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족 대동굿의 의미와 세 가지 원형
민족 대동굿이란 우리 민족이 하나의 역사와 문화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오면서 창조해낸 민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장, 하나의 ‘판’에서 함께 개인의 경계를 트고, 사상과 감정, 궁극적으로는 행위 전체가 하나의 연속체적 원환을 형성하게 되는 제의(ritual)이자 축제(festival)이자 놀이 (play)인, 고유한 문화복합체, 민족연행문화(performance folklore)의 근원적 총체적인 실체를 말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유형 무형의 전승을 통해서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다시 미래로 이어지면서 우리 민족이 가장 구체적 실천적 행위 적인 차원에서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집단행위의 틀이다. 민족 대동굿의 이러한 실체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변이형태(variation)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보아 세 가지의 형태로 보인다.
첫째로는 주로 동부 산간지역인 무주, 진안, 장수, 남원 동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산신제와 당산제의 결합형이다. 이 형태는 산에서의 산신(山빼)에 대한 제사와 마을에서의 마을 수호신으로서의 당산신에 대한제사를 그 제의적 행사의 기본으로 하는 형식으로서, 산신에 대한 제의가 다른 지역에 비해 강화된 산촌산간형(山間型)이다. 이에 해당되는 구체적인 예로 우리는 앞서 살펴본 바 있는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 삼장마을의 마을굿을 들 수 있을 것 이다.또 한가지 형태는 서부 평야지역과 그 인접지역인 김제, 옥구, 정읍, 부안, 고창, 전주, 완주, 이리, 익산, 임실, 남원서부, 순창일부 둥지에서 두루 확인되는 당산제형의 대동굿이다. 이 형태는 주로 산이 비교적 적은 평야가 많은지역의 평야형(平野型)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형태의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앞으로 논의하게 될 김제군의 입석리 마을굿, 부안군의 우동리 마을굿, 정읍군의 정량리 마을굿 둥에서 두루 볼 수 있으며 이미 앞에서 알아본 바 있는 익산, 함열, 봉동, 전주, 완주 등지의 ‘기세배’ ‘기싸움’ ‘기접놀이’나고창의 ‘오거리 당산제’와 같은 것들도 그 제의적 측면에서는 이 당산제형에 속하는 것들이다. 끝으로 한 가지는 서해 도서지역인 위도, 고군산 열도등에서 두루 확인되는 도서형(島願型)으로서 산신제와 당산제와 해신제(海神聚)인 용왕제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형태는 산간지역의 산신제와 평야지역의 당산제와도 서지역의 해신제-용왕제롤 함께 하나로 아우른 복합형태로서 모든 민족 대동굿 형태 중에서는 가장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민족 대동굿의 지역적 변이 현상-이 구분은 물론 제의적 측면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은 전북지역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전지역으로 확대 해 보아도 그리 크게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전북지역이 산간지역-지리산록과 진안고원일대-와 평야지역-김제평야와 그 인접지역-과 도 ’서지역-고군산 열도와 그 인접지역-을 골고루 갖춘,산과 들과 물이 잘 조화된(자족성이 대단히 강한) 지역이라는 정을 고려할 때 그렇다. 물론 이러한 지역적인
요인 외에도 대단히 복잡한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이 이에 함께 작용하여 많은 변이형들을 만들어 낼 것은 물론이다. 어쨌든 제의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그 문화 복합적인 성격에서 볼 때 우리가 전북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민족 대동굿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은 도서지역의 마을 대동굿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부안군 위도면 대리의 이른바 ‘띠배굿’이다.
2. ‘띠배굿’의 분포와 위도 띠배굿
‘띠배굿’이라고 오늘날 알려져 있는 도서지역의 마을굿은 실제로는 이런 이름으로 그 전승현장에서 불려지는 곳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있다면 현재 부안군위도면 대리 정도인데, 이곳도 그굿의 종합적인 형태로 보나 마을사람들의 태도로 보아 이러한 명칭이 적합한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다 마을 굿을 행할 때에 위도의 ‘띠배’와 같은 것을 만들어 띄워보내는 ‘제액(除IE)’ 행사는 위도, 식도, 선유도, 비안도, 무녀도, 개야도, 어청도 같은 전북 도서지역에서 두루 확인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위도면 대리마을 이외의 섬 지역에서는 이러한 도서지역 마을굿의 비교적 온전한 전승형태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이 대리마을의 전송형태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3. 위도면 대리 띠배굿의 절차
위도면 대리 띠배굿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섣달 그믐 무렵이 되면 마을 회의를 열어 마을굿에 관한 논의를 하는데, 여기서 새해에 하게 될 마을굿의 제관과(유교식제관, 무당) 유사 둥올 결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고, 결정된 제관과 유사는 심신을 근신하며 육지(줄포 옛날에는 법성포)로 배를 타고 나가 제물감을 사온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유사집에서는 제관의 지휘아래 제물을 장만하는데 통돼지도 한마리 장고술과 떡과 밥 그리고 삼실과 등을 장만한다. 다음날 아첨이 되면 제관이 풍물패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풍물을 울리며 먼저 마을 동편 뒷산의 ‘원당’으로 올라가 제관이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무당이‘원당굿’이라는 굿을 하여 한 해의 마을 평안과 풍어를 기원해 주는데 이 때 어선을 가진 집의 선주는 무당이‘쌀점’이라는 점을 쳐주어서 한해의 풍어를 점쳐보기도 한다. 이 때에 마을 안에서는 일부의 주민들이 액을 띄워보낼 띠풀로 ‘띠배’와 제웅을 만든다. 제웅은 다섯 개다. 원당제가 끝나면 산을 내려와 풍물패와 함께 제관이 먼저 마을 동편 용왕바위로 가서 ‘용왕밥’을 바다에 던지고 다시 마을의 동편 입구에 있는 당산에 제물을 차려 간단한 제의를 행하고 마을 뒷산을 돌아 마을서편입구에 있는 당산에도 역시 같은 식의 간단한 제의를 행한 다음, 마을 서편 바닷가의 용왕바위로 가서 용왕밥을 던진다.
이 때 무당은 마을 앞부둣가로 내려와서 제물을 차려놓고 ‘용왕굿’을 한다. 마을 서편의 용왕바위에 까지 갔던 굿패가 돌아 올 무렵이면 마을 앞의 용왕굿도 거의 끝나가게 되는데,용왕굿이 끝나면 마을 앞의 부둣가에도 용왕밥을 던지는데 이 때에는 용왕밥을 던지는 사람이 ‘가래질소리’라는 일종의 어업노동요를 부른다.
용왕굿이 끝나면 앞서 마을 주민들이 만든 띠배의 동서남북과 중앙에다가 각각 한 개씩의 제웅을 세우고 제물들을 넣은 다음, 이 띠배를 배에 매어 달고, 배 위에 굿패와 주민들이 타고 ‘배치기 소리’ ‘슬비소리’ ‘가래질 소리’풍의 어업노동요를 흥겹게 부르며 앞바다로 나아가 띠배를 멀리 띄워보내고 다시 흥겹게 굿을 치고 노래하면서 마을로 돌아온다.
이때 마을 부둣가에서는 아닥네들이 풍물을 울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는 남정네들을 맞이한다.
이 정초의 제의적인 마을굿 축제 행사가 끝나면 이어서 각 집집을 돌면서 벌이는 풍물패의 마당밟이 굿이 계속되는데 이 때에는 정월 보름의 축제에 쓸 벗집이나 전곡과 마을공동행사 비용도 걸립한다. 이 굿은 길게는 정월 보름에까지 이어진다.
정월보름이 되면 다시 굿소리를 더욱 가다듬고 인간중심의 축제와 놀이가 벌어지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정월 보름날 아첨이 되면 마당밟이 굿을 쳐서 걷은 벗집으로 줄다리기 할 줄을 끈다. 이때 줄꼬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줄이 다 꼬아지면 점심을 먹고 굿소리를 내어 마을에 알리는데 특히 여자들은 색색이 고운 한복 치마 저고리차림으로 머리엔 수건을 얹고 소고들을 들고 나온다.
주민들이 부둣가 광장에 보이면 풍물패를 앞세우고 줄을 메고 마을 뒷산을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줄의 앞쪽은 결혼한 성인 남자들이 메고 줄의 뒷쪽은 결혼한 여자들과 결혼하지 않은 마을의 총각들이 멘다.
줄을 메고 먼저 마을의 동편 입구에 있는 당산에 가서 간단한 제물을 차리고 간단히 제의를 행한 다음, 마을뒷산에서 줄놀이를 하는데, 그 방법은 줄을 어개에 멘 채로 원을 그리면서 벙벙 돌면서 ‘에용소리’라는 줄놀이 노래를 부른다. 이때 한 사람이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에-용 에혜용’이라는 후렴을 받으면서 흥겹게 우쭐거리면서 노래하는 것이다.
이 놀이가 끝나면 다시 풍물패를 앞세우고 마을 뒷산을 휘돌아서 쪽으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줄의 뒤쪽올 멘 총각들이 줄꼬리를 뒤gms들거나 휘감거나 하여 앞쪽의 성인 남자들에 대해 도전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마을 서쪽의 광장(현재는 국민학교 마당)에 도착하면풍물패의 굿소리에 맞추어 또 한 차례의 줄놀이를 하는데, 이 때 풍물패의 쇠, 장구, 정 둥은 줄을 멘 사람들 밖에서 들면서 굿을 치고 줄을 멘 사람들은 달팽이모양으로 감아 돌았다 다시 폈다 하는 동작을 계속하는데 색색이 곱게 한복으로 차려 업은 여인네들이 또아리를 튼 줄의 한가운데에서 소고를 들고 손을 일제히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양을 상 윗쪽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우리의 민족공동체가 한 송이의 꽃으로 뭉쳐 아름답고 찬란하게 피었다 졌다 하는 듯한 감동에 젖어들게 된다.
이 놀음이 끝나면 다시 마을 서편의 입구에 있는 당산에 간단한 제의를 행하고 다시 마을 앞 부둣가의 광장으로 굿을 치며 줄을 메고 돌아온다.
이 때가되면 해가지고 보름달이 먼 바다위로 휘영청 떠오르게 되고 바닷물은 썰물이 져 있게 되므로 부둣가갯벌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풍물은 자지러진다. 줄다리기는 세 번 해서 여성과 총각들이 함께 하는 편이 이기게 되는데 그래야 풍어가 되고 마을이 화평하다 는것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동편 마당에 감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남녀가 함께 어울려 흥겹게 노는 데 이 때에는 집집에서 아낙네들이 재미있는 탈을 만들어 쓰고 나와 ‘탈놀이’도 하고 아픈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송장놀이’도 한다.
4. 띠배굿의 민족적 의의
이상에서 살펴본 위도 대리마을의 띠배굿에서 우리는 성글게 나마 우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이 마을 대동굿은 전북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복합적이고 그 틀이 가장 큰 마을굿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총체적인 민족굿의 원형을 연구하고 이를 재발견하여 민족 대동굿의 현대적 형식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사를 줄 것이다.
둘째, 이 굿속에 나타나 있는 행위 속에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원형적이고 기층적인 행위의 유전인자들은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연행행위의 전법을 탐색하고 구축하려는 노력들에도 많은 싱싱한 광맥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