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팔월 보름의 민속과 민속놀이
조선조에 민간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도애 도(陶애)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를 보면, 팔월 보름은 민간(民間)의 '최중지명절(最重之名節)'로서, 추석(秋夕) 가절(佳節) 중추(中秋) 가절(佳節)이라 불려진다고 하고, 새로 거둔 곡식으로 술을 빚고 닭을 잡고 과일을 쟁반에 가득 담아 사방의 이웃들이 취하게 마시고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논다고 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신라 유리왕때의 그 '길삼놀이' 에 관한 기록이 보이며, 제주도에서는 남녀가 함께 무리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고 줄다리기를 하는 '조리지회(照里之戱)'와 '그네뛰기' '닭잡기놀이(?鷄之戱)' 그리고 사대부 이상의 집안에서 행한 제사 풍속에 관해서 간략히 기록해 놓고 있다.
이두현은 『한국민속학개설』(1974)에서 추석의 놀이를 얘기하는 가운데 '상원(上元) 놀이-설놀이-가 예축의례(豫 儀禮)와 관련되고, 단오놀이가 성장의례(成長儀禮)와 관련된다면 추석놀이는 수확의례(收穫儀禮)와 관련된 행사들'이라고 말하고, 설과 추석에 반복되는 놀이로 '거북놀이(경기·충청)', '소멕이놀이(황해·강원·경기·충청)', '줄다리기(제주)', '씨름대회(각지방)', '사자놀이(중부이북)', '지신밟기(영·호남)', 그리고 여인들이 하는 '강강술래'와 영남지방 남정네들이 하는 '쾌지나칭칭나네'를 들고 있다.
김광언은 『한국의 민속놀이』(1982)에서 현재 전승되고 잇는 한가위에만 하는 민속놀이로 '가마타기(가마둥둥)', '가마싸움(가마놀이)', '강강술래', '소멕이놀이(소놀이)', '소싸움' 등 5가지를 들고 있다.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민속놀이 중에서 호남지방, 전북지역에 해당되는 것은 남자들의 '지신밟기(풍물굿, 농악)'와 여자들의 '강강술래'이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북편』(1971)에 의하면 군산의 '뱃고사', 진안·전주의 '씨름', 익산 여자들의 '물맞이' 와 '닭잽이', 및 '풍금질', 전주 여자들의 '널뛰기' 등이 보고되고 있기는 하다.
2. 한가위 여성 대동굿으로서의 '강강술래' - 질마재의 경우
전북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한가위 남성대동굿이 풍물굿과 그에 딸린 씨름과 같은 놀이라면, 여성들의 한가위 대동굿 중에 가장 대표적인 대동굿은 역시 '강강술래'의 형태로 잘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강강술래'는 일반적으로 호남 해안, 도서지방에서 전승되고 있고, 특히 전남지역에 두루 성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전북지역에서도 두루 확인되고, 특히 고창, 부안지역의 해안지방에서 그 전승상태가 좋은 '강강술래' 놀이를 접해 볼 수 있다.
필자는 1983년 2월에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에서 비교적 레파토리가 다양하고 아름다운 '강강술래' 형태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마을의 김봉님(72세), 김봉례(67세) 할머니를 중심으로 동네 마실방에 모인 할머니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와 내용의 '강강술래'를 젊어서 했다고 하면서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고운 치마 저고리를 해 입은 팔월 한가윗날 밤이 되면 마을의 처녀애들이 마을의 마당 넓은 집마당에 모여 '강강술래'를 하게 되는 데 그 순서는 '강강술래'→'문열기'→'담넘기'→'지와(기와)밟기'→'덕석몰이'→'징금마 태우기' 등으로 이어져 나가는데, 그 순서는 경우에 따라 흥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①강강술래
마당에 모이면 먼저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크게 원을 그리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데 이 놀이를 그 노래 후렴을 따라 '강강술래'라고 하고, 이 놀이가 전체적으로 가장 지배적인 동작과 리듬을 형성하기 때문에 놀이의 명칭도 '강강술래' 라고 한다. 이 때 불려지는 노래는 다음과 같은 것인데, 한 사람이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함께 '가앙 가앙 술래에' 라는 후렴으로 그 소리를 받는다.
* 강강술래
메 : 달 떠 오네 달 떠오네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갑오 방에 달 떠 오네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갑오 님은 어디를 가시고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달 떠 온 줄 모리싱기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뉘네 집이 뉘네나무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성네 집이 성노나무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담 밖으다 박을 숨어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담 안으로 뻗어 들어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울어머니 어디 가고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저 박순 질 줄 모르능가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담성담성 꽃이 맺아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울어마니 어디 가고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박잎마다 솟는 물은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
메 : 우리 형제 눈물일세
받 : 가앙 가앙 수울래에(김봉례, 여·77, 여·60)
②남문열기
'강강술래'놀이로 느릿느릿, 때로는 매우 빠르게 휘돌며 노래 하고 놀다가 숨이 차서 호흡과 대열을 정리하고 싶어 질때에는 '문열기놀이'를 하게 되는데, 그 방법은 '강강술래놀이'에서 이루어진 원을 그대로 둘러 놓고 옆사람끼리 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그 사이로 차례차례 들어가면서 '문열기노래'를 부른다. 들어갔다 나오면 다시 같은 원이 형성된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 문열기
메 : 저 문이 뭔 문잉가
받 : 서울 남대문일세
메 : 남문이 열고 바래나 치자
받 : 남문이 열고 바래나 치자(모두)
메 : 계명 산천이 바래나 치자
받 : 계명 산천이 바래나 치자(모두)(김봉례, 여·77, 여·60)
③담넘기
'문열기 놀이'가 끝나면 '담넘기놀이'를 하는데, 문열기놀이에서도 유지되어 온 둥근 원을 그대로 둘러 놓고 앉아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일어나 옆사람이 이어 잡고 있는 손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넘어가면 그 다음 사람이 또 그렇게 하여 마지막 사람까지 다 일어서게 되면 다시 반복하거나 다른 놀이로 넘어간다.
이 놀이를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 담넘기
메 : 왕게 청청 담이나 넘자
받 : 왕게 청청 담이나 넘자
메 : 이새 콩콩 담이나 넘자
받 : 이새 콩콩 담이나 넘자. (김봉례, 여·77, 여·60)
④기와밟기
'담넘기놀이'가 끝나면 다시 '강강술래'놀이를 하거나 '기와밟기놀이'로 넘어가는데, '기와밟기놀이'는 원을 그려 모두 시계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앉은 다음, 한 사람씩 일어나 앞 사람의 등을 차례차례 밟아 나가는 놀이이다. 이 때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 기와밟기
메 : 어딧골 지양가
받 : 지얏골 지아네
메 : 멧 장이나 볼봤능가
받 : 서른 댓 장 볼봤네
메 : 어딧골 지양가
받 : 지얏골 지야네
메 : 멧 장이나 볼봤능가
받 : 마흔 댓 장 볼봤네 (김봉례, 여·77, 여·60)
⑤덕석몰이
'기와밟기'가 끝나면 역시 '강강술래'로 한참 흥겹게 돌다가 더욱 흥이 고조되면 '덕석몰이'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대표적인 남성놀이인 풍물굿에서의 '방울진'이나 '고동진'의 진풀과 같이, 뱀의 또아리 마냥, 역시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한 사람이 원을 트고 멍석을 말 듯이 원의 중심을 향해 돌아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들도 그 뒤를 이어 따라 들어가고, 다시 원의 중심에 이은 사람이 다시 시계방향을 취하여 그 감긴 '멍석'을 풀어나오면 뒤이어 다른 사람들로 풀어나와 전과 같은 원을 형성하게 되는 놀이인데, 이 때는 다음가 같은 노래를 한다.
* 덕석몰이
메 : 몰세 몰세 덕석 몰이
받 : 몰세 몰세 덕석 몰이
메 : 풀세 풀세 덕석 풀이
받 : 풀세 풀세 덕석 풀이 (김봉례, 여·77, 여·60)
⑥징금마태우기
'덕석몰이'가 끝나면 -혹은 그 이전에도 가능-'징금마태우기'를 하는데, 이 놀이는 마치 오늘날의 기마전의 자세와 같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등에 업고 두 사람이 업힌 사람의 양 다리르 옆에서 붙잡은 자세로 한 팀씩을 이루어, 역시 원을 그리며 돈다. 이 때 부르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 징금마야
메 : 징금마야 손 놓지를 마라 애뱅뱅 머리야
받 : 징금마야 손 놓지를 마라 애뱅뱅 머리야 (김봉례, 여·77, 여·60)
3. 강강술래의 현대적 의의
이상에서 살펴 본 강강술래 놀이는 영남지방에서는 '월워리청청'과 대응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히 넘겨버릴 것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지역에서 창조해낸 여성 대동굿의 한 중요한 원형으로서, 휘영청 차오른 한가위의 보름달 아래 거울처럼 다져진 흙마당에서 하늘과 땅 사이의 우주적 조화를 이룩한 풍요굿의 훌륭한 전범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가끔 대동놀이에 응용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민족학적 인식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