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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 | 칼럼·시평 [문화저널]
전북 민연의 출범을 환영하며
문화저널(2003-12-24 11:54:45)


 우리가 역사를 중요시함은 그것이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은 정의의 가시적 승리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러한 승리가 얼마나 힘겨운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통하여 얻어질수 있는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그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쉽게 좌절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나락에 빠져버릴 것 같은 역사의 고비를 힘겹게 틀어잡고 있는 정의의 사도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우리가 역사로부터 얻게 되는 더욱 값진 교훈의 하나이다. 갑오농민전쟁 이후 이 땅에서 전개된 수 많은 인간해방운동의 패배와 승리의 점철을 통하여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것도 바로 이것이다.

유신의 그 암울했던 시절에도, 80년 이후의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역사의 고삐를 틀어쥐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6월 항쟁 때 분연히 그것도 자발적으로 일어섰던 다수의 대중들이 629 이후의 개량적 유화책에 현혹되어 들었던 분노의 매를 그렇게도 쉽게 내 팽게치는 모습이나 대통령 선거의 굴욕적인 결과를 보고도 절망하지 않고 어제의 잘못을 뉘우치며 새로운 다짐을 굳게 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값이 폭락한 고추의 수매를 요구하며 고추에 불을 싸지르는 분노한 농민들과 함께 파행적인 농업정책의 실상을 폭로하기도 하고 최저임금의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더불어 팟쇼와 결탁한 재벌들의 비리를 고발하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교사들이 교육민주화를 위하여 외롭게 싸우고 있는 현자에서도 이들의 모습은 볼 수 있었고 기층민들이 생존권 확보를 위하여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곳에서도 이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몸짓이 언제나 하나였고 그 목소리가 항상 동일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혀 전망이 불투명할 때면 그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가장 정치한 방법을 모색하느라 분열을 하게 되고, 무엇인가 전망이 밝아올 때면 수비게 낙관하여 동일된 소리를 내지 못하곤 했다. 언제나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의 장으로 옮기는데는 쉬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원인의 주로는 이들을 두려워하는 지배세력들의 분열책에 있겠지만, 이것이 비판적 토론을 얼마든지 허용하는 내부의 풍토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는 혹시나 그 원인이 주도권을 잡으려하는 소시민적 편향성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등의 뼈아픈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작게는 전북민족민주운동연합(전북민연) 등의 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의 연합 혹은 부분운동단체들의 연합이요 크게는 건국 이후 최대의 사회운동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전군민족민주연합(전민연)이다.

우리가 전북민연의 출범에 기대를 걸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단순히 여기에 가입한 단체들의 그간의 행적을 높이 사기 때문만이 아니다. 솔직히 그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일도 없지 않았다. 전민협이나 국본등 전북민연의 출범과 더불어 발전적 해체를 했던 단체들의 활동은 대선이나 총선이후 별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결국 대선과 총선 때에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지역주민들의 소외감에 의한 지배세력에 대한 반발에 힘입은 것이지 스스로 이들의 잠재적인 의식을 견인하여 건강한 운동세력으로 부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때는 민주화의 열기에 가득했던 많은 지역주민들이 그 열풍이 지나가자마자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 민주화, 자주화 등 우리게에 가장 절실한 문제들을 자기들의 구체적인 삶과는 무관한, 오히려 시위로 인한 교통의 혼잡등 생활을 번잡스럽게 하는 귀찮은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들에게 관심과 격려를 보내는 것은, 그간의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각이 건강했을 뿐만아니라 그 시행착오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자체역량의 부족이나 전술전략의 미숙 등 주로 안에서 찾으며 스스로를 철저하게 반성하는 성실함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갑오농민군과 같은 건강한 비판세력이 자라날 수 있었던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노정되는 취약지구에 살고 있어 변혁을 가장 절실하게 추구해야할 사람들이면서도 변혁운동에 있어 가장 미온적이고 때로는 퇴행적이기 조차한 이 지역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의 원인을 농민전쟁 이후의 혹심한 탄압이나 지배세력들의 교묘한 술책 등과 연관하여 규명하려는 총체적 시각과, 이처럼 취야갛상황을 바로 운동의 토대로 삼으려는 건강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합이 전체 운동의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날로 교묘해지고 세련화되고 있는 지배세력들의 전술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기된 연합의 모색은 작년 올림픽을 전후하여 가시화하기 시작한다. 민예총이나 언론노조연맹 등의 출범 및 학생운동권의 통합움직입 등은 물론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민민운동세력들의 총연합이라 할 수 있는 전민연을 위한 준비모임들이 전북민연의 결성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할 것이다.

조만간에 실시하게 될 지방자치제와 연관하여서도 이들에 기대하는 바는 적지 않다. 몇일전 모일간지의 조사보도에서도 확인되둣 지방의회에 진출하려 움직이고 있다는 사람들의 면면이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항상 관주변에서 맴돌던 소위 지방의 유지들이 민주화를 팔며세력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대치할수 있는 대항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되거나 지방의회를 장악하게 되었을 때에는 대선에서의 결과처럼 허울만 변할 뿐 실질적인 민주화는 더욱 요원해지는 결과가 될게 뻔하다는 것이다. 이데 대비히여 민민운동세력이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는 일은 숩게 개량화라 해버릴 수 없는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제도권 정치에 흡수됨으로써 개량화해버릴 수 있는 위험을 항상경계하면서 일정한 대중적 힘을 축적해 나가기를 우리는 전북민연과 같은 지역운동연합체에 기대하는 것이다.

조직의 구성이 전체의 추세에 따라 명망가 중심이라는 구태를 지양하고 실질적인 작업을 해낼 사람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실 또한 고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수차례의 연합모색이 결국 실패한 것은 그것이 하나의 조직으로 짜여지기 보다는 명망가 중심의 인맥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조직의 원칙을 강화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선배들의 소외로 인한 잡음에 성심성의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배들의 소외는 분명 다른 의미의 분열로 연결되며 이는 연합의 근분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하나 긍정적인 측면은 이 모임이 실질적인 연합의 성격을 띤 것이 아니라 어Esj 한 단체의 확대개편이 아니냐 하는 등의 따가운 비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비판은 출범시 바로 직전에 같은 장소에서 전민협의 해체식이 있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있는 비판에 대하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만큼 내적으로 성숙해졌고 또 자기반성이 철저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염려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선 제기할 수 있는 것이 구체적인 사안에 접하게 되었을 때 과연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하나되어 대응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이 당위성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전에 많이 목격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다양한 집단들의 모임에서 조직의 결정이 얼마나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하는게 결코 낙관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하나 염려되는 바는 이 지역고 k같은 열악한 토양에서 얼마만한 자생력과 대중적 기분을 확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야갛 s고리의 부분이 분명 가장 확실한 변혁운동을 보장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는 그 잠재적 힘을 결집할수 있는 전위세력의 튼튼한 역량이 전제되었을 때의 일이다. 또한 이런 지역의 주민일수록 분열과 회유의 책략에 특히 허약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민민운동의 가장 중요한 전위세력이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아직 이 단체에 가입을 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학생운동세력도 가입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론 연대투쟁을 모색하겠지만 특히 이 지역에서는 중요한 핵심세력이 빠져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숩게 떨쳐버릴 수는 없다.

아무쪼록 전북민연의 출범과 더불어 이 지역이 반독재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 및 민족의 통일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예향이라는 허울에 휩싸여 사이비 문화놀음에 저지 않고 건실한 문화를 피워내는 삶의 터전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또 자기만의 삶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들 모두 소시민적 안일함을 떨쳐버리고 이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격려는 물론 호응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이와같은 전북민연의 활기찬 의욕과 활동이 단순한 역사의 타산지석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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