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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1 | 칼럼·시평 [문화시평]
독자시평
도서관 사서(2003-12-24 11:07:04)


 아프리카 현대사란 작품을 대할 때 처음 만나는 느낌은 엄청난 작업량이주는 정열에 대한 압도이다. 한 폭의 그림을 한편의 시라 한다면, 이 작품은 긴 서사시와 같아서 작품의 성과를 떠나 굉장한 힘의 충격을 주는 것이다.


 ‘온다라’에서 열렸던 임옥상 작품전은 11.15~11.29까지의 기간을 둘로 나누어 1부 전시에서는 그의 단편작들을 2부 전시에서는 아프리카 현대사를 전시하고 두 차례의 강연회까지 마련한 성의있는 전시회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 임옥상은 이미 아프리카 현대사를 세상에 발표했고 여러 신문, 잡지가 다투어 찬사를 보낸 바 있는 세칭 유명작가인데 이런 대단한 작가가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랑과 긍지를 준다. 시민의 한사람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를 드린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러니까 섣불리 달아 날 생각일랑 말아라 하는 협박일 수 있겠는데 그것은 국토가 균형있게 발전하지 못한 산업화의 여파로 발생한 지방 열등감을 고광주지역에서는 80년 5월을 통하여 극복하고, 오히려 모든 것은 광주로부터라고 할만큼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도 그런 열등감은 극복되어야하고 그 한 방법으로 각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면서 이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지역운동의 주체역량으로 발견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임옥상은 전북화단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현대사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제1부는 풍요하고 평화로운 삶이 깃든 땅 아프리카에 식민지 지배논리에 순응케하는 기독교가 들어오고 이어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적 근대화 그리고 각종 신무기의 위협에 놓이기까지의 수난과 갈등의 역사가 압축되어 그려져 있고, 제2부는 제 고장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지난날 식민모국인 ‘자유세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부터 자유세계의 극심한 인종차별과 박해로 인한 도시빈민화, 그에 따른 범죄군상으로의 전락, 혹은 치안의 앞잡이가 되어 인간적 생존이 철저히 파괴당하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기아문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질서를 토의하는 강대국 정상회담까지 주로 유럽에 사는 아프리카인의 위치와 현실이 그려져 있다. 제3부는 일찌기 노예상인에게 끌려간 아프리카인의 후예인 미국흑인들의 자각과 투쟁, 그리고 완강한 지배체재에 부딪히고 끝내는 제국주의 신식민주의의 용병으로서 제3세계 여러 지역에 파병되어 추악한 전쟁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데까지 중요한 애피소드를 곁들여 가며 그려놓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렇게 죽어 아프리카의 품으로 돌아온 모습을 민족의상을 입은 아프리카 폭포가 지켜보는 장면을 그럼으로써 대단원을 맺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이미 발표되어 그 성과와 한계를 평가받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제3세계적 시각을 충분히 획득하고 있는게 오늘날 아프리카의 신식민지적 실체, 그들의 해방투쟁과 의지와 희망에 대한 민중적 시각을 분명히 하고 있는게 또한 우리 민중적 정서에 접근했는가에 관하여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민중들의 시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지적에는 불만이 많다. 이런 창작이 번역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이 50m나 된다는 작품의 끝에 장난처럼 얹혀져 있는-혹인병사와 기지촌 여인과 그들의 아이로 된 김용태의 작품-부분이 없었다면 이 그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제3세계 사람들과 같은 운명임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되는 월남전 참전에 대한 역사적 참회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운명적 연대를 느끼며 참회를 요구하는 당당한 역사의식의 성취로서 그에 대한 한 표현이 이 작은 부분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장엄하게 펼쳐진 아프리카의 한과 절망 앞에서 그 들을 위한 눈물인 것처럼 느껴진 부분이 있었다. 1부에 속한 한 아프리카인이 광활한 대지처럼 상체를 드러내고 누워 허우적거리는 등위로 참혹하게 그어진 철조망과 찢겨짐.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김지하가 하길종에게 보낸 편지의 한 귀절을 생각했다.


 ‘주인공은 피 뜨거운 젊은이로서 동학꾼이다. 그는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공주의 우금고개 戰投의 일환인 태인싸움에서 왼쪽어깨에 宮乙이라 쓴 거친 한지의 부적을 달고 있었다. 그 부적을 몸에 불이면 총알이 몸을 다칠 수 없다고 동학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의 왼쪽 어깨에 붙어있는 부적을 일본군의 총알이 뚫어버린다 바로 이 뚫어진 부적, 총알이 뚫고 간 피묻은 부적, 이 부적 속에 실패한 혁명, 좌절된 열정, 압살된 정의, 외세와 연합한 봉건지배력의 무력에 의해 짓밟힌 농민의 민족주의, 끊임없이 외침에 유린되어온 우리 역사의 피비린내, 특히 근대한국의 뿌리깊은 역사적 모순의 폭발과 그 폭발의 화盡 한마디로 네가 말한 바 역사적 비극을 상정해 넣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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