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9.4 | 칼럼·시평 [문화비평]
문학사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서-鄭芝溶작품 고찰-
박유경(2004-01-27 10:54:47)


 최근 들어 우리 문학사에서 실종 당해야 했던 몇몇 문인들에 대한 해금의 문제가 새삼 제기되고 있다. 해금작가의 작품이 전혀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거나 미답의 불모지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 동안에도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정지용을 위시하여 金훌려*, 白石퉁 1930년대의 주요 문인들의 경우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상당한 분량의 연구업적이 축적되어 왔다. 이는 학교 교재에도 익명 내지 O ·×로만 표기되어오던 그들의 작품에 관한 연구성과를 일반화시키고 공시화 한다는 점에서 또는 한쪽 면으로만 치우쳐왔던 문학사가 그 다쐐과 깊이를 확보한다는 첨에서 기대되는 문제이다. 이들 월·납북 작가들이 주로 활동한 1930년대는 우리의 詩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시기며 일제 강점기를 넘어서 해방 이후의 詩로 연결되며 지금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단절된 듯이 여겨지는 우리 문학사에 연속성을 확보해주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한국문학」이라는 단일개념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고전문학」이니「한국현대문학」이니 하는 용어가 실제 통용되는 게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바 아니다. 원론적으로 한국사를 韓民族의 역사전개의 과정으로 살펴본다면 한민족이 존속하는 한 그 민족의 문학 또한 엄연한 연속성을 확보해야 합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역사전개상 문학이 차지하는 몫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韓國語 통한 저항과 창조의 작업이다. 즉 문학에서의 저항과 창조는 한국어의 세련과 그것을 통한 사회적 모순의 표현 및 포착에 임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의식을 안고서 30·40년대의 암흑과 혼란을 거쳐 民族分斷과 전쟁 그리고 오늘까지의 대 전개에 있어서 표면적 혹은 이면적으로 한국 현대시의 높이를 언어의 비유로써 지탱한 詩人인 鄭효溶을 만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1935년에 나온 「鄭芝容詩集」과 1941년의 「白 澤」은 다함께 중대한 史的 意義를 띤다. 그가 쌓아올린 높이는 이제까지의 연구결과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30년대 金趣* 또는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권 아래에서 출발했으나 오히려 그 영향의 밖을 지향하여 동양의 古典과 우리의 전통문학과 만난다. 그러나 그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사는 詩人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芝容의 詩가 지닌 현대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金起林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좋은 한국의 시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이었으며 詩속에 공간성을 이끌어 넣었으며 원초적 ·직관적 감상을 詩속에 맞아들여서 독창적인 형상을 주었고 詩의 유일한 매개인 言語에 대해 주목한 최초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얼 컬어 혹자는 그가 英文學을 전공했다는 것과 그의 시에 청신한 시각적 이미지가 풍부하다는 점을 결부시켜 서구의 이미지즘이나 일본의 감각파의 영향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있으나 동양적인 영향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동양의 古典에서의 경도는 그의 詩論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그에 따르면 詩는 언어와 肉化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肉化의 방법은 서구의 것에서 획득되기보다는 동양의 것에서 쉽게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鄭훨입의 리듬은 한국의 사설시조 또는 민요가락 위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애송되는 것이다. 우리 언어에의 血肉的 愛는 전통의 기반 위에서 체득되는 것이지 이론적 습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문학의 연속성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자세히 검정해두어야 할 부분이 20세기 의 개화기문학과 新文學이 접하는 부분, 일제 말 解放문학의규명이라 할 때 해금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이런 문제에 실질적으로 접근해갈 수 었으리라고 여겨진다. 특히 鄭芝容의 작품은 빼놓을 수 없는 우리 문학사의 귀중한 줄기랄 수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