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헌 교수의 「판소리 연구」가 문학아카데미사에서 간행되었다. 250면의 아담한 분량에 장정도 산뜻하며, 활지도 시원시원하여 읽기에 편하다. 물론 담고 있는 내용이야 말로 주목해 충분히 값할만 하다고 생각된다. 판소리를 붙들고 상당히 오랜 동안을 고심해온 저자의 일련의 작업의 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최동현은 참으로 왕성하게 판소리에 관한 일련의 작업을 진행 해오고 있다. 그는 현존하는 유성기 음반의 사설을 채록하고 주석을 붙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또 이 지역 토박이 명창인 강도근이나 김성수를 모셔내어 음반으로 박아내게 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성근이나 송영주 등의 명고수를 중앙적 비중으로 소개 하기도 하였다. 최동현이 편안한 자리에서는 호남가나 소리 및 대목을 근사하게 불러낼 수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도 다 알지만, 이같은 일들은 구태여 매리엄의 말을 빌어 우스겟소리를 해본다면, 모두 그의 판소리에 대한 실천적 행동과 일정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동현의 실천적 행동은 다시 검토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선 이 자리에서는 그가 판소리의 개념 정립에 관련된 책을 낸 것에 대한 덕담을 하고자 한다.
최동현의 「판소리 연구」는 ‘민족 음악학적 관점에서의 판소리 연구’라는 부제에서도 알수 있듯이, 민족음악학이라는 일반에게는 다소 생소한 연구업적에 기대어 작업한 성과이다. 이 책은 원래 전북대학교에 제출한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이기도 한바, 학문적인 전문성이 특히 강조되지만, 이와 함께 일반에게 판소리의 개념과 위상정립이라는 점에서 대중성을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는 개론서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이 점은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기도 하다. 판소리의 개념정립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판소리를 정당하게 자리매김 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 충실히 그러한 입장을 견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판소리의 실체에 대한 한 전문적 연구서이나, 특히 문학이나 음악 등의 한 면을 강조하기 보다는 판에서 이루어지는 총체적 예술이라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의 서론은 연구목적을 간략히 제시한 다음, 논문 한편에 해당되는 방대한 분량의 판소리 연구사를 정리 검토하고 있다. 기왕의 판소리 연구에 대한 중요한 비판적 검토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사설 연구에 치우친 문학적 연구라든지, 치밀한 분석이 결여될 음악적 견해 등에 대하여 조심스러우면서도 예리하게 비판을 기하면서 자신의 개념을 논리화하고 있다. 특히 통념화된 잘못된 개념들을 수정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다음으로 최근까지의 판소리 연구의 동향과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판소리는 ‘인간적으로 조직된 음향’이라는 음악론을 제시하면서 음악적 연구의 차원이 단순히 음의 구조분석을 넘어서서, ‘음악과 결부된 인간의 행동이며 개념에 관한 문제들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판소리는 문화의 총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같은 방법론 선택의 필연성이라 할 수 있다.
본론의 제 1장은 민족음악학이라는 학문의 형성과 전개를 개관하고 있다. 이어서 이 학파의 주된 연구방법을 소개한 다음, 음악 연구의 다양하면서도 정당한 연구를 위하여 음악학적 분석뿐 아니라 ‘ 민중층으로부터의 평가와 문화 사회적 배경,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여러 측면, 심미적 형식적 심리학적 국면을 지닌 음악의 다면성을 고려 해야’ 한다는 메리엄의 견해를 존중하여 이들 요인을 모두 고려해 넣을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을 위해 세가지 차원으로 메리엄은 ‘음악에 대한 개념화와 음악에 관계가 있는 행동과, 음악 그 자체’를 들고 있는데, 최동현은 메리엄의 모델을 판소리에 적용하여 특히 본론의 2장에서부터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고수, 창자, 청중에 관한 사항과, 제외 장단, 성음과 조에 관한 문제들은 모두 판소리의 개념정립에 관한 정리이자 문제제기인 것이다.
고수와 창자(제2장)는 전통적인 고수와 창자에 대한 검토이다. 전통적으로 ‘일고수이명창’이라고 말해지는 용어에 대한 온당한 자리매김에서 시작하여, 소리판의 형성에서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르고 있다. ‘명창의 소리와 명고수의 리듬이 어우러져서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판소리의 높은 예술성이 성취’된다는 결론은 참신하다.
3장은 청중에 대한 견해인데, 수용미학적 접근태도가 돋보인다. 청중은 판소리의 공연장에 있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판소리 창자와 청중이 ‘대화적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을 소리판 형성의 조건으로 제시한다(현존성의 조건). 필자는 예술작품의 의의가 전적으로 텍스트 자체에만 있지 않으며, 독자와 그 의미가 함께 형성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공연 현장에서 실연되는 판소리 작품안에는 내용의 의미에 있어서 불확정적인 빈 장소(empty spot)가 있는데, 청중은 상상력을 통하여 그 곳을 적합한 방식으로 구체화 시켜서 채워넣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청중의 수준을 프린스(Prince)의 용어를 빌어 ‘실제청중’, ‘가상의 청중’, ‘이상적 청중’으로 두고 전래의 청중을 표현하는 좌상책은 가상의 청중에, 귀명창은 이상적 청중으로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4장은 장단에 대한 검토이다. 최동현은 “판소리는 장단이라는 리듬으로 지각되는 예술이며, 판소리의 장단은 한국인이 한국적으로 인간화한 시간”이라고 규정하고, 판소리의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등 일곱 개 장단의 원박의 원리를 제시한 다음, 부침새와 양상도 검토하고 있다. 부침새는 장단의 원박과 판소리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음의 시가를 중심으로 한 그 둘 사이의 관련양상으로 파악하고, 판소리의 음악에서 다채롭게 나타나는 부침새의 양상을 치밀하게 정리하고 있다. 맺고 푸는 것이 우리 음악의 변화무쌍하면서도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파악한 점도 그가 이룩한 성과이다.
5장은 ‘제’에 대한 검토이다. 최동현은 ‘제’라는 용어가 가진 다의적인 면을 크게 전승계보, 변이, 문화적 패턴에 따른 수용의 세가지로 범주화하고, 다시 이를 구체적인 사례들로 세분하여 ‘제’에는 유파의 개념과, 바디의 개념, 더늠의 개념, 조의 개념으로 각각 달리 사용되는 경우를 구분하여 개념을 명확히 하였다. 특히 유파의 개념인 동편제와 서편제 등의 용예는 이른바 5명창시대의 소리를 표준으로 삼아 당대의 다채로운 소리를 간편하게 인식하는 틀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 실효성이 상실된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위에서 필자는 최동현 교수의 『판소리 연구』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서 소개하였다. 판소리의 현존양상을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게 바라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며, 그같은 의도는 잘 이루어졌다고 본다. 사실 필자가 단순하게 요약한 이 책의 각 부분에는 독자가 새롭게 해설할 빈 장소가 상당히 많다는 것도 아울러 지적한다. 최동현의 작업은 판소리의 공시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역사적 연구를 통하여 이같은 입론이 다시 확인될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