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문화저널」이 창간 3주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없게도 이 속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굳이 풀이하자면 그만큼 어렸을 적 습관이 중요하다는 뜻이겠고 사람됨의 꼴이 세 살이면 거의 만들어진다는 얘기라 해도 억지는 아닐 듯 싶다.
이런 의미에서 탄생한지 세 돌을 맞이한 「문화저널」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새로워진다. 오늘의 모습속에 앞으로의 「문화저널」이 펼쳐나갈 위상이 온전히 담겨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문화저널」은 어떤 모습인가?
창간 당시부터 빠짐없이 받아읽은 이외에는 무엇이 어떻다고 소리내어 말할 식견도 못되고, 막연하던 아쉬움들은 낱낱이 시원스레 꼬집혀 논의되어온 것을 알고 있기에, 그동안 개인적으로 감탄해온 「문화저널」의 성실성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어느날 옆 자리 국사 선생님이 특집 기사들을 밑줄 그어가며 수업 자료로 연구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나, 그릇집 주인 아저씨가 손님 온줄도 모르고 기획시리즈의 진도 아리랑을 흥얼흥얼 외고 있었을 때, 또 사촌 아우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얘기를 자랑삼아 했을 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 속에 묵묵히 살아있는 「문화저널」의 숨결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내게 있어 「문화저널」은 그 실체보다 오히려 그것을 챙겨읽고 아끼는 내 이웃들을 통해 더 가깝게 다가왔고 우리의 것이면서도 우리로부터 소외된 소중한 것들을 제대로 간수해보려는 진지한 노력이 책속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도록 해주었다.
역설적인 것 같지만 나는 이 잡지가 늦되는 아이처럼 더디게 커가는 것이 좋다. 힘든 길을 요령 부리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위태로운 자기 모순이 없지 않지만, 갈등없는 인생이란 죽은 자의 것이듯, 문제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가보려는, 처음 약속 그대로의 「문화저널」의 모습에서 팔십이 되어도 결코 늙지 않을 진솔한 성실성을 읽을 수 있기에, 그 씨앗과도 같은 가능성에 깊은 설레임을 맛본다. < 이 기 종·남원수지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