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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7 | 칼럼·시평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무거운 메시지와 뛰어난 영상의 도움-프라하의 봄을 보고
최만호(2004-01-27 11:59:13)


 1968년 4월, 체코공산당 제1서기 알렉산더 두브체크는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Socia-lism with a human facer, 즉 자유 ·민주화 노선을 추구하는 새 강령을 제창한다. 그는 스탈린식 강압통치에 짓눌려 있던 체코 국민들에게 ‘비밀성찰이 없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있고, 여론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정책의 기초를 두며 현대운명이 자유롭게 발전하고 시민들이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회주의’의 건설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해 8월, 소련의 무력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은 시들고 체코인의 자주성과 문화적 자긍심은 군화발에 짓밟히고 만다. 1984년, 체코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드라마작가인 영문학 전공의 밀란 문데라는 이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체코어 소설 『존재의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하여 세계적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같은 제목의 필립 카프만 감독의 영화(수입영화사에서 붙인 ‘프라하의 봄’은 다분히 흥행을 의식한 듯한 설익은 제목이다)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주제는 대립된 상황에서의 존재의 갈등과 고뇌이다. 억압적 지배체제 아래 놓인 개인의 무력감과 절망, 예술의 표현방식과 현실적 고뇌의 부조환. 얘첫과 사활임 내면적 불일치, 견딜 수 없는 자기존재의 중압감과 기만성, 그러한 연약한 개인에 대한 옹호와 변명. 한편의 영화가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메시지들을 카프만은 간결한 영어대본과 뛰어난 경상의 도움으로 적당한 유배와 위트를 섞어가면서 끌어 나간다. 젊과 유능한 외과의사이며, 유난히 여자를 밝히는 토마스-다니엘 데이루이스, 그는 국내에서도 출간된 ‘시학입분’의 저자인 영국의 계관시인 세실데이 루이스의 아들이다-는 자신을 잘 이해하는 화가 사비나(레나 을린분--스웨덴 출신 이 여배우는 그 몸매만큼 세련된 연기를 펼친다)와 구속없는 섹스를 즐기고, 작은 온천마을에 출장가서 알게 된 테레사(쥬리엣 비노슈분-프량스 출신의 신인 여배우)가 프라하 자신의 아파트로 찾아오자 함께 살게 된다. ‘안나 카레리나’를 즐겨 읽으며 무겁고 진지한 대화를 바라고 보다 강력하고 수준 높은 사진찍기를 바라는 테레사, 그녀를 사비나에게 소개하여 일자리를 구해 준 토마스는 자신의 환자였던 농부 파벨과 검은 넥타이를 맨 돼지 메피스토를 입회인으로 삼아 결혼식을 올리고, 기념으로 산강아지 카레닌과 함께 생활한다.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생각하고 여전히 ‘미지의 여체에의 탐험’을 즐기는 토머스와 이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테레사의 결혼생활은 소련군의 체코 침공 후 피신한 제네바에서도 여전하고, 허탈감에 빠진 테레사는 다시 프라하로 돌아간다.‘당신의 참을 수 없는 경박한 인생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라는 테레사의 편지에 충격받은 토머스는 그녀의 품안으로 돌아가지만, 공산당 지도자들을 비난한 과거의 글이 문제가 되어 유리창닦이 인부로 전락하고, 여전히 계속되는 그의 바람기를 이해하려는 테레사의 한 엔지니어와의 뜻 없는 관계는 참담한 절망과 두려옴만을 안겨준다. 파벨의 시골농장에서의 생활이 그들의 유일한 출구였다. 토머스와 테레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말한다. “이제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자신이 직접 각본을 정리한 카프만 감독은 영화 전체의 흐름을 주로 대조의 상징성을 통해 이끌어 나간다. 도처에서 찾아낼 수 있는 이러한 상징성들-토머스의 휘파람부는 뇌수술 장면과 외디푸스왕의 예를 들어 공산당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장면, 사비나의 제네바에서의 거울 깨서 작업하기와 프란츠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의 화면의 푸른 색조, 테레사가 소련군의 무력진압에 항거하는 프라하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반 기자에 넘겨주려다 체포되고 그 사진이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찾아내 처벌하는 데 이용되는 대목, 제네바에서의 선인장찍기와 사비나와 테레사의 동누드촬영 시위장면의 체코민요와토머스가 유리창 닦을 때의 러시아민요 ‘스텐카라친’, 토머스와 테레사의 각기 다른 상대와의 섹스장면 동-은 의미 심장하기도 하지만 쉽게 그의도가드 〈러나보이고, 빈번하게 사용되는 만큼 영화의 극적 맥락의 긴장이 떨어져 다소 지루한 느낌을 안겨 준다. 스벤 니크비스트(Sven Nykvist)의 뛰어난 영상이 영화의 그러한 약점을 훌륭히 커버하고 있다.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과 주로 작업해 옹이 최고의 촬영기사의 작품 중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와 ‘신의 아그네스’는 국내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대부분의 장면을 눈높이에서 잡아낸 -eye level shot-카메라의 사실적 영상이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차분하면서도 능축하게, 중후하면서도 치밀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침착하고 표정이 풍부한 질감은 사실적인 색조와 함께 화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토머스와 테레사가 처음 만나는 온천풀장의 녹색과 검은색의 대비, 파벨의 시골농장 생활의 활기에 넘치는 녹색조, 황혼의 황홀한 오렌지색조기·채력적이다. 시위장면의 당시 체코다큐멘터리 뉴스훨롬과 현장촬영의 절묘한 배합도 생동감이 넘친다. 박력있다. 음악도 멋지다. 원작에서 베토벤이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체코의 민족음악 작꼭가 레오쉬 야나체크(1854~1928)의 찾은 듯한 쾌활함과 부드러운 화려함이 영상과 멋지게 어울린다. 특히 스메타나 사중주단이 연주하는 현악사중주 제2번 ‘비밀편지’의 4악장 알레그로는 일품이다. 체코의 전통민요 요이 요이 요이(Joi, Joi Joi)’와 체쿄여가수 마르타 국비노바가 부르는 비톨즈의 ‘혜이 쥬드(Hey Jude)’도 이색적인 맛이 넘친다. 댄스클럽에서 째즈 풍으로 연주되는 ‘스탠카라친’도 매끈하다.
편집의 윌터 마치도 ‘대부 1 ·2’와‘지옥의 묵시록’에서 보여준 것처럼 외관록을 자랑한다. 미국 사울 자엔츠회사 1988년 작품.
차다로그에는 173분짜리로 되어 있으나 서울 영동시네빡스에서의 상영시간은 162분이다.
〈〉꼬리말-편집실수. 파벨의 농장에서 토머스가 통나무를 쌓아 올릴 때, 메피스토와 차례닌이 마당에서 노는 장면이 불필요하게 끼워 넣어진 것을 편집상의 실수로 보인다. 아니면 이것도 의미심장한 상징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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