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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 | 특집 [특집]
제자리찾은 전북의 문학풍토
이 운 용 시인 문학평론가(2004-01-29 10:40:21)

전북의 지역문학은 문학인의 확대와 작품의 질,양면에서 발전된 양상을 보인 한 해였다.
그 동안에 보아왔던 문학정신의 타성과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삶에 대한 치열한 추구정신으로 문학인 본래의 사명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성된 문학의식은 시와 소설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의 경우 지역 원로를 비롯, 데뷔2년도 안되는 신인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권의 시집이 발간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역사와 현실감각이 뛰어난 시집은 이병훈의 연작 서사시 『녹두장군』, 진동규의 『민들레야 민들레야』, 박남준의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이며, 시정신의 집중된 예술설으로 자기 세계를 절실하게 담아낸 황길현의 『땀 그리고 빛』, 채규판의 『허망의 노래』, 이상렬의 『남은 햇살로』등 여섯분의 노작이 전북시단을 풍요롭게 한 하나의 수확이었다.
소성의 경우는 비록 양적인 열세에서 기갈을 면할 수는 없었으나, 이병천의 소설집 『사냥』은 현실의 맥을 짚어가고 있는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깨어있는 의식의 집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되는 것이었다.
수필 분야는 중진 수필가 유기수의 문학기행 『문학따라 나그네길』, 김옥생의『삶은 아픔인 줄 알았더니 사랑이어라』, 김환득의『그대 사랑 내게 멍에가 되어』와, 공숙자 외13인 공동 수필집 『채점표는 필요없다』등이 황토색 짙은 정감과 인생여담을 진솔하게 엮어낸 역저들로 지적된다.
아동문학의 경우 윤갑철은『꽃씨의 꿈』『시골편지』등 두 권의 동시집을 펴낸데 이어, 허호석의『바람의 발자국』, 윤이현의 『우리는 단짝』, 그리고 동화집으로 김여울의『하느님의 발자국 소리』, 소석호의『위대한 바보 칠칠이』등이 동심의 세계를 아름답게 수놓은 올해의 결실이었다.
이밖에 지역문화을 대표하는 문학회지와 동인지의 지속적인 간행과 활발한 신인 등용으로 문학의 저변확대가 괄목할만큼 신장된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문학인 스스로는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문학을 택하였느냐’하는 문제와 ‘자기표백이나 명예와 영달의 수단으로 문학을 택하였으냐’의 문제를 심각하게 반성해 보는 겸허한 자세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학정신이나 작품의 경향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금년의 전북시단은 몇가지 면에서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겠다. 먼저 문단 일각의 그릇된 편견이라고 볼 수 있는 순수시와 참여시의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각기의 시세계를 다양하게 구축하고, 지역 시인들의 화합이고 화음이 될 시의 종합무대가 이 지역에서 발행되는 『표현』지를 통해 작품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작품들이 대개 개성과 참신미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역적 한계를 떠나 한국 시문학 안에서 2천년대를 빛낼 우리시의 면모와 결실의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케 하고 잇다. 끝으로 시인들의 올바른 시정신과 꾸준한 연마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일부 시인들의 자세는 시를 향락의 대상이나 자기소외의 방편으로 일삼고 있었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과거의 현실이었으며, 지금도 없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나 외롭게 따돌림당한 전라도적 향토의식이 첨예하게 자리잡으면서 전북지역의 시단 흐름을 형성, 오늘의 시인과 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쳐 의식이 깨어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들의 시세계는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이를 소재(주제)별로 유형화하면 대략 다섯 항목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억눌리고 짓밟힌 한 시대의 어둠에 대한 통렬한 고발과 비판을 가하는 시들이다. 정인섭은 그러나 신화적 이미지들 도입하고 있으며, 언어가 간결 명료하게 정제되어 있다. 즉 한 시대의 양심과 행동 상이에 가로놓인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직접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이광웅은 자신의 감옥 생활 때문에 풍비박산이 된 아내의 고통스런 삶을 들춰냄으로써 불의와 억압의 폭력세력에 대한 야만성을 간접적으로 고발하고, 이에 대한 저항과 한맺힌 시대고를 드러낸다. 또 이회찬은 비명에 죽은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대상으로, 시와 현실과의 대응관계에 있어서 시는 현실의 모순과 불의와 반인간적 권력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져야한다고 하는 신념과 주장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안도현은 그 자신이 해직교사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부조리와 법의 악영향을 고발하고 풍자한다. 박남준은 서정의 온도가 짙은 정한을 고독한 인간존재의 실존의 모습으로 제시해 준다. 이는 시인의 심정적인 고백을 통해서 그리움이나 외로움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역사와 사회 속으로 시선을 집중시켜 오늘의 현실을 해체하고 이에 대응해 가려는 시들이다. 동학농민전쟁을 조명한 서사시의 이병훈과, 나름대로의 역사적 안목을 현실 속에 부각시킨 정렬 김남곤, 소재호, 진동규, 이동희, 정희수, 우미자, 류옥희의 시에서 특히 주목된다.
유승식은 단군 이래 우리의 긴 역사와 그 성쇠를 현실시각으로 풍자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민족의 타락을 경고하고 반성을 촉구한다. 김민성은 이러한 역사현실에 대한 첨예한 지적 투사와 함께 자연이 훼손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산업화 시대의 병폐를 문명비판적 입장에서 전개시키고 있다. 그의 「바다」연작시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셋째는 가난한 도시 하민층과 궁핍한 농어촌 서민을 대상으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또 삶의 철학을 형상화한 시들이다. 반만기, 송희철, 박종수는 일찍이 그들의 시집을 통해서 역력히 보여준 바 있다. 박형보는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여인상에서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고, 조미애는 농촌노파의 주름진 얼굴에서 인생의 깊은 회한과 향수를 떠올린다. 두 시인이 구체적인 인물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인데 비하여, 김용옥은 삶을 소재로 하되 호혜 평등의 인간가족이라는 원칙 아래 올바른 삶의 규범을 형상화한다.
넷째는 인생론적인 존재의 제실상을 추구하는 시들이다. 인생 그 자체를 덧없음으로 인식하고 이를 초월하려고 꿈꾸거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탈속한 도가적 이상세계를 꿈꾸는 경향이 그것이다. 최종규, 이목윤은 대인간적 비판 위에 자신의 존재와 실체를 드러낸는 데 특징이 있다. 이세일은 인간을 실존적 개체로 보고 소외된 삶에의 좌절과 비애를 극복하려는 초월정신을 보여준다. 이와 대립관계에 있는 이기반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고 현실세계와 유리된 고전 속에 몰입되어, 인생의 안분지족을 신선사상으로 노래하고 있다.
다섯째는 사물 그 자체의 세계인식 혹은 본질인식에 관한 서정시들이다. 표현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큰테두리 안에서 하나의 범주로 집약되는 시들이다. 황길현의 뛰어난 상상력과 언어의 치열한 규율, 허소라의 지적 투시와 채규판의 사문인식에 대한 탐구정신, 황영순이 복웅의 서정적인 탐미 등을 먼저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손석일은 기하하적 사고와 감수성으로 사물과 존재의 질서를 파악, 관념시의 한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성미의 경우는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이나 속성을 이해하고 인식하려는 태도로 구체적 사물을 시의 영역으로 끌어 들이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사색적, 관조적이며 언어의 세련미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박지연 역시 서정젖 자아의 감수성이 농밀하다는 것과 순결한 영적 비상을 꿈꾸듯여성 특유의 아름다운 정서를 맑게 수놓고 있다.
이러한 시의 다변화된 개성과 함께 일련의 지역시인들 작품이 점유하고 있는 문학적 위상은 우리한국 시문학의 즐기찬 흐름 중에서 그본류와 만나는 어느 한지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게 한다. 따라서 이지류들의 합류가 바로 한국 현대시의 커다란 본류라는 것을 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 있어서는 유기수의 집념과 정열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6・25체험을 통해서 분단극복과 통일의지를 화해희 실마리를 풀어가려는 데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홍근, 우한용, 최정주, 이변천의 소설이 이루어낸 업적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큰수확으로 지적된다.
전국적인 수준을 상회하는 수필문학과 아동문학의 진지한 작업들도 새해에는 더욱 알찬 열매를 맺어 전북의 문학풍토를 비옥하게 할 것이며, 그 질적 향상은 새로운 문학지망자에게 커다란 격려와 용기를 주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바, 전북지역의 문학적 장래는 밝다고 말할수 있다.


백제기행
◦ 제1회 : 1988. 5. 15
동학기행 “우리는 녹두새를 보았다”(정읍・고부)
◦ 제2회 : 1988. 7. 16~17
지리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리산 일대)
◦ 제3회 : 1988. 9. 11
쌀의 수난사(군산미곡창고・부안계화도)
◦ 제4회 : 1988. 11. 12~13
회문산의 삶과 섬진강의 문학(섬진강・회문산일대)
◦ 제5회 : 1989. 1. 15
판소리 동편제의 맥을 찾아서(남원・구례)
◦ 제6회 : 1989. 3. 19
백제부흥운동의 현장을 찾아(부안안두류산성・김제금산사)
◦ 제7회 : 1989. 5. 27~28
지리산의 문학(지리산 달궁・만복대일대)
◦ 제8회 : 1989. 7. 23
백제문화의 원류를 찾아서(부여・공주)
◦ 제9회 : 1989. 9. 24
흙과 불과 장인의 정신(고창・부안도요지)
◦ 제10회 : 1989. 11. 18~19
지리산과 끝나지 않은 전쟁(지리산 피아골 일대)
◦ 제11회 : 1990. 1. 20
익산 먹거리 문화를 찾아서(황등・함열・웅포)
◦ 제12회 : 1990. 3. 25
반계 유형원의 실학사상(부안 우반동 반계고택・내소사)
◦ 제13회 : 1990. 5. 5~6
태백산맥제(노고단・화엄사・피아골)
◦ 제14회 : 1990. 7. 22
전북의 장승과 성신앙(남원만복사・순창팔덕・정읍칠보)
◦ 제15회 : 1990. 9. 23
전북 카톨릭 수난의 발자취(치명자산・천호성지・여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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