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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 | 칼럼·시평 [문화시평]
진정한 과학적 인식의 결여
-들, 바람, 사람들 전-
박남준 본지 편집위원(2004-01-27 16:20:38)

많은 미술 동인 집단이 이곳 전북지역에 있다. 그들의 작업은 우선 사회적 명가나 가치 기준을 떠나서 개인적 성향과 집단적 그 추구하는바가 다양하다. 작품 활동 또한 활발하여 서울 둥 대도시를 제외한 여타의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전시공간을 가지고 있는 이 지역의 공간이 연중 비좁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물론 미술이라는 표현 양식에 있어서 가치 설정을 민중 미술계열에 국한시키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개인적인 문제, 휴머니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자기성찰과 정신세계, 자연에의 관조등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로 각 기의 관심사를 작품 대상으로 다룬다고 볼 때 「들 바람 사람들」이 처음 그 모임의 성격에서부터 여타의 동인들과는 달리 그들의 관심사를 민족문제, 지역문제 등 대사회 역사적인 문제의 올바른 재인식과 그로부터의 건강한 지역미술운동의 출발을 가치설정의 기준으로 두어온 것은 이 지역 문화예술계, 미술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이었다. 그간 두 차례의 정기전을 가진 바 있는 「들 ·바람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관심사에 대한 작업의 일환으로8월29일부터 9월4일까지 전주 온다라 미술관에서 3차 정기전을 겸한 농민 주제전을 열었다. 이번의 주제전을 위하여 「들 바람 사람들」운 그간 토의과정을 거쳐 현재 남한 사회의 성격을 신식민지국가독점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그 모순구조의 재생산의 토대가 되었던 농촌문제를 주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를 전제로 하여 이 지역-즉 갑오 농민전쟁과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어진 빼앗김과 빼앗음의 땅의 수난사라는 문제와 연관시켜 농촌 사회일반을 다루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이 되기 위하여 순창군 팔덕면 덕진마을이라는 한 지역을 설정, 그 마을에서 1900년 이후 오늘날까지 정치, 사회적 변동이 이 농촌 마을에 어떻게 관계하고 실제 그들의 삶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 하는 문제를 다루려 하였다는 의도는 작품의 평가를 떠나서 높이 살만한 일이었다.
또한 주제의 통일과 전체적인 흐름의 일관된 균형을 위해 수차례의 토론과 논의 과정을 통하여 주제전의 단락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 일종의 공동창작의 형식을 취한 방식은 동인활동의 새로운 방향모색으로서의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를 갖는 것 이었다. 처음에 의도한 내용과 각기의 맡은 부분은(해방 전후의 농촌사회 현실-이기홍)(6·25-임옥상), (농지개혁 및 토지 정책-방정엽), (농촌의 이농 현상과도시빈민-김선태) (농촌의 제반 문화,교육환경과 수입 농산물 문제-남태운), (80년대 농민 운동-서재붕), (새마올 운동-박종수),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80년대 10년사-김희경), (앞으로 농촌 사회의 전망-김인철) 이었지 만은 방정엽씨와박종수씨가개인척인사정으로인해 차질을 빚게 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일년여가 넘는 준비과정 속에서 작품의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농촌이 아니라 열악한 농촌 현실과 대두되고 있는 농촌문제의 여러 실상에 많은 이해의 근접이 이루어 졌다는 것은 이들이 이번 전시회 차달로 그에 실은 주제전에 관한 좌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삶은 논리로써 풀어내기란 어려운 무엇이 있다. 그것은 피와땀과 살이 섞이고 배인 땅, 그 땅을 통하여 죽음과 그로부터의 삶올 일궈내는 농촌과 농민들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하면 농촌과 농민들의-특히 이 땅에서의 삶과 그에 따른 문제들을 단순히 사회과학적인 인식과 그를 통한 시각의 접근 만으로는 문제에 대한 근원에 접근하기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전부 13점의 작품이 전시된 「들 바람 사람들」의 농민주제전은 각 기의 작품적인 완결구조와 시대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엿보였지만 문제의 흐름을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려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은 전시를 보고 난 이후에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농촌의 내용을 담기 위하여 한마을을 설정하였다는「들 바람 사람들」의 이번 전시 된 작품 전반에 걸쳐 한 농촌 마을의 특수성은 물론 일반적 내용마저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정도였다. 보여주고자 하는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전시된 작품은 무엇보다도 우선보는 이로 하여금 그 내용의 본질에 다가서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일종의 구호라면 선동과 그로부터 나오는 확산의 역동적인 힘이 바로 구호의 생명인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들이 현재의 농촌과 농민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농촌, 농민문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치 방정식을 풀기 위하여 공식을 대입시키는 것처럼 사회과학적 이론의 기계적인 대입에서 기인한다. 진정한 과학적인식의 행위는 사회, 역사적, 정치, 경제적인 문제가 지역적 특수성에 따른 다각적인 접근에 이르러졌을 때 가능하다. 바로 진정한 과학적 인식의 결여를 지적하고 싶다.
작품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크게 무리는 없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음-이기홍, 역사적 사건의 상징적 표현 돋보임-임욱상, 건강한 측면이 무시된 채 지금의 농촌과는 너무 동떨어진 도시적인 향락, 소비적인 단면만을 강조-남택운, 가장 시급한 농촌의 현실과 그에 따른 남한 사회의 모순구조를 다루었음에도 그저 담담하기만 함-김선태,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첨예한 운동사를 다루었음에도 그 역동적인 힘의 부재-김회경, 서재붕. 땅의 힘찬 생명력과 끈질기고 건강한 삶의 전망이 아닌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한 황혼의 풍경-김인철, 이상과 같다. 물론 이들의 작품이 가진 건강한 측면올 무시하는 것온 아니다.
또한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이번과 같은 주제전을 계속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가 아직 이른 감이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가들의 작품 여하를 떠나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끝으로 「들 바람 사람들」의 건강한 작품의욕과 이번의 전시회를 위하여 흘린 땅들에 이 지면을 통하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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