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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1 | 특집 [특집]
지역문화운동의 기수로
노 동 길·금강서점 대표(2004-01-27 16:52:14)

인류가 사는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그들의 문화가 있다. 종족, 민족 나름의 자연환경, 생활양식, 사회구조, 종교등의 토대속에서 독특한 생활형을 갖게 되어 전통적 고유문화를 형성하게 되며 이는 큰 범주에서 민족문화라 일컬을 수 있지만 이 문화도 계층 혹은 계급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전개된다. 양반계층이 만든 양반문화, 평민이나 천민이 만든 평민문화·천민문화가 같을 수 없다.
문화는 '우리'라는 개념이 뒤따르고 그 '우리'에는 개인이라는 구체적인 실체가 존재한다.
캐시러의 용어를 빌자면 개인이 '우리'라는 큰 공동의 주체로 전환되는 계기는 신화이며, 그 '우리'가 모든 개인과 공감대를 이룰 때 상징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현재 우리의 전통문화가 신화적인 기능을 되찾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대로 현재의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상징의 기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전통문화가 적어도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창조가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이 살아있는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불가불 '우리'들의 손에 의해 재창조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전통문화의 신화적 기능이 되살아나고 다시 그 신화적 기능에서 상징의 문화가 창조되어야만이 진정한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문화의 본질적인 기능이 마비되면 그 문화적인 실체를 실감하는 개개인이 방향감각을 잃어 버리게 되고 나아가서는 외래문화에 침식되어 정신적, 물질적으로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데서 오는 과식과 배탈의 현상이다. 소화기능이 좋지 않으면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음식을 먹으면 과식이 되고 배탈이 나게 되지만 더욱 염려스러운 것이 그 배탈로 인해 도리어 소화기능이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여러문화의 상징속에서 살고 있다.
1919년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민족운동이 전개되었지만 궁극적 목적인 독립은 이룩되지 않았고 일본의 교묘한 문화정책에 휘말렸으며 좌절한 문화관계 종사자들 특히 문인들에게서 퇴폐, 감상 허무주의니 하는 것이 등장하였다.
퇴폐, 향락, 소비성을 특징으로 한 일제의 식민지 침략문화는 정치적 지배를 용이하게 하면서 경제적 침략의 보조수단이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순치시켜 허위의식으로 길들임으로써 자기네들 문화패턴에 접근시키겠다는 우민정책이다. 이러한 식민지 잔재문화가 해방된지 반세기가 다 되도록 계속해서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다. 또한 해방후 미국의 물질, 문명과 더불어 그들의 문화가 밀물처럼 들어왔으며 서방세계가 뿌려놓은 갖가지 문화가 우리사회에 뒤엉켜 있다. 이렇게 외래문화가 모두 정상의 문화적인 기능에 의해 수용된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할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수용되었고 그것들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끌어내려 우리의 전통문화가 혼탁한 문화환경 속에서 정체성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외래문화니까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마치 단식하고도 살 수 있다는 논리와 마찬가지이며, 반대로 외래문화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도 과식이 인체에 좋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수용하는 주체자가 자신의 체질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러자면 문화가 갖는 체질을 잘 알아야 하고 동시에 자신과 외래문화의 체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의식이라 생각한다.
문화는 정체되거나 유물로 형상화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근본이며 우리의 주체는 서민이요, 평민이며, 민중이다. 민중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보수성을 띤 우파들 즉 기득권자들의 논리가 팽배하고 대중문화를 두둔하고 민중문화를 불손 운운하며 왜곡 부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민주화와 통일이기에 민중문화는 운동으로 재창조 되어야 한다.
민중이 하나되어 함께사는 공동체사회, 복지사회, 나아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중심의 문화가 이땅 전체의 문화인 양 지역에 전달되어 오던 것이 80년 5·18광주민중항쟁을 기점으로 새롭게 지역문화의 태동을 맞이하였고 나아가 지역문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 민중문화운동 역시 80년대에 들어 의식있는 젊은이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확고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고 그중 문화저널이 갖는 의의는 대단히 크다.
창간 3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제는 90년대를 지향하기 위한 저널로서 거듭나고 재창조되어져야 하겠다.
지역문화운동의 근원은 지역 특수적인 상황을 고려한 향토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고장은 이 땅의 어느곳보다도 훌륭하고 풍부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에 이 산 역사를 우리의 손과 발로 발굴 복원시켜내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80년대 전 정권이 들어서면서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많은 월·계간지들이 휴간내지 폐간 되었다. 그로 인하여 글 쓰는 이들이 지면을 잃어 발표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가 어려워져 일시적인 문맹기를 겪어야 했는데, 우리 지역에서도 예이는 아니었으며 그 여파로 글을 쓰는 필진의 기근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문화저널은 새로운 필진의 발굴을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지역문화지의 특성은 물론 향토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그 범주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매끄럽고 미화된 글보다는 현장 그대로의 순수하고 투박한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더욱 알차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지역문화의 연대 및 공유성의 문제이다. 각 부문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총체적으로 묶어내기 위해서는 향토사랑을 바탕으로 서로간의 신뢰를 형성해 나가면서 자료를 공유하고 공동취재 및 창작작업등을 고려해야 되겠다.
다시금 문화저널 3주년을 맞이하여 냉정한 재평가 작업과 더불어 과감한 정지작업이 이루어져 민중을 대변하고 명실항부한 지역의 대변지로서 총체적으로 자리매김하여 투박한 전라도땅을 풍요롭게 가꾸어 새로운 문화운동의 장을 여는 90년대의 종합지로 승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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