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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0 | 연재 [문화저널]
오메!물말아버렸어야
박남준·시인(2004-01-27 16:36:17)

가을이다. 이곳, 저곳 바쁜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을 중 쏘아다니 듯 한다"고 말한다. 많은 것이 달라진 오늘과 달리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이 말은 깊은 산사에서 보낼 오랜 겨울 동안의 월동 양식을 구하려 이 집 저 집 시주를 다니는 스님들의 바쁜 모습을 비유해 생겨난 말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가진 자는 더욱 많은 수확을 위하여 그들의 배부르고도 남을 수확으로 즐거울 것이요, 가난한 자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야 할 일들로, 연명해야할 양식걱정으로 크고 작은 많은 걱정을 수확해야 하는 가을이다.
한때 유행하던 우스개 소리 중에 식인종 시리즈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 에 이런 것이 있다. 식인종이 어느 날 목욕탕에 갔다. 이때 탕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고하는 말"아니 누나 내 밥에다가 물 말아 놨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던 친구들의 집에 가서 이따금 배부른 곤란함을 겪던 기억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끼니때가 되어 내 앞에 나온 밥그릇을 보면 밥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다 한 그릇을 더 엎어 담아 놓은 것처럼 수북하였다. 그 어머니의 밥그릇은 아예 밥상 위에 올려놓지도 않았는데 솥밑바닥을 득득 긁어 낸 밥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내가 머뭇 거리며 밥이 너무 많다고 하면 커서 장사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그만한 밥을 다 못 먹느냐고 오히려 나무라시고는 당신 자신은 아까 감자 삶은 것을 조금 먹었더니 속이 좀 거북해서 그러다는 말씀을 하신다. "찬이 없어도 많이 먹어야 쓴다-" 반쯤 남은 밥그릇에 아예 물까지 부어 버리는 것이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아들의 친구에게 대접하는 한끼의 밥한 그릇은 그야말로 후한 대접이었던 때이다. 그때의 물을 말은 밥은 참으로 다 먹어내기에 곤란했었지만….
옛날이었다. 그러나 그리 옛날은 아니었다. 시집간 딸네 집에 찾아간 친정어머니를 보고 "엄니 엄니 친정 엄니, 엄니 본게 반갑소만 엄니 입본게 무섭소"
이 말은 친정 어머니를 보니 반갑기야 그지없지만 먹을 것이 없는 살림에 대접해야 할 양식이 없어 걱정이라는 말뜻이다. 아무튼 그 정도로 가난한 집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요즈음은 별미라고 해서 꽁보리밥을 먹는 사람들도 있고 건강과 영양섭취를 위하여 쌀밥에 조금씩 보리를 섞어 먹기도 하지만 그 집은 매끼 꽁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하는 집안 살림이었다. 그러나 귀한 손님에게 꽁보리밥의 식사를 대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상님의 제사라 젯밥으로나 올리던 쌀독을 열고 박박 긁어보니 한 그릇의 밥을 지을 양은 되었다. 쌀밥 한 그릇을 겨우 지어 내가려 하자 흥부네처럼 줄줄이 낳은 자식새끼들이 "오메 쌀밥, 오매 저희컨 쌀밥, 엄니 우리도 쌀밥 좀 먹어 봤으면 원이 읍것네"하는 것이다.
"아니 저 싸가지 없는 것들이 손님 듣것다"하며 나무랬지만 자식들이 하도 보채길래 손님이 밥을 남기면 그때가서 먹으라고 달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방밖에서 문구멍을 내고 엿본다. 이윽고 손님은 밥을 반그릇쯤 먹더니 숟가락을 내려 놓는 것이 아닌가. 옳다 됐다. 아이들은 쌀밥을 먹어볼 기쁨에 저마다 환호성을 올렸는데 물그릇을 집어 들더니 쪼쪼르르 그만 물을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고 오메 물말아버렸어야"아이들은 그만 징징거리며 문밖에서 울어대고 어머니 그만 안절부절, 눈치 콧치 없는 손님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밥그릇을 다 비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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