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 빠졌다네. 아아 나는 사랑에 흠뻑 빠졌다네. 세상의 그 무엇이 내 사랑만 하랴. 그 사랑의 힘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어서 나의 온 몸과 영혼을 감싸고 시공(時空)을 넘나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경이로워라. 그 무엇 하나가 새롭지 않은 것이 없어라. 무심코 지나치던 길가의 돌멩이 하나에서 이름모를 풀꽃에 이르기까지 정겹지 않은 것이 없어라.
내가 가만히 다가가 안녕!하고 말을 건네면 그래 그래 안녕 안녕 나도 안녕! 돌멩이가 인사한다. 풀꽃이 웃는다. 방긋 웃는다. 새들 새들도 나의 사랑을 노래하였습니다. 나비들은 너울 너울 아름다운 사랑의 춤을 추었습니다. 나무들은 그 무성한 잎을 그늘로 드리우고 나의 쉴 곳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달콤하고도 향기로운 사랑의 열매들을 맺어 내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아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어라. 사랑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사랑은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찾는 세상의 모든 이에게 새롭고도 밝게 눈뜨이는 빛으로 가슴마다의 따뜻한 불씨로 다가서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시기와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아름다움은 그 빛을 잃어 한껏 추한 몰골로 변해갔습니다. 나의 이런 소유욕과 독점욕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가을 사랑은 내게서 떠나갔습니다. 세상의 슬픔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밤비내리는 영동교나 전주다리를 홀로 걷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발람이 불면 그렇게 할 일이다. 그 술이라던가 사람이던가에 취하여 쓰러질 일이다. 다시 눈을 뜨고 술마실 일이다. 봄이 온들 꽃이 피어난들 아름다운 사람의 사랑도 잊혀져 갈 일이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흐르듯 가고 그리하여 이제 술 취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날들의 서러운 그리움을, 저 불어오는 바람을 어쩌란 말이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나의 폭음 버릇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나는 토마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막스 부르흐의 콜니드라이, 차이코프스키의 오제의 죽음, 브람스의 4번등과 같은 우수어린 그리고 처절하도록 비장한 음악을 들으며 적막강산의 가을밤 홀로 쓰디 쓴 소주잔을 기울였다. 사랑은 이제 다시 내게 오지 않는 것인가. 이 솟아나는 그리움은 어디에서 오나 슬픔과 절망으로 비롯된 나의 눈물은 마를 길이 없어라. 못다한 사랑, 못다한 노래는 그리하여 시가 되었습니다.
내 그리움의 끝과 다시 또 시작에도 당신은 서 있어요. 이 밤, 그리운 당신의 창가에도 불빛 스며나고 풀벌레들은 다가와 물소리일까 낙엽지는 걸까 낮은 울음 울며 깊어가겠지요.
그해 가을 쉬임없이 쓰여진 나의 시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그녀에게 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