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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 | 연재 [저널초점]
뜨고 지는 해, 장밋빛 희망
윤덕향 발행인(2004-01-29 11:16:15)

어제와 조금도 다들 바 없이 해가 뜨고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지금까지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일상 생활이 이루어지는 날들이다. 그럼에도 찢어넘긴 달력과는 달리 두툼하게 남아있는 달력뭉치처럼 새해는 지난 해와는 다른 한해가 되기를 바라게 된다. 곰곰 따지고 보면 새해의 기점이 되는 1월 1일 0시 이후가 그전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음에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느낌이나 마음가짐에 따라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 부여된 의미를 적어도 정월 한달간이라도 깊이 되새기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생활의 틈새에 밀려 여느 해와 다름없이 후줄근한 한해를 보내게 되고 다시 연말과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으로서 새해를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것이다. 흥청망청 마셔대고 놀아대는 망년회, 송년회라는 것도 후줄그레했던 한해, 처음 시작할 때의 의미나 다짐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져버린 날들의 연속에 대한 저마다의 결산이며 다시 자신을 위하여 도다른 설계를 꾸미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비록 그 설계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겨지고 잊혀질 것임을 잘 알면서도 조각나버린 꿈조각을 더듬는 자리마저 없앨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제 어차피 또다른 실망으로 결산을 마칠지라도, 기대가 크면 실망도 아픔도 큰 법이니 작은꿈으로 새해를 맞으며 얽어보아야 할 것같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우리 공동체 성원 각자가 참으로 차분히 자신이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하였으면 좋겠다. 1년 365일 날마다가 아니라 때때로라도 스스로 생물학적인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신문지상을 검게 물들이고 TV 화면을 폭력영화만큼이나 끔찍하게 장식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거대한 트럭을 몰고 모래재 험한 길에서 앞지르기를 하면서 ‘나는 죽을 준비가 되었는데 죽기 싫으면 피하라’는 식의 인간사냥에 가까운 운전도 줄어들 것이다. 사회가 나를 냉대하니까 나도 사회에 복수를 하겠다는 식의 보복행위도 줄어들 것이고 방어능력이 뒤지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범죄도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고 파는 행위도 줄어들 것이다. 주로 젊은 여자를 팔고 사던 행위가 이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요즘의 세태는 노동력을 사고 팔던 링컨대통령이전 노예 상인들보다도 더 잔혹한 일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같은 신판 노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짧던 길던간에 노예 사용자들에 다름없다. 그들은 인간을 노예로 부릴수 있는 존재, 인간을 초월한 초인간들인가? 피가돌고 밥을 먹어야 사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보다 강하고 찬 피가 흐르는 동물이나 공상과학에 등장하는 사이보그나 로봇과 같은 존재들인가? 스스로 생각해 볼이다. 인간이라면 같은 인간을 노예로 삼을수는 없는 법이다. 한핏줄인 우리네 공동체에서는 따지고 보면 어쩌면 바로 우리의 어머니, 누이, 동생, 조카일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존재라면 당당하게 인간부재임을 선언하는 것이 초인간으로서의 도리이다.
더불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중에서도 당당한 자존심을 가지는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자존심은 자칫 거만함과 동일시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으며 많은 경우 그같은 착각이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존심이란 정당한 자신감을 뜻하는 것이며 자신감은 자신의 충실한 내면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에서 바탕할 수가 있다. 물건을 살 경우 그 물건값에는 물건을 사기전후까지의 서비스에 대한 비용이 포함된 경우가 많으며 당연히 그같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마치 팔아주는 상인에게 고마움을 표해야하만 하는 것처럼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정당한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행위인 것이다. 체면에 어찌 따지고 언성을 높이겠느냐는 식의 도피는 자존심만이 아니라 자신의 체면자체를 땅바닥에 버리는 것이다.
정당한 자존심은 자신의 가치를 지켜주는 것이며 자신의 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동시에 이를 값싸게 처리하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거만하거나 건방진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며 정당한 권리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행사하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을 했을 경우 이를 적절한 절차를 거쳐 사과할 수 있는 것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며 어쩌면 인간의 권리이다. 그같은 사과나 잘못의 인정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의 체면을 손상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같은 사과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자존심의 근거는 상실되고 손상되는 것이다. 또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일도 없다. 양심을 파는 행위는 자존심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며 근원이 없어진 자존심은 다시 세우기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금년에는 4차례 정도의 선거가 있고 그 선거비용으로 몇조원, 몇십조원이 쓰일 것이라고 하여 걱정이라고 한다. 선거에 필수적으로 드는 비용이 어쩔수 없겠지만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표를 돈으로 사는데에 쓰이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진실로 걱정되는 것이 바로 이같은 음성적인 돈의 사용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정치에 대한 자존심을 팔아넘길 경우 표를 산 사람에게 그는 이미 정가가 매겨진 물건에 다름아니다. 한편 팔아 넘긴 자신의 권리를 손에 쥔 정상배는 받은 것 이상의 돈을 긁어내가며 다음번 매표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자신의 기름진 금고를 채우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한번 정가가 매겨져 양심은 다음번 선거에서도 그간의 물가오름세와 여건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간 앙등될 뿐 이미 매겨진 바 있는 정가에 준하여 매매가 가능한 물건으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정상배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니 국민의 복지니, 민족의 번영은 자신들조차 이해되지 못하는 문구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에게 있어 선거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판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몇푼의 돈에 팔아 넘기는 것은 술집에서 돈을 주고 성을 사고파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재앙을 미치는 일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보다 살기좋은 생활을 물려받아야 될 우리의 후손에게까지 허물어진 자존심으로 인한 빚더미만을 넘겨주는 것이다. 몇푼의 돈으로 팔고 사기에는 우리네 자존심은 너무 비싼 것이다. 그럼에도 밝아야할 새해에 마냥 웃음만을 짓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를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으며 실제로 거래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마치 잔나비가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자존심이 거래되는 선거는 아무리 많이 치룬다 하여도 우리의 미래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일과 장미빛으로 다가오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희망에 부풀만도 한 지금 참으로 그리운 것은 자존심을 지닌 인간군상인 것이다. 금년에만은 우리 모두가 온나라에 참된 자존심이 판치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비록 오래지않아 다시 휴지조각처럼 구겨진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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