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월을 맞이하는 심경은 착잡 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엄청난 경험을 하고도 또 그 이후10여년에 걸친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거듭남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물론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이 조금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태가 극복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민주화의 진척도 확인활 수 없으며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는 듯하다.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신식민지적 상황도 더 착잡해지기만 하고 반공 냉전 이데을로기도 극복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이없는 이기주의적 기능인만을 양성하는 교육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여전히‘좌경의식화 작업’으로 불온시되고, 민족통일의 활로를 개적하기 위한 자기. 희생적 시도가 기껏해야 소영웅주의적 경거망동으로 치부되고 있으며, 최소한의 생폰권 확보를 요구하는 기충민중들의 시위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반사회적 폭력행위로때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제모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그 방법이나 전술전략에 있어서 구태의연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확고한 전망을 획득하기 위하여 강조되었던 과학적 인식틀의 확보 문제는 치열한 논쟁을 야기하는 데는 일단 성공하였지만 관념적 사상투쟁으로 인하여 분파주의를 결과하였으며, 대중성확보를 위한 노력도 개량주의적 국면전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하여 선도성만을 중시하는 ‘소수 정예’의 모험주의로 흘러가버린 듯하다. 80년 광주를 반성하면서 제기되었고 또 대선에서의 패배 동을 통하여 확인 되었던 이와같은 문제점들이 전혀 극복되지 못한 채 또다시 뼈아픈 시행착오를 예비하고 있는 듯하다는 진단은 물론 패배주의의 산물일 수도 었다. 수구세력들에 의해 펼쳐지고 있는 말기증세적 강경탄압국면에 위축당한 소시민의 의구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은 제스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 일련의 강경조처에 일반대중들이 민감하게 반용하고 있으며 6월항쟁 동에서 보여준 바 있는 건강한 의식은 상실한 채 개인적 안위만을 염려하는 방향으로 퇴행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의 숱한 싸움을 통해서도 역사발전의 당위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점은, 결국 변혁이라는 것이 이들의 대중적 동조를 통하여 이룩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마땅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구체적인 역사발전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다시 선명성 논쟁에만 급급하여, 궁극적인 해결책 이외의 모든 것을 개량주의로 매도해버리는 등의 편향적 태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변혁의 주도적 세력은 아닐지라도, 그 동조세력으로 묶을 수 있었던 사람들을 이탈케 했으며, 결과적으로 요즘 우리사회의 각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보수화의 경향을 부채질하고 만 것이다. 문목사 방북에 대한 반동적 반응은 그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지역 문화 운동 단체들에서도 이러한 편향적 태도는 쉽게 극복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6월항쟁 이후 이제까지 유격적인 형태로 진행되던 싸움의 양상은 다분히 진지전적인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전민련의 출범이나 민예총의 발족은 바로 어느정도 합법적인 공간(진지)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산되어 었던 세력을 규합, 지속적인 싸움을 펼쳐나가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할 수 있다. 문화운동도 단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커다란 대중적 공감을 바탕으로 ‘대항문화(counter-culture)’혹은 ‘대체문화(al-ternative-culture)’를 제시하여 불건강한 문화를 극복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문화운동단체들의 발전적 변신의 노력은 분명 이러한 전체적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질적 내용이 반드시 이러한 추론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백제마당’과 ‘녹두골’의 시행착오를 실천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갖은 ‘몸부림’을해왔던,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운동단체라 할 수 있는, ‘온고을’이 아직도 튼실한 자립구조와 대중적 지지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남민시’가 안고 있던 ‘소시민적 문학주의’의한계를 극복하고, 좀더 확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좀더 실천적인 ‘문학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민족문학인협의회’가 주로 회원들의 출판기념회만을 주관할 뿔 ‘남민시’가 해왔던 내용의 활동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퉁이 이 지역 문화운동단체들의 현주소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일부 단체들이 다시 한번 ‘발전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선 반가우면서도 염려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당장 이러한 모임에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었던 사람들이 이러한 거듭된 ‘변신’에 혹 식상해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제무엇인가 하려나 보다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일만 벌리기를 좋아한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라는 얘기이다. 이는 단순히 변화를 싫어하는 그들의 보수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적으로 그러한 변화의 필요성이 철저하게 검중되지 않은 채 외형객인 변신만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이제까지의 행적으로 보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어 하는 얘기이다. 더구나 연합체로의 변신일 때에는 그당위성이 더욱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일 조직으로 활동할 때보다도 못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기왕에 확보한 지지기반조차 상실하는 결과를 진행되는일이지만, ‘민족문확인협의회’가 조직을 정비하고 자기 위상율 확실히 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또 하나 염려스러운 것은 연합체를 구성한다고 하면서 전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개개의 부문 단체들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전체가 연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전위적인 일부만이 참여하는 연합체를 시도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우선은 그것이 광범위한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전체운동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결국 문화운동 초기 소수 전위조직에 의한 유교적 싸움의 형태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인가? 운동에 있어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 부질없는 정통성 시비에만 골몰하여 결국 ‘소수정예’롤 내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이러한 편향적 움직임과 혹 궤를 같이하는 것은 아닌가? 또 내적 노선갈동을 원활하게 정리해내지 못하여 각자가제자리( ? ) 를 찾아나서는 편법의 일환운 아닌가? 하는 동의 부질없는( ?) 염려를쉽게 떨처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와같이 전위성 혹은 선도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역문화운동의 본질적 속성과도 어긋나는 일
이 아닌가 하는 첨이다. 이는 물론 정치투쟁의 중요성과 문화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철처한 인식의 소산일 것이다. 문화운동은 마땅히 정치투쟁을 비롯한 전체운동이 추구하는 바룰 지향해야하며 이를 선천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경한 정치구호를 외첨으로써가 아니라 그 내용을 잘 무르익은 형태로 빚어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이다. 지역이라고 하는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그 구체적 삶에 의하여 형성된 지역주민들의 정서에 호소할수 있는 문화매체를 개발하고 이를 통하여 전체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대중적 공감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목적의식 없이 그 과정이나 방법에 집착하는 밀도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목적의식에만 사로잡혀 그 방법과 과정을 소훌히 함으로써 그 목적의 실현을 결과적으로는 불가능하게 하는 어리석옴도 피해야 할 일이다. 문화주의에 대한 경계도 문화자체에 대한 기피로 치닫는 것은 분명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민족문학인협의회’가 ‘문학주의’에 대한 지나친 염려때문에 소박하기는 하지만 다소 비판적이고 진보적일 수도 있는 문학인들을 포용하여, 이들을 건강한 세력으로 이끌어 내지 못한 것도 이러한 것과 연관된다 하겠다. 연합체 결성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이, 표방하고 있는 이념에 비해지나치게 소박한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재고해야할 일이다. 그실질적 내용은 어떠하든 간에, 기왕 비슷한 이념을 표방하고 있는 지역의 많은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개인적 선심에 호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물흔 아직도 개인적 선심에 호소할 부분윤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선행해야할 일온 조직적 차훤의 연대이다. 그래서개인의 참여도 각각의 조직을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하는 것이다.
연합체구성 자체의 의미를 과소평가하여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물며 이를 음해하기 위한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을대변하여 그 염려되는 바를 지적했을 뿔이다. 이는 5월이 단순히 무엇을 기리고 아쉬워 하는 달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절실한 바랩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거듭남을 위해서는 먼저 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먼저 거듭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자기 스스로 뼈를 깎는반성을하는5월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