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0.12 | 연재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시네마 천국
윤 승 희 전주 M B C 아나운서(2004-01-29 10:33:07)

모처럼 만난 좋은 영화였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가 곧 천국인, 영화를 최대의 기쁨으로 아는 소년 ‘토토’와 그 소년을 구체적인 영화의 세계로 이끄는 인생의 선배 ‘알프레도’와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감상이 사람들의 큰 낙이었던 시절, 극장 뒷면의 한 구멍에서 쏟아지는 빛살을 통해, 신기하게도 사람이 나오고 강물도 흐르는 ‘영화’라는 것, 그것에 소년 ‘토토’는 그만 온 정신을 빼앗겨 가난한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하면서 영화관 주변을 맴돈다.
‘알프레도’는 영사기를 돌리는 기술자다.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영사기와 필름과 알프레도-이것들만이 ‘토토’의 관심을 모으는 대상이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토토’가 어리다며 상대해주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영사실에 불이나고 ‘토토’의 도움으로 ‘알프레도’는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나, 두 눈은 시력을 잃게 된다. 그후 두사람은 가까워지고 ‘토토’는 ‘알프레도’의 눈이 되어 함께 일을 하는 동료가 된다. ‘큰사람’이 되라는 ‘알프레도’의 격려와 충고로 토토는 고향을 떠나 유명한 영화감독이 됐고, 절대 고향에는 돌아오지 말고 일에 열심하라는 ‘알프레도’의 충고에 따른 ‘토토’는 30여년후 알프레도의 장례식 때 다시 고향을 찾는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유물을 남겼다. ‘토토’가 어렸던 시절, 마을은 교회의 통제 아래 있었고, 모든 영화는 신부의 검열을 받았는데, 남녀의 애정장면은 신부의 명에 의해 모두 잘려나가야 했다. 사라진 장면들-. 그러나 ‘알프레도’는 어느 하나도 버리질 않았었다. 그 모든 것을 하나 하나 이어붙여 한편의 영화를 만든 것이다. 남녀의 키스씬만으로 된 희한한 영화를.
영화로 인해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이렇게 사라졌던 필름을 되 찾아 이은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고, 그러면서 이 영화 「시네마 천국」은 마무리된다.
잘난 남성의 위대한 용기나, 아름다운 여성의 빛나는 미소도 없이, 이 영화는 깊은 감동을 남긴다. 그저 초라한 한 영사기사와 시골 소년의 잔잔한 우정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애정은 그 어떤 것이든 감동을 준다. 방송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가끔 좋은 프로그램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듣기 좋은 목소리의 진행자, 잘 생긴 얼굴의 탤런트, 꼭 정말같은 셀트, 21C를 앞당기는 최신 장비들, 이 모든 것이 방송에 없어선 안될 것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동원된다고 해서 과연 좋은 프로그램이 되는가, 그건 아니다.
「시네마 천국」이 좋은 영화인 것은 바로 ‘토토’와 ‘알프레도’ 두 사람의 꾸밈없는 모습과 진실된 우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변 이웃의 가난하고 거친 모습까지도.
여기에서 우리는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발견한다. 그 애정은 몇 영웅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토토’가 달려가곤 했던 광장의 걸인과 슬픈 영화에 눈물 흘리는 이웃집 아저씨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지친 목을 이끌고 돌아가는 퇴근길의 사람들, 그 모두를 향하는 애정이다.
결국 ‘토토’ 와 ‘알프레도’의 우정은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주고 받는 관계 중의 하나이고, 그 관계(우정)은 서로가 좋아하는 것-영화-에 대한 ‘토토’의 성실함으로 알프레도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져 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해야 할 일에 성실한 나는 나와 관련된 모든 사라들과의 관계에 성실한 것이 아닐까?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내 이웃 역시 지금 나에게 충실한 것이고.
「시네마 천국」이 다시 상영된다면 맨 첫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마치 ‘토토’가 영화를 알게 되는 첫 순간처럼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감상
“심 문” 박 현 국 ․ 이리시 신동 청솔아파트 5동 403호

동구의 개혁으로 새롭게 선보인 영화 가운데 하나인 “심문”을 보았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강력한 국가 권력의 억압에 어떻게 몸으로 항거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내적 투쟁을 영화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인기 작가를 남편으로 둔 가수이다. 그녀는 위문공연 뒤 귀가길에 낯모르는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신뒤 그들에 의해 국가기관에 납치된다. 여기서 그녀는 간첩 사건에 연루된 옛동료에 대해 그가 간첩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서명하라고 하는 모진 고문과 회유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것을 거부한다. 급기야 그녀는 자살을 기도 하지만 실패하고 말며 병원에서 자기를 찾아온 심문관의 아기를 낳게 된다. 그녀는 드디어 아기를 낳게 되는데 그 심문관에게서 앞으로 석달 뒤에 석방되리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 심문관은 그 말을 마친뒤 자살하고 만다. 드디어 그녀가 석방되고 아기를 고아원에서 찾아와 집으로 들어가 아기가 문을 노크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은 감옥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특히 한 감방안에서 같이 지내는 동료에게 감시를 당하며 육체적, 정신적 모욕감을 자아내게하는 행위를 강요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에게서 까지 배신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 고통과 고문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거짓 진술로 자신을 속이지 않고 끝내 진실을 지킨다.
주인공은 어떠한 잘못이나 위법으로 인하여 수감되지 않고 다만 옛동료였던 사람이 간첩 혐의가 있다고 하여 그에 대해서 불리한 진술만을 강요하라는 심문을 받는다. 심문관은 국가의 이익과 안전을 위하는 일이니 개인의 이익은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거짓 진술과 사인을 강요한다. 비록 이 영화가 폴란드에서 제작된 영화이고 그 나라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그 곳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모하게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에 반대하거나 그것의 비리를 폭로하는 인사의 인권을 유린하는 온 나라의 비리에 대한 고발이면서 항거이기도 하다.
국가와 개인은 두가지 모두 각각의 권한과 존재의의에 의해서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서로 상보적인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 자기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힘의 유무나 부도덕성을 합리화시키는 방편으로 서로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세계사를 통하여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국가와 개인간의 갈등 극복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프랑스의 대혁명은 전제왕권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인권을 되찾기 위해 자유, 평등, 평화를 부르짖은 것이며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국가의 억압에 항거하여 개인의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미국의 남북 전쟁 역시 노예제도를 중심으로 그것을 유지시켜 개인의 이익을 확보하느냐 인간의 인권을 회복하느냐 하는 것의 치열한 확인이었다.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은 오늘의 인간적인 서구사회의 주요한 뿌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서구사회에 있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진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곳에는 더 이상 무고하게 인권이 부패한 국가권력의 유지를 위해 희생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물질적인 풍요만이 인간생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인권이 보장되고 법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인권을 침해할 수 없는 사회가 이상사회이고 지금 우리가 이곳에 실현시켜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직접적인 간첩혐의를 받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혐의자에 대한 불리한 진술과 시인을 강요받는다. 결국 그런 혐의를 받는 사람은 처형되고 만다. 과연 무고하게 강요된 진술에 의해 처형당하는 당사자의 억울함은 누가 신원해줄 것인가. 제발 그런 일이 혹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지나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최근 6공 시국구속자가 4천 1백 76명이라고 하며(한겨레 신문 1990. 12. 5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김근태씨 고문, 방북인사구속등을 보면 이 영화의 잔인하도록 처참한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만 않다.
이 영화 가운데 두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하나는 왜 주인공을 심문했으며 그녀를 임신시킨 심문관이 죽었느냐하는 것과 하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아기가 아버지라고 하면서 방문을 두드리는데 과연 그 아버지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심문관의 죽음은 주인공을 가혹하게 고문한 것과 임신시킨 것에 대한 이율배반이나 죄책감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주인공이 끈질기게 진실을 고수하자 주인공의 진실과 부패한 국가권력 사이에서 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