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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0 | 연재 [문화저널]
<독자투고>연극은 고도의 농축된 문화 현상이어야
김 정 수 전주우석대대학원(2003-12-18 15:59:16)


 전북문화저널 9월호를 보았다. 특집으로 다룬 「전북지역 문화운동의 현황과 과제」에 관심이 갔다. 부분적으로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일목요연한 적절한 정리가 특집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움을 떨쳐버릴수 없었는데 문학, 미술, 비명, 출판, 교육, 사회과학, 굿패, 노래패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운동에 접근하고 있는 조직의 소재 중, 유독 연극분야에 대한 부분이 없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 특집 집필자의 실수로 파악되지 않았던 것이라면 좋겠지만(?) 전북지역 연극운동의 현상을 바라볼 때 당연한 누락이었기에 가슴 아파하며 주시했던 것이다.
연극, 하면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를 연상하는 것이 우리네 보통 관객이다. 여기에 조금 연극에 관한 교양을 가미한 관객이라 하더라도 전후(戰後)전세계를 휩쓸었던 신경향의 반(反)연극 계열의 난해성, 모호성,·대단히 현학적인 공허함으로 가득한 심리놀이극까지 온다면 대개의 의견일치가 이루어진다. 사실 이러한 문제를 일방적으로 관객의 몰지각으로 몰아불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너무 몰지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 고장에 도대체 어떤 연극적인 행위가 이루어졌고 이를 뒷받침 할만한 운동들이 전개되었었나를 생각해보면 불을 보듯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의 집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예술이 근본적으로 그 본질의 인식에서보다는 이식문화의 한 형태로 출발했고 따라서 그 영역이나 위상이 아직까지 정돈되지 못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부터 활발히 민족과 민중의식에 뿌리를 두고 우리 극의 정립과 미래의 출구를 모색하는 작업이 있어왔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형 쇼의 충격적 화려함올 싸워이겨 나가기엔 경제적,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우리 지방의 연극은 더욱 열악한 환경이 아니던가.
우리 전북지역엔 등록된 수개의 극단이 엄연히 존재하나 사실 지속적인 활동올 하고 있는 극단은 「황토」 하나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마저도 예술활동이라기 보다는 마치전투수행의 힘겨웅올 감수하는 투사의 모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처지에서라면 작품의 논의조차도 호사스러운 주문이 되어 버릴 것이 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북지역에는 십여개의 대학 연극팀이 엄연히 존재한다.그 존재로만으로도 강력한 조직적 체제를 갖추고 있다. 어느 분야든 대동소이하겠지만 연극사에서도 큰 역사적 진보는 바로 이런 팀들에게서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이들 중 몇 편의 연극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느낀 실망도 컸다. 대별하여 예술성과 의식, 혹은 사회성 중 그 어느것 하나 획득해내지 못하고 자꾸만 표류하며 왜소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이의 근본 문제는 재정지원이나 제반여건 조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원론적인 문제가 있다는 느낌 때문에 그 실망은 더욱컸다.
연극은 인간이 행하는 의식적인 행위예술이라는 대 전제아래 역사적으로 제반 예술장르와 연계를 가지며 그 위상과 양태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왔다고 본다. 이러한 역동적인 힘은 자연발생적인 변화가 아니라 생을 위한 부단한 입지확보와 표현방법의 다양화를 위한 무수한 도전에 의해 쟁취되어 온 것이다. 문화는 비약이 아닌 축적이다. 더더욱 종합예술올 표방하는 연극문화는 역사적 종적연계와 동시대적 횡적연대가 필요한 고도의 농축된 문화현상이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우리 전북지역 대학 연극팀의 배전의 노력을 기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양한극예술 행위의 개발, 또한 쉽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연회의 보급, 행위자의자질 향상, 향토적인 자료발굴, 답습적이론이 아닌 새로운 연극이론의 정립 등에 과감히 떨쳐나와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전북의 연극운동이 새롭고 강한 모습으로 당당히 일어났으면하는 것이 연극을 좋아하는 연극 문외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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