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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8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판소리란 무엇인가8
최동현 판소리 연구가(2004-01-27 15:31:29)

지난번에는 장단을 리듬으로 설명하는 것이 장단의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말하고, 리듬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리듬의 특징과, 판소리 장단의 종류, 그리고 장단의 〈맺음〉과 〈풂〉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리듬의 특질로 제일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현재적 지각〉이라는 점이다. 즉, 리듬은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지각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때로 밤낮의 교체나 사계절의 변화에 리듬이 있다고도 말하는데, 이는 리듬의 현재적 지각이라는 특성에 비추어 볼 때 현실적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반성적 추론에 의해 관념적 ·추상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적 지각이라 했을 때, 현재가 문제가 된다. 물론 물리적으로 말하면 현재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는 움직이는 상태일 뿐이지, 일정한 폭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현재란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현재 진행 중에 있다고 느끼는 현재, 즉 심리적 현재이다. 음악심리학에서는 현재 진행 중 인 것으로 느끼는 시간을 5초, 6초, 12초 등으로 말하고 있는데, 최대치로 잡더라도 12초를 넘지 않는다. 이 시간을 넘어가면 같은 단위로 느껴지지 않고, 분리된 것으로 지각하게된다. 장단의 경우도 이 한도를 벗어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음악의 장단은 늘 이 현재의 폭을 최대한으로 넓히려는 경향을 갖고 있으며, 때로이 한계를 벗어난다. 정악은 말할 것도 없고, 판소리에서도 진양조는 이 한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리듬은 등질적인 운동이 아니라, 분절에 의한 운동의 갱신과 지속에 의해 성립하고, 유사한 요소의 회귀에 의해 보강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등질적인 운동이 아니라는 것은 곧 규칙성 ·주기성에 의한 기계적 ·반복적인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분절〉에 의해서 일정한 단위의 패턴을 형성해야 하고, 이 패턴이 매번 새로워져야(갱신되어야) 하며, 일정 시간 지속되어야 한다. 분절이란 운동의 자연스런 흐름이 아니라, 오히려 일시적인 억제가 수반되는 현상이다. 리듬의 어원인 리트모스(rhythmos)가 〈흐름〉이 아니라, 〈휴식 혹은 운동의 끊임없는 제한〉을 뜻한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그러면서도 리듬은 스스로 정체확인이 되어야한다. 그러므로 〈유사한 요소의 회귀에 의해 보강〉 되어야 하는 것이다.
리듬은 결국 유사한 요소의 회귀라고 하는 〈구속〉과 갱신이라고 하는 〈자유〉의 양극 사이의 힘의 균형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속〉의 측면이 질서를,〈자유〉의 측면이 생명력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리듬은 자연적 ·자발적 ·생명적 질서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다. 독일의 음악학자 클라게스는 리듬을 파도의 운동에 비유했는데, 이는 리듬의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라 할 것이다.
리듬은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해변에 서서 보면, 무수한 파도가 밀려온다. 그 하나하나는 매우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하나는 또 다르다. 닮았으면서도 다른 것, 그것이 리듬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리듬은 수동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리듬은 일련의 음의 연속에 의한 결과로 생기는 것이지, 리듬이 옴의 연속을 낳는 것이 아니다. 곧, 판소리에 의해 장단이 형성되는 것이지, 장단에 의해 판소리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상과 같은 특질을 갖고 있는 리듬은 물리적 시간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시간을 인간화한다. 즉, 리듬은 인간화된 시간이다. 판소리의 장단이 리듬이라면, 판소리는 장단이라는 리듬으로 지각되는 예술이며, 판소리의 장단은 한국인이 한국적으로 인간화한 시간이라고 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장단은 리듬이며, 리듬은 등질적인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매 번 새로워 지는특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해석의 개재를 허용하는 주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구체적양상을 서술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장단은 또한 한국문화의 산물이며, 한국인의 지속적인 논의와 탐구의 결정체임에 틀림없다. 한국인 사이에서 장단이 논의되고 탐구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근거해서 말 할수 있는 고정적인 어떤 것이있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설정된 것이 규칙적 ·기계적인 박자에 해당하는 〈원박〉이라는 개념이다.
이 원박은 지각적 양상은 아니다. 곧 우리가 판소리를 감상하면서 직접 귀로 듣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원박은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박자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원박은 추상화된 리듬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원박이란 관념적으로 형태화된 판소리적 시간인 것이다.
한국인은 판소리의 장단을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패턴으로 관념화하여 인식하고 있다.
①진양조 : 24박(6박×4)
②중모리 : 12박
③중중모리 : 12박(중모리와 중중모리는 같은 12박이지만, 강약의 구성이 다르다)
④자진모리 : 4박
⑤휘모리 : 4박(자진모리와 휘모리도 같은 4박이지만, 강약의 구성이 다르다.@엇모리 : 5박(혹 10박이라 고도하는데, 박과 박 사이가 동간격이 아니다.)
⑥엇중모리 : 6박
이상 일곱 가지 장단의 박과 사설이 어떻게 만나느냐하는 것올 부침새라고 한다. 부침새는 크게 대머리(마디) 대장단과 엇부침으로 나누어진다. 대머리 대장단은 사설 곧 판소리음악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리듬이 박자의 구속력을 벗어나지 않는 부침새이며, 엇부침은 박자의 구속력을 일탈하는 부침새를 일컫는다. 엇부침에는 밀부침, 잉애걸이,완자걸이, 괴대죽이 있는데, 밀부침은 사설의 의미상의 분절과 박자의 분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키며, 잉애걸이는 서양음악의 싱코페이션(synchopation)을, 완자걸이는 헤미올라(hemiola) 현상을 가리킨다. 잉애걸이와 완자걸이는 모두 일시적인 리듬상의 변화인데,영애걸이는 강박이 올 곳에 휴지가 옴으로써, 완자걸이는 리듬 패턴의 변화에 의해 생긴다. 이 둘은 박자의박이 떨어질 때 사설이 동시에 붙지 않고, 박이 떨어진 뒤에 사설이 온다거나, 박과 박사이사이에 사설이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괴대죽은한 장단 이상 박자의 구속력으로부터 완전한 일탈을 가리킨다.이렇게 보면, 결국 부침새란 관념적 ·기계적인 것으로 존재하는 박자와의 관련 속에서, 매 회마다 새로워지는 리듬의 실체를 일부나마 파악하려는 장치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특히 부침새란 개념은 장단의 원박과 판소리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음의 시가(時價)를 중심으로 그 둘 사이의 관련 양상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판소리에서는 리듬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도 시가(음의 길이)를 중심으로 해서 개념이 형성되어 있고, 시가를 통해서 매 회마다 새로워지는 변화무쌍 한 리듬의 실체의 일부나마 포착하고있는 것이다. 판소리의 리듬을 장단(長短: 길고 짧음)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이러한 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판소리 장단의 〈맺음〉과 〈풂〉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최고〉 〈푼다〉라고도 하는데, 맺는다는 말은 〈맺아 떨어진다〉, 〈죈다〉, 〈졸라 뗀다〉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보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리에는 미는소리 ·다는소리 ·맺는 소리 ·푸는 소리가 있다. 즉, 소리 가락이 악절의 처음에는 미는소리로 들고 나가고, 다·읍에는 소리의 변화를 주며 잠깐풀기도하고, 다음에는 다시 더 위로 밀었다가 절정에 이르러 소리를 숙이며 맺는데, 이것을 맺어 떨어진다, 또는 졸라 덴다고 한다. 다음에는 소리를 풀어서 긴장을 낮춘다.
위의 언급을 보면, 판소리를 맺고 푼다는 단위로 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맺고 푸는 데가 한 장단에 나타날 수 도있고, 2개 혹은 그 이상의 장단이모여 한 단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맺음〉과 〈풂〉이라는 것은, 장단이라는 기계적 ·규칙적인 박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판소리의 리듬을 좀 더 실제적인 것에 가깝게 설명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동원 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 장단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장단이란 원체 복잡하고도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간략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함을 면키 어렵다. 역시 구체적 실천을 통해서 체득하는 방법이 최상의 것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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