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도 만추를 벗어나고 있는데 날씨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11월의 세 번째 주말이다.
백제기행에 언제나 젊은 부부 몇 몇 팀이 보기좋은 모습으로 매 번 동반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시샘과 부러움을 느끼던 나는 며칠 전부터 갖가지 감언이설로 남편을 부추겨댔었다.
별로 어울리는 성격이 아님을 아는 터이지만 고맙게도 나의 협박에 넘어가 준 남편을 포함하여 40여명의 기행자들은 언제나 서두르지 않는 모습으로 기행에 올랐다.
관광버스가 구이를 지나 안개에 쌓인 모악산을 바라보면서 문화저널 3주년 행사로 초청되는 김영동씨의 민요가락을 인솔자의 선창에 따라 구전으로 배우기도 하였다.
흥겹고 한 가족이 되는 기분은 합창이 주는 화합의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우리는 농촌문제연구회장이신 이석영 선생님의 농촌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긍지를 갖고 사는 참다운 농민들이 숨쉬는 곳이라는 기대감을 안으며 임실군 청웅면에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은 10시 30분경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90년 전국 농민대회” “고향을 사랑하는 형제들을 초대합니다.”라고 쓰여진 포스터가 여러장 붙어 있어 요즈음 우리가 직면해 있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여 준 집은 풍수지리설에 걸맞게 삼면이 산으로 에워쌓여 마치 병풍처럼 우거져 있었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풍성한 기와집이었다.
꼭 종갓집 냄새가 난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나는 시댁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17년전에 나는 이곳 청웅면을 닮은 시댁에서 볏짚으로 밥도 짓고 여름이면 돌로 부뚜막을 만들어 그 위에 솥을 걸고 국을 만들던 그 시절이 떠 오른 것이다.
도르레로 우물 물을 긷던 새댁이었던 내가 지금은 어느 사이 이처럼 중년의 이름으로 그 모습을 그리고 있는걸까!
마당에 멍석을 깔고 토종닭으로 끓인 국, 버섯요리, 소금으로 떫은 맛을 빼내고서 만든 감요리, 어디 이뿐이랴! 집에서 담근 동동주, 흰 쌀에 연두색 콩을 넣어 지은 밥이 한 그릇을 비워도 부족함이 없을 풍성한 식탁이 모두 무공해 식품이라니 영양분이 넘쳐 마치 뽀빠이처럼 팔뚝에 근육이라도 올라 오는걸 느낄 정도였다.
주위는 온통 동물농장을 연상케 하는 꿩닭이 거닐고 있고 하얀 빛의 칠면조, 오골계,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고 있는 노란빛에 흰 점이 있는 고양이, 왼쪽 통나무 뒤에는 순 한국산 토종개가 버티고 있고 때 맞추어 알을 낳으려는 닭들은 양철로 만든 일인용 간이침대에 꿈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후 꼬꼬댁 꼬꼬 하며 줄기차게 울어대는 닭장에는 암탉이 낳고 간 따뜻한 알이 놓여져 있어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포만함과 얼굴 얼굴에는 생기와 긍지가 살아 있어서 우리에게 햇빛, 물, 공기를 주는 자연에 대한 소중한 생각도 새삼스레 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집 주인인 유준규씨 부인이 보여준 조청 만드는 과정을 진지하게 보기도 하였다. 인공꿀인 조청이 손으로 만드는 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번 기행에서였다.
조청을 만들기 위해 먼저 무농약 엿 기름만으로 식혜를 만들어 달이는 일은 편리하게 살아가려는 우리세대에게는 매우 답답하고 지루한 일이었지만 정성과 재래식 방법으로 만든 조청은 옛부터 우리의 옛 어른들의 입맛처럼 지금은 우리에게 잊혀진 고향의 맛이 아닌가 한다.
메주콩을 안방에서 띄워 만든 청국장을 절구통으로 찧을 때는 그 구수한 냄새가 청웅면을 적셔주는 듯 하기도 하였다.
낙엽이 수북히 쌓여진 시골길을 따라 우리 일행은 집 울타리로 사용한 구기자 열매를 따기도 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부안군 변산면 소격마을로 향하였다.
버스 안에서는 다시 윤동주의 시에 김영동씨가 곡을 부쳐 만든 “누나의 얼굴”을 이종민 선생님의 구수한 목소리로 들으며 노래 경연대회에 대비하듯 모두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면 일터로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이 노래는 처량하지 않게 부르는 노래이지만 원래 우리 가락에는 한이 쌓여 있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김제군을 지나 부안군에 접어 들어보니 유난스럽게 산들이 낮아 보이는 걸 느낀다.
가을 가뭄으로 늦가을 단풍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고 산들의 나무마저 지쳐 타버린 듯 누런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버스는 국립공원으로 저정된 변산반도의 바닷가를 끼고 경쾌하게 달리고 있었다. 만조가 된 바다에는 물안개가 동양화의 한 폭처럼 쌓여 있어 철 지난 바닷가의 낭만이 버스 안으로 가득 가득히 모여지는 듯 하였다.
우리의 목적지인 격포 소격마을에 도착하니 잿빛 하늘과 한적한 가을 풍경이 정다웁게 우리를 반겨준다.
모두들 일터로 나간 농촌의 골목 골목길을 따라 소격마을의 정경식시의 무우밭과 고추밭을 찾았다.
2천평 가량의 밭에는 무우와 고추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 모두가 유기농법으로 보람있게 키운 식물들이었다.
젊은 패기와 이 땅을 지키려는 사명감으로 그의 눈은 불타 있었고 농촌사회의 여러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땅도 사고 또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여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 미래를 진지하게 설명을 할 때 우리 기행자들은 모두 공감의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그곳에 심어진 무우를 뽑아 들었을 때 어느 것은 아이의 주먹만큼 작은 것도 있었고 또 어느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무우도 있었다.
정경식씨는 비록 지금은 이렇게 작은 무우라서 시장에 내다 팔면 경제적 상품으로는 외면 당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자연을 훼손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자신도 황폐해져가는 걸 묵인할 수 없다는 농민의 주체성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농가의 농약 사용량이 연간 6만t에 육박하고 있으며 벼 농사를 짓는데만도 평균 10회 가량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농약의 중독 및 농약사용을 통한 자살등 농약으로 인한 사망도 연평균 1천3백48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농협중앙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의 사용량은 지난 88년에 5만4천1백13t이었고 89년에는 5만8천5백49t에 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다고 무공해 식품이라고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 받을 수도 없어 자급자족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마토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려보았다는 이야기가 왠지 따스하게 가슴에 친해져 왔다.
한때는 주위에서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핀잔을 주는이도 있었고 소위 화확농법이라는 과학적인 농사를 마다하고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느냐고 주위에서는 미쳤다는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져 돈벌기 위해서는 어떤 농약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되어 땅이 메말라가고 이제는 사회문제가 돼버린 현실이 아쉬울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정경식씨 집으로 안내 된 우리 일행을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아담한 마당에 순두부, 막걸리, 묵, 즉석에서 버물려 만든 겉절이 김치가 우리의 구미를 당기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신문에서는 횟가루에 두부를 넣었다는 기사를 읽기도 하고 고춧가루에다 톱밥에 붉은 물을 들인 가루를 섞어 팔다가 적발된 기사들을 대하곤 한다. 시장에 가서 반찬 사가기 무서울만큼 조심스러운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 듯 뜨끈뜨끈한 묵과 두부가 손수 재래식 방법으로 만든 무공해 식품이라니 모두들 군침을 삼키면서 몇 번씩의 그릇을 비우곤 하였다.
더욱이 야채효소라는 즙이 있는데 시중에서는 효소녹즙이라고 하며 이 녹즙은 오염되지 않은 온갖 채소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을 50가지 정도 채취하여 황백설탕과 배합한 후 35℃온도에 15~20일간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써 수백종의 효소와 풍부한 비타민,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는 특별한 액체였다.
모두들 한 모금씩 맛을 보았는데 나도 덩달아 맛을 보니 꼭 천연 엑기스처럼 달콤새콤하면서도 향내나는 맛이 아닌가! 생야채 과일 효소원액은 인체 내에 정화와 해독작용을 해주는 효소로써 신진대사에 의해 생긴 노폐물을 중화하고 새 조직의 생성을 돕는다는 야채효소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인가 보다.
우리는 너무나도 안이하게 상품문화에 젖어 풍성하게만 살려다가 자연을 너무 훼손하고 인간 자신도 황폐해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에 조금은 숙연해지기도 했다.
늦가을 비가 내리는 저녁 무렵.
예정 출발시간이 지난 오후 6시에 우리는 소격마을을 출발하였다. 무공해 무우와 고추로 깍두기를 담그어 보자는 마음에서 한 보따리씩 든 손바닥에 유난히 힘이 솟는 듯하다.
이 땅에도 우리의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긍지를 갖고 연구하며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이 그지없이 고맙기마저 하였다.
오늘의 기행 마무리에 대하여 이석영 선생님은 환경파괴를 피하고 지력을 키워가면서 무공해 식품을 생산하는 농법이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한 작물이 되어 인간과 가축에게까지 건강을 증진시켜 주는 것은 물론 농촌의 문제를 제대로 알아서 올바르게 풀어가는 게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는 그저 농민들의 생활이 어렵겠다는 가벼운 느낌으로나 알았을 뿐 그들이 얼마나 가슴이 좌절로 꽉 차 있는 지는 모르고 있었따.
우루과이 라운드!
경운기에 “농민이 죽어가고 있다”라든가 “살길이 막연하다”라고 쓴 머리띠를 맨 농민들을 막연하게 안타깝게만 바라보았던 내가 이번 기행으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따.
우리 일행은 처음 기행에 나설 대처럼 다시 노래를 불렀다. 잊혀져 갔던 우리의 가락이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오는 우리 겨레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세 번째 떠나 본 백제기행!
매 번 떠날 때마다 내게 주는 감동은 매 한가지이다.
편안하고 뭐라 꺼내 이야기 할 수 없어도 기행자 모두가 오래된 이웃마냥 푸근함과 친숙함에 흐뭇하기도 했다.
사회자가 진행하는 멋스러운 민요가락으로 피곤함도 잊은 채 우리는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새삼 우리 농촌에 애착을 느끼며!!
거뭇 거뭇 숲속에 퍼-런 못자리 물 속에
도랑물 옆 긴-둑 따라 포플러
신작로 따라
울어라 개구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