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겨울 초연 되었던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은 그의 몇 편 되지 않은 희곡중 하나로 그 무렵 까뮈의 세계관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저작과 정치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던 그는 그 해 여름 남미여행을 다녀온 후 건강이 악화되었고 내적으로는 자신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휴식기에 들어갔던 시기였다. 이 기간동안 그는 유일하게 「반항적 인간」만을 집필했는데 「정의의 사람들」은 그의 대표작「페스트」와 「반항적 인간」을 가르는 전환기에 속한다. 이 작품은 1905년대를 배경으로한 러시아의 테러리스트들의 죽음과 혁명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극중 가장 주요한 인물이여 정의감과 혁명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으나 내면에는 시인의 따뜻한 감성이 살아 숨쉬는 「칼리아예프」와 정확한 사리판단과 책임감과 포용력으로 엄격하면서 온화한 지도자상을 보여주는 조직의 책임자「아녠코프」, 그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의 충격으로 거의 광신적인 혁명의지를 보이며 혁명이 구사하는 폭력을 사랑하는 강철같은 이성의 소유자「스테판」, 동지들에게 늘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사랑하는 「칼레아예프」에게는 더욱 각별히 티 없는 영혼으로 다가가는 여자 「도라」가 이 작품의 주요성격을 구성하고 있다.
극의 시작은 혁명사회당 소속 테러단체에 「스테판」이 지원을 명령받아 등장하면서 인데 혁명을 꿈꾸면서도 그 방법과 성격이 다른 「스테판」과 「칼리아예프」의 갈등이 전반부를 지배한다. 이 테러단체는 황제의 삼촌이며 착취의 대표적인 대공을 폭탄으로 살해하려하지만 1차 거사는 어린이가 탄 마차에 폭탄을 던질 수 없었던 「칼리아예프」의 포기로 실패하고 만다. 「칼리아예프」는 "행복은 가져다 주는 삶, 사로 그 삶을 위한 혁명이어야 한다."고 말하듯 그 나름의 인간적인 혁명관을 갖고 있으며 "나는 전제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살인하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동지의 말속에서 나는, 내가 정의를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살인자로 만드는 도 다른 전제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근본적으로 휴머니스트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결국 2차의 테러에서 「칼리아예프」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체포되며 얼마간의 수형생활 끝에 사형에 처해진다.
대략의 줄거리가 보여주듯 이 작품은 대공을 암살하는 사건위주의 극적 전개보다는 혁명과 나아가서는 전제주의를 붕괴하고 평등과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혁명주의자들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이것은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노선의 차이를 느낀 까뮈의 기본 사상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전북에서 지속적이며 활발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는 극단 「황토」에서 제 53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정의의 사람들」이다.
지난 9월 14일 부터 한달 여에 거쳐 상연되는 이 공연은 작품선정부터 연출, 그리고 신진 연기자들의 과감한 기용으로 「황토」의 면모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엄미리」를 비롯한 비교적 중견 연기자들이 조연을 많이 연기를 한 반면「도라」역을 해낸 「박윤정」과 같은 예가 바로 그런 것이다.
비교적 짜임새 있고 단단한 화술을 보여주는 이번 공연은 연기자들의 정확한 호흡으로 한층 돋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몇 가지 미진한 부분은 공연을 지켜보는 동안에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첫째는 40년대 까뮈의 이 같은 작품이 90년대 한국적 상황에 어떻게 호흡하느냐의 문제였다. 이는 작품선정의 배경과 작품의 주제를 추출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의 토론이 과연 충실했던가, 그리고 공연서 이러한 의식이 완벽히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도 통한다.
도 한가지는 극적인 완성도의 문체였다. 왜냐하면 등장인물들의 강하고 긴장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감을 면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주제도 주제이지만, 관객의 보는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황토」의 「정의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일관된 톤과 스피드로 달려갔던 결함이 보인다. 보다 기복 있고 유연한 연출이 아쉬웠던 공연이었다.
더구나 주인공격인 「칼리아예프」역은 후반부에 지쳤던 탓인지 그의 휴머니티가 오히려 그가 나약한 겁쟁이로 오해되게끔 표출되기도 했다. 또한 「도라」는 시종 구부정정한 몸짓과 쥐어짜는 듯한 연기로 보는 이로 하여금 담담하고 허리 아프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조연들의 개성적이고 빈틈없는 연기에 주연급들이 상대적으로 눌리는, 그래서 주제를 산만하게 분산시켜버리는 약점을 노정한 결과를 보였다.
더불어 공연시간상 삭제된 뒷부분(카리아예프가 투옥된 후 경시총감의 유혹을 받는 장면)이 「칼리아예프」의 기본적 사상의 완성을 보여준다면 이 누락으로 인해 작품의 지향점을 빠뜨렸다고 보여진다.
아무튼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이 극단 「황토」를 통해 소개되면서 이 작품을 통해 까뮈가 의도하던 바, 역사의 흐름 속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그림자, 그들의 정당한 반항, 우성,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과 그 과정의 고뇌가 어느 정도 전달되었으며 그로 인해 희곡작가로서의 까뮈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세계관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동일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