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강연내용을 글로 옮긴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872년이다. 그러니까 벌써 출간된 지 백년이 넘은 셈이고 그럼에도 새삼스레 이 책에 대해 소개하고자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된 이유는, 저자가 이미 백여년전에 호소한 權利를 위한 調爭 이 오늘 우리 현실에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지배체제의 그릇된 강요 속에 국민된 도리,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우선시켜 온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화는 국민 각자가 자산들의 본연의 권리를 확인하고 이를 되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 나감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바로 이러한 실천적 노력의 의미를 이 책이 전해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독일어에서 「Recht」라는 단어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法이라는 의미요, 다른 하나는 권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법은 권리이다라는 명제가 그들의 인식과 삶 가운데 일반화되어 있고, 法을 강제하는 것, 의무 지우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해 있는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따라서 예링이 말하는 權利를 위한 투쟁, 흑 국민들이 개인적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확인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일은 바로 法을 위한 투쟁 에 다름아닌 것이다.
예링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권리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침해도 결국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인격의 침해와 연결되며 따라서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일은 바로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기본적 인권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나가는 작업인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예링은, 개별적인 권리의 행사를 단순히 개인적 의지에 따라 할 수도 있고 하지 아니할 수도 있는 그런 성질의 문제로 보지 않고,人間의 자기 스스로에 대한 의무, 더나아가서는 도덕적인 실존조건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제 도덕적 실존을 포기하고 윤리적 자살을 기도하는 자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타인에게 불법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불법을 그대로 감수하는 사람인 것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먼저 법이 각 사람에게 그의 몫으로 부여한 것을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요구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일은 무엇보다 각자가 법이 나의 몫으로 준 것은 무엇인가 를 확인하는 일이다. 자신의 몫을 올바르게 가려낼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의 몫 역시 올바르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 대한 자신의 의무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예링에게서 우리가 말하는 의무관념이 적절히 강조되고 있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요즈음 가끔 시외 전화박스에 가보면 수화기가 제대로 걸려지지 않은 채 남은 액수를 알리는 계기판이 켜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권력에 의해 강요된 (사소한) 권리포기를 거부하는 시민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권리를 위한 투쟁이란 바로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민족통일이라는 커다란 과제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고 이런 이유에서 예링은 권리주장은 동시에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 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일차적으로 합법적 투쟁(일반적으로 「권리의 행사」라고 부른다) 이어야 한다. 그러나 법이 당연히 돌려주어야 할 권리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법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법에 대한 투쟁이다. 예링은,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인용하여) 법정에서 거부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채 비틀거리며 법정을 벗어나는 샤일록의 태도를 비난한다. 거절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이제 법에 대한 투쟁을 시작해야만 했다고 시대의 현실적 요청은 법을 넘어선다. 법이 시대가 요청하는 국민의 권리를 법의 이름으로 거부할 때에는, 이미 그 법은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예링이 체계 내에서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과감히 이틀을 벗는 일이야말로(예링이 요구했던) 실천을 통한 진정한 법을 위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해 6 ·10 평화대행진을 통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현재 각종 악법의 폐지 논의를 가져온 데에서 이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제 예링이 사망한 지도 백년이 가깝다. 우리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하에 쓰여진 글이라는 점에서 인식을 공유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한 말, 현명의 마지막 결론이란 자유와 생명을 날마다 쟁취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는 점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며, 이런 이유에서, 비록 그 내용의 이해를 위해 법률적 전문지식을 요하는 부분도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므로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