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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8 | 연재 [문화저널]
시암바다 이야기
박남준 시인(2004-01-27 15:41:23)

옛날 옛날에 간날 간날에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를 보고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했습지요.
“악아! 이야기를 좋아하면 커서 가난하게 사느니라”
“아따 가난해도 종게 이야기 한나만 해주쏘 예 ! ”
오늘에 이르러 보니 참으로 할머니 말씀은 그야말로 딱들어 맞았지랩니까. 그것은 그렇다치고 자 어디슬슬 오늘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요. 이야기야 나오너라 뚝딱!
아 뭘해. 어여 나오라니까.
옛날 옛날이었습지요. 아 토갱이 담뱃불을 호랭이가 붙여주던 시절쯤이나 되었을라나요. 전라북도 정읍군에는 정해라는 샘물이 하도 유명해서 마을 이름도 “정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었더이다. 가까운 옛날 나쁜 일본 놈들이 우리 조선땅을 꿀꺽 먹어버리기전에는 정해라는 한자어 대신 마을 이름도 시암바다, 생바다였으리라는 것은 세살먹은 아해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습지요. 아무튼 시암바다로 불리는 그 샘에서는 항시사철, 주야장철. 시시때때 맑은 물이 철철 넘쳐서 가근방의 옥답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더이다. 그런데 참 신묘한일도 다있지 뮙니까요. 사람은 역시 방벽에 똥을 바르더라도 오래 살고도 볼 일이지요. 샘물이 얼마나를두고 한번씩 벌떡 뒤집어져서 온통 뿌옇게 꾸정꾸정 해지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때마다 샘물은 짜디 짠바닷물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더군다나 그때 그 샘에 가서 보면 귀한 조기며, 고등어, 갈치와 같은 바다고기들이 샘에서 솟아 나왔더라는데요 아마 이런 까닭으로 그 샘물의 이름이 시암바다, 정해라고 붙여졌던 것이지요. 옛날 말에 맘써가 고와야 복을 받는다고 바다가먼 이곳에 사는 착하고 순한, 그야말로 하늘 믿고 땅 믿고 살아가는 농부님들을 하늘님이 어여뼈여겨 귀하고 맛있는 해물을 보내주었던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서해바다 용왕님의 고마운 선물이기도합지요. 큰회오리 바람이 불고 벼가 쏟아지는 여름날에 마당에 나가보면 가끔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을 어렸을 때 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로 미루어 볼 때 이 이야기가 전혀 황당하고 무계하고 맹랑한 것만은 아닐 성싶지요. 그럴듯하다고요. 아무튼 옛날에는 이런 생이 육지 깊은 곳에 간혹 있었다는데요. 사람들은 이런 샘을 가리켜 바닷물이 들고나며 숨을 쉬는 용왕님 숨구멍이었을 거라고 여겼다는 겝니다. 이제 정읍이라는 곳도 정주시로 바뀌어지면서 정주시에 편입된 그 마을은 옛날 그 유명한 시암바다라는 곳이 어느 곳인지 찾을 수 없고 다만 정해라는 마을 이름만이 쓸쓸히 남아 오늘을 전하는 것뿐입지요. 더운 여름밤, “아이고 내 강아지들, 이야기도 다 안 듣고 잠들었네”우리의 할머니들은 그렇게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든 손주 녀석들의 엉덩이 짝을 토닥거리셨던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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