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진보적인 시각 ·인식의 한계 비록 우호적이고 동조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서로 갈라진 체제에서 패이는 두 문화의 골은 그 벽의 높이와 등돌린 세월의 길이만큼 깊어진다. 그래서 서로가 별수없는 시각적 인식의 한계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내 친구인 재일교포 하나는 북조선 기행을 나에게 들려 준 일이 있다. 두어 가지만 인상담을 옮겨 보련다. 지난 85년도의 일이라고 했다. 그의 자녀들도 따라갔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서먹서먹한 의아로움이곤 하던 것은 이른바 쇼핑을 하면서부터였다. 저쪽 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는 백화점이든 사진관이든 한결같이 사무적인 것으로만 비쳤다. 「여긴 그런 거 없어요.」 혹은 「오늘 현상은 안됩니다.」 이렇게 한마디만으로 응대하는 것이 예사라고 했다. 모두 정직하게는 보였다. 한번은 여자 대학생과 젊은 세대론같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경험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결혼도 안했는데 무슨……?」 하며, 얼굴을 붉히더란다. 미혼 여성들이 그들의 동지적 활달성과는 달리, 성에 있어서는 극히 보수적일만큼 처녀적 순결성을 풍기더라고 했다. 연극이나 영화도 성적 유발성이 끼어든 작품은 한 편도 보지 못했었다.
한마디로, 북쪽의 문화는 웃음이 적은 질서 속의 깡질긴 자랑이 저마다 눈에 번득이고 있더라는 이야기다. 모두들 달고 다니는 김일성 뺏지는 서너 가지 모양으로 성분 구별이 되어 있었다. 왠지 뜨악해지는 이질감과 함께 「통일되기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는 8. 15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의 민학(民學)탄압에 쫓기다시피 濟日한 말하자면 좌익 계열의 청년이었던 것인데, 줄곧 일본에서 40년을 살아 늙었다. 고분고분 잔망스런 일본 문화에 짖어서 늙은 사람의 눈에는, 강골 체제로 훈련된 사람들의 접객 태도부터가 너무 억떠글하고 뻣뻣하게 비쳐질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저쪽 시각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굽실거리는 웃음의 친절을 어쩌면 자본주의적 기만성으로 받아들일는지 모른다.
내 관심을 보다 더 크게 불러일으킨 것은 이 친구의 2세들이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것이었는데(그들 중의 하나는 악법에 대한 줄기찬 거부로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었던 학생이다.), 그들의 아버지 말을 듣자면, 제 자식들은 이남의 군사 독재에 분노하고 있었던 만큼, 그 반사 작용으로 이북을 더욱 동경해 왔던 터이지만, 정작 보고 와서는 비판적인 실망의 기색이더라는 것이다. 하기는 그렇다. 아버지 세대가 겪어야 했던 군국주의나 패전국의 빈곤을 모르고 자라며, 풍요하고 방일한 자유와 향락과 경쟁의 문화 속에서, 잔뼈가 굵어진 그들 2세가 설혹 나름대로 견고한 사상성을 익혔다 할지라도, 저쪽의 경직된 전체주의적 집단성 앞에는 또다른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을 일이다. 푹신한 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더러 일상성과 사상성 사이의 괴리를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괴리감, 이를테면 출신성분으로서의 별수 없는 한계인 셈이다. 이를 자각하는 데서 실망도 지양되고, 실망에서 오는 엉뚱한 역작용도 하지 않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저쪽 체제 그대로의 속에서 우리 문화의 이상은 열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올바르게 하나되기 위한 전통적 탈퇴 우리 분단 문화의 깊은 골을 메우는 데 있어서의 그 통일적 기반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는 한결 더 고통스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두 체제의 근본적 존립 가치에 직결되는 문제이고, 따라서 서로가 심각하게 상치되는 주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로 등돌린 두 이질적 위화감이란 언제나 정비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난 85년에 이쪽의 평양 방문단이 환영 공연을 관람하다가 엉뚱한 총칼 연기에 일어서 버린 것처럼, 일찌기(72년) 저쪽의 서울 방문단은 워커힐에서의 대접 공연을 지켜보더니, 해괴한 궁둥이 발광을 두고 개탄했었다. 「허 !미제가 많이 버려 놓았군 ! 」 이렇게 두 편이 확고한 입장의 사시(料視)만이고 보면, 대결이나 불신 이외에 달리있을 수 없고, 분단 문화의 골은 더 깊어진다.
우리가 더는 불행하지 않을 두 문화의 새 바탕, 그것은 무엇보다 이 민족 나름의 독자성을 지녀야 하고, 햇빛 이슬방울처럼 신선하게 생산적이어야 하고, 자유롭고도 건강한 것이어야 한다는 데는, 서로 별다른 저항감이나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서로가 바람직하게 보는 이 공통분모를 하나의 문화로 성취하는 기본 요건은 무엇인가? 형평의 원칙인 서로의 꼭 같은 양보일까? 아닐 것이다. 보다 바람직하지 못한 어느 한쪽의 기본 자세가 크게 바뀌어야 비로소 올바른 통합·창조의 길이 열렬 것으로 생각한다. 무슨 절충적 타협이 아닌 선택적 융화에서만 서로 다른 반쪽 문화가 올바르게 온전한 하나의 문화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열간의 흡수 논리라기보다는 사필귀정(事必騙正)의 원리다. 말하자면 빗놓인 주춧돌부터 바로잡게 되는 셈이다. 어느 쪽의 근본이 있어야 할 새 문화에 보다 더 합당한가를 가늠해 보는 기준들로서, 어느 것보다 중요한 첫째는 외래 문화에 병들지 않은 주체성(고유성)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비극의 근원이자 핵심이 분단 그것인데, 우리38선에 결정적 주모자 노릇을 한 나라의 문화에 짓이겨진 상태에서 다시 분발하게 된대서야, 빗놓인 주춧돌에 기둥 세우려는 격이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떠나서는 매판적 지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변형이 있게 될 뿐이다 올곧은 주체성을 바꿔 말하면 정의로움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정의롭지 못한 출발과 그런 과정의 주역들일수록 안정된 질서를 내세워 최류탄을 쏘게도 하고, 별수 없는 선언을 하게도 된다. 지난번 7.7선언에 뒤이어 한국예총이 남북 문화 예술의 교류를 제의한 일은 그런대로 잘 되어가는 추세이지만, 그러나 상술한 기본적 궤도 수정이나 방향 전환 없이는, 오래 골진 두 문화가 제대로 온전한 하나가 되기는 요원하다. 이런 요원함이, 저 6.10남북학생 회담에의 함성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남북간작가회담l제안으로 조금은 극복되어질 전망이기는 하다. -
하지만, 새 역사나 새 문화의 창조는 역시 새 세대의 것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나의 문화를 창조할 것인가?
저쪽 정국에 캄캄한 내가 실질적 방법 같은 것은 말할 처지도 못된다. 서로 다른 진보적 세대 끼리의 만남을 통해서 갈라진 골의 깊이를 이해하고 비판하고, 서로가 새로이 탈피의 진통에 이르는, 그래서 하나의 온전한 융화(사랑)의 악수로 환히 합창하는 모습들을 나는 상상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