육신의 세계로 그리고 박팽년의 식솔인 그 종의 세계에까지 전이되고 확대된다. 경우에 따라선 핏줄의 흐름은 왕과 신하간 義로운 관계로 변조된다. 신숙주와 세조의 관계는 죽은 단종과 사육신간의 관계와 더불어 義의 거대한 흐름으로 엮어진다.
이 작품은 재래적 사실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려 한다면 좀처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없다. 세조가 역사물에서 줄곧 반동 인물로 형상화되어 왔고 이에 반해 우국 충절의 사육신 등이 주동 인물로 묘사되어 진바 있다. 이 같은 사건에 대한 단순한 묘사나 재현은 역사 교과서를 접한 대부분의 관객들에겐 식상함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공연은 사실과 재현의 빈틈을 메꾸는 데 있어서 작가의 새로운 시각이 삽입되어 있다. 핏줄의 흐름과 義의 흐름을 위한 굵은 축은 상투적인 갈등이나 대립을 탈피케 하여 준다.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간의 대립대신에 흐름의 모티브를 中心으로 각 인물들이 다양하게 대립되기도 하다가 서로 合一되기도 한다. 세조와 사육신간의 대립은 작품 서두의 출발점만을 이룰 뿐이다. 오히려 세조와 신숙주가 왕실의 혈통을 중요시하려는 입장과 왕과 신하간의 義의 흐름을 중시하려는 입장에서 서로 부딪친다. 핏줄의 흐름을 중시하려는 모티브는 세조의 절규어린 언어에서 시작하여 박팽년의 손부로 이어지고 아기를 탈취 당한 여종의 미천 언어로 전이되기에 이른다. 아울러 왕과 신하간의 義의 흐름은 사육신과 단종간 관계에서 시작되어 세조와 신숙주의 관계로 이어지며 다시 사육신과 단종의 운명을 거두어 주어 그들 간의 義로운 관계를 인정하는 세조의 비장한 몸짓으로 농축되어 나타난다. 핏줄의 흐름과 義의 흐름을 위한 축은 정통극의 시간성이나 공간성을 거부한 채 철저한 상황극적 틀거리만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모티브를 확대내지 변용시키려는 의도는 무대 위에 펼쳐지는 사건의 인과성이나 시공의 제약을 과감히 벗어나게 된다. 다양한 상황 창출과 종횡 무진의 변화는 생략된 무대술과 병풍의 효과적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객석과 무대의 중간에 위치한 사관은 무대
좌측에서 해설자 내지 성격 대역의 역할을 해낸다. 계유정란의 처절한 살육 그리고 공신들에 대한 표상이 사관의 해설을 통해 제시된다. 세조가 왕위에 등극하는 과정이 도창자에 의해 해설되고 양위 교서는 행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육신의 비명 소리와 교차된다. 배우들의 상징적 집단 마임은 검붉은 조명 빛깔의 지원을 얻어 단말마적 죽음의 교향곡을 창출해 내고 객석을 향해 추상같은 호령을 구사하는 사관의 언어는 쾅! 쾅! 상을 두들기는 그의 연행과 더불어 세조의 잔혹스런 性格올 부여하는데 기여한다.
이 공연의 강점은 등장 인물의 다면적 性格이 골고루 창출되어졌다는 데에 있다. 사관과 도창자의 해설이 폭군과 같은 잔인한 性格을 세조에게 부여하였다면 실제 무대 위에서의 세조의 연행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죽은 사육신의 환영에 끊임없이 시달릴 뿐이다. 단종을 죽여야 한다는 신숙주의 주장에 세조는 완강한 거부를 하면서 괴로워한다. 어전에서 시할아버지를 살해한 박팽년 손부의 당당한 언어 역시 세조의 義로운 기품과 동정심을 엿보게 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간조(千劃)의 활은 작은 귀를 보고 쓰지 않는다 하였다. 원컨대 아들을 낳도록 해라. 대역신이 아니고 충신의 손이니라. 가거라. 아들을 낳거든 죽여 바치고 계집이거든 모녀가 연명하여도 좋다. ·이같은 세조의 다면적 性格은 핏줄의 흐름을 권력의 힘 보다 더욱 중시할 수 있다는 세조의 체념 어린 언어와 절규를 통해 보다 구체화된다. 어명을 어기고 이것이 태어났네. 과인의 손이 미치지 못하니 어쩌겠나. (안고서) 이것의 손이 산호 가지와 같으니 일산(壹珊)이라 부르도록 하고 취금헌 박팽년의 후손으로 대를 잇도록 하여라.
이 공연의 압권은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되게 함으로써 주제적 모티브가 보다 농밀하게 창출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단종을 살려야 한다는 세조의 단말마적 외침은 미친 환영에 시달리는 그의 무의식적 세계에서 여종의 미친 듯한 언어와 교차된다. 세조와 단종 간의 핏줄의 흐름은 박팽년의 代를 잇기 위해 희생양이 된 아들을 찾아 울부짖는 여종의 간절한 염원으로 전이되고 세조와 여종간의 유희장면은 외형적 계충을 뛰어 넘은 인간 본연의 원초적 욕구를 비유적으로 환기시켜주기에 족하다.
이 작품에서 서사극을 통한 사변적 요소가 관객의 적극적 통찰을 불러일으키면서 볼거리와 들을 거리에 있어서 풍성함이 다양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 박팽년 손부의 출산 과정은 표현주의 연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보이지 않은 출산의 고통은 손부 역을 맡은 김덕주의 소리와 능밀한 마임술 그리고 사육신의 집단 연희 동작으로 형상화된다. 무대를 뒤흔드는 징소리와 기타 음향은 배우들의 기괴한 음성파 조명의 총체적 지원을 얻어 새로운 생명의 출생과 그 진통의 파노라마를 창출시켜 놓는다. 시할아버지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인간 존재의 순환을 보여준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작가 특유의 시각은 사육신의 죽음을 거두어주는 세조의 행위를 통해 신선함을 더해 주기에 이른다. 상왕을 보기보단 반갑구나. 너회가 나를 도와라.(중략) 파인이 그의 운명을 거두었다. 같이 저들을 보낸다. 소형 작두가 세조에 의해 딱, 딱, 소리를 울리며 활용 될 때 사육신들은 그들 고유의 만족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단종이 죽은 者들의 군주가 되어야 한다. 는 신숙주의 말은 세조의 행위와 사육신의 절제된 집단 마임에서 하나로 合一되어진다. 핏줄의 흐름은 군주와 신하간의 義로운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 역시 세조와 신숙주 간의 충절적 흐름이 한 부분을 장식한다면 단종과 사육신 간의 義의 흐름이 또 한 부분을 장식한다. 이같은 사변적 모티브가 근래에 들어 서사적 해설이나 평면적 언어에 의지해 버린 경향이 팽배해있는 데 반해 이 공연에선 과감히 이같은 모티브가 상황극적 차원에서 표현주의 극적 요소의 서로 조화를 이루어 시청각적 쾌감을 중대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 공연에 나타난 다양한 상황들은 경우에 따라 입체적인 형상화가 아쉬운 一面을 노출시킴에도 죽음이라는 사건의 잔혹스러움 그리고 잔혹스런 형상이 다양하게 변조되어 나타남으로써 관객은 소름을 오싹하
게 느끼면서 다양한 감각적 쾌감을 맛 볼 수 있게 된다.
한편 상황극적 요소의 도출은 생략된 무대 소품이나 간편한 셋트 처리로 지루함을 덜어주는 데 기여한다. 병풍의 활용은 이 공연의 동적 활력창출과 관객의 상투적 기대를 압도시켜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각 병풍의 칸이 개폐가 자유로이 이루어짐으로써 병풍 뒤에 대기하던 배우들이 일시에 동장하며 이로써 급전의 효과가 발휘된다. 이 급전은 현실에서 초현실로, 그리고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의 급전 임에도 불구하고 미적 일루전이 그대로 지속될 수 있다는 강점마저 창출되기에 이른다. 모티브의 전개와 정상 상황의 변화가 환상 체험을 유도하는데 성공하기란 꽤 어려운 작업에 속한다.
여기서 음악이나 음향을 통한 무대의 환타지가 중요한 몫을 해내고 있음을 눈여겨 볼 수 있다. 반젤레스Vanzel-les의 Movement 4의 선율은 살벌하고 무미한 현실의 次元에서 감상층 모두를 또 다른 세계로 옮겨주는 데 기여한다. 바닷물로 씩-밀려 왔다가 사라지는 듯한 음향과 〈단종을 내놔! 〉하는 세조의 미친듯한 언어 그리고 희생양으로 사라진 아들을 찾아 헤매는 여종의 절규어린 몸부림의 교차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무대 양측면에서 투사되는 조명은 강약과 그 리듬의 싸이클을 살리면서 세조와 미친 여종의 존재를 동일한 지평 위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다.
이 작품의 텍스트는 연출자의 상상력에 의해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대부분 텍스트의 구속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게 지방 연극의 풍토인데 반해 박병도의 연출은 이같은 진부한 풍토를 일시에 통타하고 있다. 도창자와 해설자를 과감히 설정하고 있으며 그들의 언어는 또한 다면적인 성격 창출에 확실한 기여를 하고 있다. 사관과 도창의 언어가 상당량 삽입되어 있음은 歷史에 관한 자료마저 탐구하여 신선한 이미지를 창조해 내려는 각색자로서 연출의 면모를 읽어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각색은 자칫 공연된 작품의 주제적틀 거리를 두텁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이탈키시거나 산만하게 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조의 화려한 즉위식이 객관적으로 해설되다가 왕위를 찬탈한 부정적 모티브가 〈소리〉를 통해 비유적으로 까발려지는 부분은 상황의 다면성 창출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갈 수 있다. 그런데 왕위찬탈의 부정적 모티브를 더욱 굵게 해주는 요소가 또 한 번 반복된다. 인두질을 하였난데 저 소리를 들어보소, 상감마마 아니하고 수양대군 웬 말인가. 가마귀 눈비 맞아 회는 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객관적 해설이 사육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주관적 해설로 변모된다. 이 부분은 연극 속에 詩調와 唱의 분위기가 삽입되어 다양한 감각적 쾌감을 맛보게 하지만 「핏줄의 흐름」이라는 모티브 구현을 회석시켜버린 아쉬움을 준다.
이 공연은 전체적으로 메시지의 난해함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 같은 취약점을 다양한 무대 이학적 요소가 커버링해 줌으로써 상황극과 표현주의 극적 요소가 총체적 앙상블을 발휘해주고 있다. 특히 이 공연의 뛰어난 예술성은 관극 이후 되새겨 볼 수 있게 하는 사유의 예술 작품이라는 점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매회 관극 때마다 또 다른실론 체험을 던져준다는 데에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