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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 | [특집]
때는 바야흐로 창작 판소리의 시대라
손태도 |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문화연(2003-12-29 16:38:42)
2003년인데 아직 조선 시대 이야긴가? 어떤 분이 여러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선생들에게 배운 판소리인들을 모아 놓고, 같은 대목들 이를테면 <춘향가>의 '이별 대목', '십장가 대목' 등등을 각기 배운대로 부르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며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한 분위기가 심화되어 갔다. 나는 무례를 범하는 것 같아 겨우 한 마디 했다. "2003년인데 아직 조선 시대 이야기입니까?" 좌중은 나의 말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제는 어떻게 하든 전통 판소리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근래에 본격화된 창작 판소리 공연들 창작 판소리라고 하면 해방 전후에 많이 불린 <안중근가>, <윤봉길가> 등의 열사가들, 박동진의 <예수전>, 1985년부터 시작된 임진택의 <똥바다>, <오적>, <오월 광주> 등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조직화된 형태로 창작 판소리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근래의 일이다. 현재 창작 판소리 쪽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단체는 '소리여세', '바닥소리', '타루', '판세' 등이 있으나 이 중 가장 오래된 단체는 '소리여세'이다. '소리여세'는 1998년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 시작해서 2000년 창립 공연을 가졌고, 올해 7월 모든 작품들이 창작 판소리들로 된 제7회 공연을 가졌다. 이러한 기존의 창작 판소리 운동을 바탕으로 전주 산조축제 행사의 하나로 2001년부터 또랑 광대 콘테스트가 열려 올해 3회째 대회를 가졌고, 또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행사의 하나로 올해부터는 제1회 창작 판소리 사설 공모대회 및 창작 판소리 사습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서울 인사동에는 2002년 7월부터 매주 일요일 거리 소리판이 열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창작 판소리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 동안 판소리가 음악적으로 너무 발전하여 시대적 내용 면에서 많이 약화되었고, 1964년부터는 아예 판소리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음악적, 문학적 내용들이 고착되어 가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음악적으로 우수하기는 하지만 그 음악적 요소들은 사실상 판소리가 성립된 조선 후기의 문학적 사설들에 근거해 있어 문학적인 면에서 오늘날의 시대적 문제들과 거리가 있는 것은 물론 그러한 문학적 사설들에 근거한 음악적 요소들도 궁극적으로는 오늘날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말도 있듯 예술은, 특히 공연 예술은 당대 사람들의 삶의 주요한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의 삶과 그와 관련된 예술 세계를 갖고 있는 전통 판소리 그 자체는 오늘날의 예술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근래에 음반 매장의 국악 코너에 '창작 판소리'란 항목이 새로 추가된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판소리사에 역행하는 창작 판소리 오늘날 상당한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창작 판소리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나는 이러한 창작 판소리 작업은 판소리사로는 역행하는 작업으로 보고 있다. 판소리는 전통 사회에서 신분을 세습하고 토지조차 가질 수 없었던 광대들이 부른 여러 소리들 중의 하나이다. 판소리 이전에 이들 광대들은 오늘날의 개그에 해당하는 재담극과 간단한 서사적 내용에 몇 가지 노래들을 삽입 가요를 넣고 흉내내기 등 연극적 요소들도 넣어서 공연하는 재담 소리를 그들의 주요 공연물들로 연행해 왔다. 그런데 이 중 재담 소리는 판소리의 직접적 선행 광대 소리였다. 판소리가 재담 소리가 발전하는 가운데서 성립되었다는 것은 판소리 12마당들 중 오늘날 전승되지 않은 <배비장 타령>, <옹고집 타령>, <장끼 타령>, <강릉 매화 타령>, <무숙이 타령>, <가짜 신선 타령> 등 이른바 실전 7가들이 모두 골계적 내용을 하고 있어 재담 소리적 성격이 강한 것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후기 공연 문화의 성숙으로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재담 소리들을 넘어 보다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노래들이 요구되었고, 이 과정에서 판소리가 성립한 것이다. 그리고 판소리 12마당 중에서도 골계 일변도여서 재담 소리적 성격이 강한 실전 7가들이 탈락되며 오늘날 전해지는 <춘향가>, <심청가> 등의 전승 5가에 이르렀다. 전승 5가는 이후 수백 년 간 전승되며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중 광대들이 더욱 발전시킨 것은 음악적 요소이다. 이들 광대들은 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당시에도 판소리는 주로 음악적인 면에서 주목받는 예술로 발전하였다.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판소리에서 이어야 할 것은 이러한 전통 판소리에서의 음악적 성과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또랑 광대는 그러한 판소리의 음악적 성과를 처음부터 이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는 창작 판소리들도 소리 수준에서 보면 전통 판소리에 비할 바 못된다. 오늘날의 창작 판소리들은 판소리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초창기 판소리나 판소리 이전의 재담 소리 단계로 되돌아가 버린 것이다. 판소리의 대중성과 세계성에 있어서 창작 판소리의 역할 판소리의 음악적 성과를 이으면서도 현대 사회의 공연 환경에도 적합한 오늘날의 공연물은 창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우리에게 가장 주요한 공연 예술이 되고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가 인정되는 그러한 창극이 언제 가능할 것인가? 불행히도 우리 창극은 일제 시대 기간 동안 당시의 시대적 문제를 기본적으로 다룰 수 없었다. 해방 후 일제 시대의 관행을 넘어 당시대의 주요한 문제를 다루는 창극이 가능할 수 있었으나, 1962년 국립 창극단 성립되고 군사 정권인 제3공화국 시대로 들어갔으니 국가 단체인 국립 창극단이 어떻게 당시대적 문제를 다룰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은 민주화 시대이다. 그리고 국립 창극단 외의 창극단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도립, 시립 등과 같은 공공 기관 소속들이다. 이러한 공공 기관 소속의 창극단들이 지금까지의 내용 면에서 우선 시대성이 없는 작품들을 공연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재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오늘날의 진정한 예술로서의 창극을 하기까지에는 지금까지 공공 기관들이 제3공화국이래 가지게 된 어용적(?) 성향으로 볼 때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또한 판소리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3∼5분 정도의 짧은 서정적 노래들을 판소리의 음악적 요소를 활용해 만들어 보급하는 것도 나는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들이 긴 판소리를 익힐 수는 없지만 짧은 서정적 노래 한두 곡은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 시대 진정한 공연 예술로서의 창극과 일반 대중들도 익힐 수 있는 짧은 서정적 노래들을 위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창작 판소리 운동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존의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될 창극에 비해 창작 판소리는 시대적 문제들을 손쉽게 작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현대적 내용을 다루는 창작 판소리의 어떤 대목들이 음악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일반 대중들도 그런 대목들을 서정적인 노래 한 편을 부르듯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 판소리가 오늘날 당면한 전통 판소리의 여러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판소리 운동이 오늘날의 판소리인들로 하여금 보다 절실하게 시대적인 문제들에 눈뜨게 하여 오늘날 진정 필요로 하는 예술인들이 되게 하고, 판소리적 성음이 어느 정도 활용된 오늘날의 소리들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게 하는 데에는 분명히 일정한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오늘날 이뤄지는 창작 판소리의 음악적 수준과 전통 판소리의 음악적 수준은 비교할 것이 못된다. 전통 판소리의 음악은 수백 년 동안 발전되어 온 것이지만 창작 판소리의 음악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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