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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7 | 특집 [특집]
백제기행13
소설 '태백산맥'과 90년대 민족문학
문화저널(2004-01-27 15:10:27)


 “5월 5일과 6일 연휴에 백제기행 따라 갈까요” 내 말에 남편은 어디를 누구와 무엇을 보러 가느냐? 는 질문을 생략하고 “몸이 괜찮겠어?”라고 했다. 백제기행 1회 때부터 내가 참가했었기 때문에 백제기행이 그이에게 생소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 가족이 생각 깊이 아니하고도 불쑥 튕겨 나올만 큼 내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 함축된 반응인데 이것은 건강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다녀오라는 허락이었다. 우리는 구식 부부여서 이 정도 대화만으로도 의사소통은 충분하였다. 걷는 것이 금기사항인 건강상태로 백제기행 참가신청을 하게 된 것은 이번 기행이 태백산맥제였기 때문이었다. 먼저는 내가 한국문학에서 두 번째 수필가증을 발급 받았는데 조정래 선생님이 주간이셨다.
태백산맥제라면 틀림없이 선생님이 참석하실 터여서 내 마음의 꿀림이 각별하였고 다음이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나의 관심이었다. 나는 태백산맥이 한국문화에 연재될 때 그리고 몇 권씩 책으로 묶어 출간되었을 때 그리고 10권 완간을 딸에게 선물하면서 또 읽었으니까 세번 이상을 읽은 애독자이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가장 매력을 느낀 대상은 김범우였다. 지식인=유산인(有産人)=부르죠아지로 인식된 시대의 김범우의 삶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아저씨 역사였기 때문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중학에 입학하던 해에 6·25가터진 우리 또래는 어떤 형태로던 직접 보고들은 것들이어서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대가 컸던 것이다. 물론 철든 나이가 아니었고 판단력이 있을 나이도 아니어서 특별히 주목해 본 것이나 확실한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막연하고 불확실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호기심의 자연발생 때문일런지 모른다. 다른 동장 인물들이 좌 ·우 하나씩을 선택하여 자기가 선택한 것만을 위하여 행동하고 목소리를 높여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김범우는 그렇지 않고 그의 지식과 재산과 양심적 선택이 처세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어 창백한 인텔리로 망가진다. 지식인의심리변화에 천착하는 면인 나는 그래서 그에게 관심이 유난하였다. 이번 기행에서 그와의 해후를 기대한 이유이다. 그야 김범우는 작가가 낳은 가공인물이다.
나는 소설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의 김범우의 인간적 고뇌를 정리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내페이퍼를 받아보니 마침 김범우가 언급되어 있었다. 그래서나는 부득이 김범우와의 해후를 포기하고 달리 대상을 물색해 보았다. 문득 생각이 난 것은 스스로 선태하지 못하면서 큰 몫의 희생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머니 애인 아내로 인연 지어진 여성들이 그 중 하나였다. 어머니 애인 아내라는 삶은 남편과 아들과 애인의 사상에 의하여 강제된다. 자신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남편이나 아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형편에 연결됨으로 함몰 당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에게 사상이나 이념이 존재했는가? 내 결론은 아니다라는 고개 저음이다.
석주관 전적지에서 약속시간 훨씬 지난 한길문학기행팀을 기다리면서 나는 곰곰히 그 여인들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소화, 이지숙, 들몰댁, 외서댁, 안창민의어머니 신씨, 과수원댁, 보성댁, 죽산댁 또 누구더라------. 피아골 혼백들 못지 않게 그들 또한 역사의 희생자였고 역시 함께 기억되어져야할 한 서린 영혼이었다.
무당의 딸로 무당이 된 소화는 소녀시절에 사모한 적이 있는 공산주의자 정하섭과의 사랑을 신령님의 뜻으로 수용하였다. 신령님을 모시는 무당에게 신령님의 뭇운 절대적 의미여서 이유나 조건이나 거부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순응만이 존재할 뿔이었다.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은 정하엽의 사상과 이념까지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심부름을 시켜 달라니 무섭고 겁나지 않아? “무섭고 겁나는 일이야 고비만 냉기면 되는 일 이제라. 그라고 그리 큰일 허는디, 그만헌 고초야 따라 댕기것제라”꼭 골수당원이 교육과정에서 하는 말을 한다. 그녀의 그런 마음이 혁명의식의 자각이 아니라 사랑이 매개가 된 센티멘탈의 산물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지 맘이 그렁께 지 겉은 것 허시는 일에 끼주지는 안혀도 그 전맹키로 심바람은 시켜주시씨요. 더 영축없이 헐 꺼싱께요.”소화에게는 사상+이념=사랑이었다.
국민학교 여교사 이지숙은 안창민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사상과 이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인지한다. 소화와는 달리 그녀는 이미 상당히 깊이 조직에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창민에 대한 사랑이 지하로부터
지상으로 그를 노출시킨다. 안창민의 어머니 병간호를 자청하고 부상당한 안창민의 총상을 치료해서 피신을 시키는 위험을 감행한다. 안창민의 어머니 신씨는 궂은일은 해 본적이 없었지만 아들이 떠난 후부터 직접논두렁에 나가 작인들과 함께 한다. 이들의 제의에 따라 표나지 않게 소작료를 내린 것이 아들이 사범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할 필요 없이 전적으로 아들을 신뢰한다. 아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가 그녀의 사랑이 머무는 범위가 된다.
과수원댁이 아들의 심부름이라며 돈올 청 할 때도 그녀는 암말 없이 거금을 내준다. 아들의 부상을 치료한 죄로 감옥에 가있는 병원장과 이지숙의 석방을 위하여 성치않은 몸으로 그들을 돕는다. 그러면서도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아들이 잡히지 않고 꼭꼭 숨어살아 있기를 빌고 또 빈다.
배성오의 모친 과수원댁은 헛간에 숨져놓은 아들에게 이렇게 심정올 토로한다.“이눔아 꿈에라도 고런 정헌소리 허덜 마러, 새끼일이라 죽지못해 나선 것 이제 빨갱이 돕자고 헌 일이 아닝께. 이 에미속 똑똑허니 알어야 써.”그러나 과수원댁은 자신에게 닥칠 불행에 대한 두려움보다 면사무소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큰아들에 대한 불안과 걸핏하면 붙들려가 곤욕을 치루는 남편에 대한염려로 간이 졸아붙는 것이다.
하대치의 아내 들몰댁의 형편 또한 기가 막히는 정경이다. 들몰댁은 배움도 없고 고생으로 잔뼈가 굵었으나 속이 깊었고 심성이 착한 아낙이었다. 그러나 들몰댁의 최대의 관심은 두아들과의 생존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내용이 찍힌지도 모를 종이에 시키는 대로 손도장을 찍고 남편이 나타나면 신고를 해야한다는 명령에 하먼이라를 연발한다. 똥통의 구더기라도 살아 남아 하대치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것만이 들몰댁의 삶의 목표였다. 그러나 들몰댁에게 남편 하대치는 하늘이었고 목숨 그 자체였다.“남편을 하늘보다 높게 알고 섬겨야 한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음으로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옳은 것만으로 여겨왔다. 주색잡기 허신것도 아니고 남정네하는 일인디 무신 짚은 뜻이 있것제라 그래서 남편이 없어 겪는 고생도 참아내고 괴로움도 견디어 냈다.
불명이나 원망스러움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전혀 내 색을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입이 꿇도록하는 말처럼 남편이 뜬구름 참는 것 그만하고 마음을 고쳐먹어 부지런히 땅 뒤지며 새끼들하고 한지붕 밑에 이마 맞대고 사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말조차도 입밖에 낸 일이 없었다. 남편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한번도 그녀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확실이 무엇을 하고자하는 일인지 일찍부터 알아왔다. 누구한테 세세히 들은 것이 아니고 남편이 하는 일이라 신경이 쏠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이었다.”들몰댁은 남편의 일에 남정네 하는 일이니까 짚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것으로 남편을 이해한다.
남편을 돕는 몫으로 고문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인치를 당해 시아버지가 죽는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낼 궁리를 한다.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은 타고난 미모와 풍만한 육체때문에 청년단장 염상구와 몸을 섞게 된다. 빨갱이남편은 누구에게나 결정적 약점이어서 온전히 목숨을 지켜내기에는 너무 무거운 멍에였다. 치욕스러운 임신을 확인하고 외서댁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낳은 아들은 친부에게 보내는데 강동식은 끝내 염상구의 총에 사살되고 만다. 염상구의 어머니 호산댁이야말로 사상과 이념이 창출한 비극의 히로인이다.
염상구 청년단장의 어머니이고 빨찌산대장 염상진의 어머니이다. 호산댁은 가난에 찌들린 몸고생도 심하게 겪었지만 두 아들 때문에 한 마음고생은 몸고생에 비할것이 아니었다. 천하를 호령할 줄로 믿은 큰아들이 공산주의 바람을 일으켜서 쫓겨다니고 작은 아들은 세상에는 다시없는 개망나니로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종적을 감추어버려 목숨을 조이더니 해방이 되고는 제형에게 총부리를 맞대고 서게 되었다. 호산댁은 큰아들도 작은 아들도 말릴 수가 없다. 숭처럼 타는 마음만 두 아들 사이를 오락가락하였다. 총소리만 들리면 그 자리에 무릎을 꺾고 앉아 엎드려서 혀가 마르게 비는 것은 산신님 신령님 터줏대감님 우리 자식들 상하 지 않게 해 주십소사.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녀에게는 둘 다 소중한 자식일 뿐이었던 것이다.
염상구의 핏줄인 외서댁이 떠넘기고 간 핏덩이를 키우면서 큰 아들네 손자손녀를 굶기지 않으려고 작은아들 눈치보기에 허리가 더 굽는다.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은 성미가 괄괄하여 불명 불만뿐만 아니라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토로하면서 상대와 정면으로 부딪쳐 나간다. 두 다리 뻗고 권세를 누리며 살수 있는 세상이 왔는가했는데 뭇밖에 산으로 숨어다니는 남편을 향해 목청껏 욕을 퍼붓는다. 공산당을 하려고 했으면 장가를 들지 말고 더구나 아이들을 낳지 말았어야 되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죽산댁은 취조경찰 앞에서 이렇게 대답한다.“남편이 숨어들었으면 어쩔려고 했지 ? 워쩌기는 워째라내빌나도야제라. 내버려 두다니 ? 으짤것이요.
명색이 냄편인디. 빨갱이를 숨겨주면 죄가 된다는 것올 몰라서 숨겨 줘 ? 아까 대답 안혔소 냄편잉께 으짤수가 없다고. 글쎄 남편이라도 숨겨주면 안 돼 경찰에 알려야지. 나는 그리 못혀라 빨갱이질 허는 것 이사 징글징글허제만 하나뿐인 아그덜 애비럴 워치케 나 손으로 죽게 맹글 것이요. 죽긴 애 죽어 마음만 돌리면 얼마든지 살려줘. 그 남정네가 사람들을 올매나 많이 죽였는디. 경찰이 무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랍디여 ? 고건 사람꺼정 살려주게 그러고 그 남정네 맘 돌릴 남정네가 아니요. 이것 참 그럼 그런 독종을 숨겨주면 당신 죄가 얼마나 커지는지 알기나 해 ? 그렁께 시시때때로 잽혀와 갖고 매디 당허는것 아니요.”이왕지사 당하는 일에 남편에게는 가정에 보탬이 되지 않는 사상과 이념이 무슨 도깨비짓이냐? 악쓰고 대들었으나 그러나 그러한 남편을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 자수를 시킬 의사는 없다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뱃짱을 가졌다. 멀쩡한 자기 소견을 가지고 남편의사상과 이념을 거부하면서도 남편의 자리 아이들 아버지의 자리 역시 확실하게 인정해 놓고 그것에 대한아내의 도리 아이들 어머니의 도리를 저버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아들이 빨갱이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아버지가 남편이 빨갱이라고 해서 자식이나 마누라가 왜 빨갱이가 되느냐? 고 고정관념에 강력하게 대항한다. 남편이 빨갱이 대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갱이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나 자신이 죽어지 낼 수는 없다는 것이 죽산댁 태도였다. 그러나 죽산댁은 남편의 사상과 이념 때문에 결손가정이 되었다고 여기는 보성댁의 발악 앞에 한 마리 침맞은 지네처럼 스르르 무너진다. 바로 눈앞에 독을 뿜고서 있는 것은 민순경의 마누라 보성댁 이었던 것이다. “나가 바로 니년 새끼럴 빨갱이로 몰았다. 워디 내 가쟁이럴 니년이 먼첨 찢어봐라.
니년 냄편손에 우리 냄편이 죽었디끼 인자 니년 손에내가 가쟁이 잠 찢어저 죽어보자” 방을 뛰쳐 나올때의 힘은 어디로 간 것일까? 죽산댁은 팔다리에 맥이 빠지고 눈길이 떨어질 정도로 기가 꺾이고 있었다. 보성댁의 남편 민순경은 이번 난리통에 총을 맞아죽었다.
남편이 총질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하들이 한 짓이니까 남편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성댁은 남편이 죽고 나서 표가 나게 달라졌다. 눈에 살기가 돌고 걸핏하면 싸우려고 들었다. 죽산댁은 보성댁 앞에서는 그저 죄인이었다. 하늘아래 둘일 수 없는 남편을 죽게했으니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랴. 보성댁이 무슨 욕을 하건 어떤 행패를 부리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죽산댁이 당하는 고통에는 배고픔과 매타작 뿐만 아니라 남편이 지은 죄에 대한 아내로서의 죄닦음이있었던 것이다.
어둠에 묻힌 피아골은 그러나 무표정하게 깊어만 갔다. 흥올 부추기던 겐지갱의 풍물놀이에도 격높은 고은시인의 혼부름에도, 진도민요패의 처량 맞도록 구슬픈 진혼소리에도,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는 고사먹 냄새에도, 쌀뜨물보다 진한 막걸리와 귀를 세운 돼지머리에도, 하늘을 태울 듯 한 장적더니 불길의 뜨거움에도, 토지동국민학교 운동장을 감고 도는 강강수월래에도 수 백명 오늘의 젊은이들이 목청껏 지르는 합성에도 피아골 골짝은 메아리를 삼킨채 침묵하고 있다.
모태 신앙이 기독교인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진귀한 구경이어서 고사가 진행되는 동안 열심히 후랫쉬를 터쳤다. 독실한 불교신자 정녀 한 분이 “제대로 상도마련하지 않고 혼백만 깨우면 그 또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는 염려를 흘렸는데 정말오늘밤 지리산원혼들이 씻김을 받기는 했는지 ?남편과 아들과 애인이 얻고자 했던 “무엇” 때문에 더럽혀지고 짓밟히고 찢겨 북두갈구리보다 험해진 손등으로 삶을 지탱하였던 소화, 이지숙, 신씨, 외서댁, 죽산댁, 호산댁, 보성댁, 들몰댁의 한이 풀어졌으면싶다. 남편과 아들과 애인이 얻고자 한 “무엇” 때문에 아내와 어머니가 잃어버린 것들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게 되었을까? 그들 중에 끝내 산으로 들어가 전사가 되기도 하고 더러는 그 “무엇”의 실현을 위해 선두에 나서기도 하도록 소설은 진행되지만 역시 그 모든 진전은 출발의 동기에서 빗나가지 않고 있다. 남자에게는 어머니와 아내나 애인이나 자식보다 더 큰 것이 존재하는데 어머니에게는 자식보다 아내에게는 남편보다 애인에게는 사랑을 바치는 상대보다 더 큰 것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참가자들이 다른 때의 빠듯하고 숨찬 진행에 길들어서 한길문학팀을 기다리며 허송한 시간을 아까워하고 많은 식구가 모여 욕심껏 토론의 시간을 못 가진것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했지만 내게는 그 빈 시간이 혼자 생각에 묻히는 여유여서 오히려 쫓기지 않아 느긋하였다. 한가지 미진했던 것은 발바닥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는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구름 장막 속에서 들었다는 한길 문학사 주간의 강연을 산행을 못해 듣지 못하고 돌아온 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피아골 바람소리를 다시 듣고 다음에 다녀올 장송기행에 새로운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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