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문제를 생각한다.
누구도 ‘남성운동’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의 상대적 개념임이 분명하다면 확실히 ‘여성운동’ 이라는 말은 무슨 문제성을 전제로 한다. 바로 ‘여성문제’라고 하는.
남성이 그가 지니는 생물학적 특징 때문에 ‘남성문제’를 야기시키지 않는다면 여성도 그가 지니는 생물학적 특징 때문에 ‘여성문제’를 야기시키지는 않는다.
“옛날 여성의 노동은 채취였고, 남성의 노동은 수렵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가리켜 생리적 특성을 이용한 ‘자연적 분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정착생활의 시작, 여성일반이 담당하던 노동이 남성일반의 노동으로 대체되는 과정) 농기구 등의 개발은 막대한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오게 되고, 이 과정에서 생산 수단을 독점하게 된 소수의 남성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남성과 여성일반을 지배하는 계급 사회가 출현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자에 대한 착취-이 계급지배질서 속에서 성에 기초한 ‘자연적 분업’은 ‘사회적 차별’로 전환한다.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남성이 그런 것처럼 여성도 여성이라는 성 구분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유적본질이 그녀의 본질적인 존재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 본질은 노동하는 존재라는 데서 찾아진다. 노동은 모든 인간 존재의 일차적인 기본 조건이며, 노동이 인간 자신을 창조했다.
여성문제는 여성,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를 이용해서 지배자가 여성의 노동(인간 존재의 일차적 조건으로서의 그녀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함으로써 발생한 문제이다. 다시 확인하면, 여성문제는 그녀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발생하는 생물학적인 남녀간의 차이로부터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차이에 불과하던 남녀간의 관계가 현 사회 속에서 차별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을 문제삼고 있다.
결국 여성문제는 다름 아닌 여성 노동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운동은 일차적으로 여성문제를 문제삼는 것이고, 이 여성문제라고 하는 것은 해당사회가 당 사회 여성들의 노동력을 그 사회 유지에 억압적으로 복무시키고 이용함으로써 파생된 문제이다. 그리하여 여성문제는 단순히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사회적 문제이며, 해당사회 구성원 전체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된 문제에 다름아니다. 나아가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하여 여성문제는 해당 사회 성격에 따라 각각 규정되며 여성운동 또한 그렇다.
2. 한국사회, 그리고 여성문제
물론 우리사회는 일차적으로 자본(총체적 의미의)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원칙이 관철되는 자본주의 사회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제국주의의 침탈로 인하여 그 대립이 더욱 첨예화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분명 우리 사회 자본의 성격은 제국주의의 식민지성을 확대 강화해오는 과정이었으며 우리 여성은 바로 이런 지배구조속에서 노동하며 살고 있고, 여기에서 우리 사회 여성문제는 출발한다.
그런데 분명 여성문제가 여성노동을 둘러 싸고 일어나는 문제이고 보면 여성 일반 모두가 동일한 억압구조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삶의 터전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고 나타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여성문제를 말할 때 그녀의 삶의 터전, 즉 계급적 성격과 노동의 내용(그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을 떠나서 여성문제를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여성들의 삶과 노동의 내용에 따라 우리 사회 여성문제를 몇가지로 유형화 시켜보자.
가. 생산직 여성 노동자
소위 말하는 70년대 “산업화”이래 한국의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세계 자본주의 질소 속에서 매우 중요한 몫을 담당해 왔다. 이 화려하기 까지 한 세계적 위치의 확보는 인플레이션과 불황의 침체 국면을 겪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국제협력, 국제적 분업화의 결과이다. 국제적 분업화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산업조정은, 단순한 기술, 적은 자본투자, 미숙련 노동, 낮은 임금 등을 전제로 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을 한국을 위시로 한 신흥공업국에 다국적 기업의 형태로 유치해 왔으며, 이들 섬유, 봉제, 외자기업 등지에 한국의 나이어린 여성노동자들이 값싼 노동력군으로 형성되어 왔다. 남성노동자 임금의 45%이하의 저임금 구조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은 또 다시 80년대 이후 급속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제적 경제구조의 끊임없는 조정은 국제 경쟁력이 약한 산업의 지속적인 폐기, 업종 전환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89년부터 가시화되고 있는 외자기업의 철수, 90년도 근년의 통 ․ 폐합 공장이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여성노동력은 실업자로 전략하거나 아니면 임시직 내지 파트 타임직으로 이전됨으로써 상당한 불완전 고용의 형태로 표출되어질 것이며, 또한 대부분 미숙련직에 분포되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포디즘적 생산체제 내지 ME기술의 도입(포디즘: 생산조직의 합리화 방안으로 자동생산라인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의 노동이 단순화, 파편화되고 기계에 대한 인간의 예속이 강화되는 기업조직 원리, ME: Micro-Electronics, 극소전자, 과학기술에 의한 생산의 완전한 통제)에 따른 노동 성격의 점진적 변화로 인하여 더더욱 저임금 노동력군으로 압박받아 가 것이다.
이러한 여성노동력의 특수한 배치는 전체 한국 사회 노동의 성격을 규정짓는 요소임과 동시에 바로 여기에 일반적 남성노동자와의 차별성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는 나아가 여성노동자운동이 나름의 독자성(전체성 속에서의)을 유지하며 전개될 필연성으로도 귀결된다.
나. 여성농민
그 노동의 조건을 볼때 여성농민은 가장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에 들어있다 하겠다. “새벽별보며 일어나 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질 때까지” 일하고 있는 여성농민은 우리 사회의 기형적 산업화 과정과 저곡가 정책 등 파행적인 농업정책의 가장 극심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가부장제 문화로부터의 고통, 그리고 농촌인력의 유출에 따른 노동량과 그 노동강도의 확대는 전적으로 한국사회 농민문제의 커다란 줄기를 이루며 그와 함게 그 운동저 몫이 지대함을 확인받고 있다.
다. 도시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
‘미숙련’ ‘여성이 지닌 모성의 기능’ 등은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을 단순노동(품팔이와 막노동, 계절노동), 영세상업(노점상과 행상), 가내부업(구슬꿰기) 등에 종사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비공식적, 비조직적 직종이므로 집단적 이익 수호가 어려운 만큼, 더더욱 그 노동 착취가 심각하며 이 특수한 노동력군은 앞으로도 더 확대되어 갈 것이다.
라. 국제매매춘과 매춘여성
한국 사회의 식민지성은 우리 여성의 성을 기반으로 한 국제 매매춘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미군기지의 존재 자체가 식민지 사회의 주권에 대한 모독이며, 군사적 개입, 제국주의 경제 지배의 무력적 배경을 의미하듯이 미군 기지에 광범위하게 포진된 (87년 현재 4만 6천명의 미군주둔) 5천을 헤아리는 양공주, 이들은 온 몸으로 식민지 민중의 상품화, 비인간화, 반민족적 상징과 그 억압을 그대로 받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치가 떨리도록 매도당하고 이국 땅에서 죽어간 20만명의 정신대와 이들은 전혀 다르지 않으며, 또한 70년대 이후 외화획득이라는 허울 앞에 팔려다니는 기생 관광의 꽃다운 여성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식민지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 사무직 여성노동자, 전업주부
일반적으로 직장여성이라 불리는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은 대체로 3C업무(커피, 담배, 카피)인 보조업무가 95%를 차지하는 여성업무=보조업무=저임금이라는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전업주부의 경우 역시 한국사회의 비민주성에서 기인하는 소비자 문제, 교육문제, 생활 주거환경의 공해문제 등에 따르는 피해의 일차적인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러한 성격은 사무직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이들 전업주부들이 여성운동의 주요한 몫을 담당하고 나서는 최근의 운동 동향에서도 잘 이해되고 있다.
그 밖에도 여성일반이 공히 처하고 있는 성의 상품화 문제, 가부장제 문화 관습으로 부터의 억압 등이 우리 사회 여성문제의 한 축을 이루며, 이러한 폭넓은 이데올로기적 공세는 다시 각계각층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억압하는 형태로 되돌아 가고 있다.
3. 여성운동의 몫과 전망
일제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미군정, 이승만 정권의 등장으로 급속히 단절되고 은폐된 한국 여성운동은 80년대에 들어서 어렵게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80년대 초반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그 지리한 논쟁(여성 운동의 성격에 있어서 벌였던 성이냐 계급이냐의 논쟁을 필두로 전체 운동 속에서의 그 위상에 대한 분파냐 운동의 총체성 획득이냐 등)을 뒤로 하고, 전체 변혁운동 속에서의 자기 위치를 다져가고 있는 여성운동은 전체 변혁운동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임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구 식민지 시대의 여성운동의 맥을 이어놓는 것이기도 하다.
87년 2월에 결성된 한국 여성단체연합(전국 24개 여성단체로 구성)을 한 축으로 또 각 부문운동 내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여성조직(전국 여성농민회, 한국 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여성노동자 조직들, 전교조 여성부를 중심으로 한 여교사 조직등)을 다른 한축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는 여성운동은 “각 부문 운동의 총합”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정확히 하고 있으며, 특히 87년 대중운동의 성장에 힘입은 주부, 사무직 여성등의 대거 진출은 여성운동의 큰 세력으로 형성되어지고 있다.
그 조직 건설의 폭 또한 88년을 기점으로 건설된 지역조직(전북민주여성회를 비롯해 충남, 대구, 제주, 부산, 광주전남, 경남, 거창, 순천등)에 의해 광범하게 넓혀지고 있다. 이들 지역 여성운동 조직들의 현실적인 기반이 되고 있는 주부, 사무직, 청년 여성들의 정치적 실천의 미성숙 및 변혁운동에 대한 소극적 대응은, 다른 한편에서 힘있게 제기되고 있는 지역 여성농민운동, 지역 여성노동자운동 등에 힘입어 곧 새로운 질적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