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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 | 연재 [문화가 정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2)】포스트모더니즘의 지적 부당성
번역/ 편집부(2004-01-29 11:16:50)

1.계몽주의
‘포스트 모더니티’ 와 혁명 : 이책의 주제는,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공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 않은 듯한, 이 두 단어로 요약도리 수 있다. 실제 이 말들은 적어도 하나의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말들이 실제 지시하는 구체적 대상이 실제 사회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일련의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변동을 초래하였으며, 또한 이것은 어떤 경우(1917년 10월 러시아의 경우에서처럼) 실제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노동자들의 국가를 실질적으로 탄생시키기도 했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다. 성공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부재는 일시적이고 우연스러운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스트모더니티는 순전히 이론적인 축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흥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현재 서구 지식인들의 풍조에 대한 징후로서 일 뿐이다.(그래서 ‘포스트모더니티’에 인용부호를 하는 것이며 이 책에서는 비록 이 부호가 보이지 않더라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티와 혁명은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한 믿음은,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든 바람직한 것으로든, 대개 사회주의 혁명의 거부와 궤를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믿음은 공지하고 있는 혁명의 실패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료타르는 혁명의 거부를 포스트모던을 구성하고 있는 좀더 일반적인 현상 즉 ‘거대한 서술체계’의 붕괴라는 현상의 일례로 취급한다. 그는 특히 이것을 계몽주의 즉 18세기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사상가들과 연결시키는데, 이들은 17세기 과학혁명의 특성으로 믿고 있던 이론적 탐구의 방법을 물질세계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인간사회에 대한 설명으로까지 확장하여, 이를 자신들의 환경에 대한 좀더 합리적인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들의 광범위한 시도로 간주했다. 이러한 접근에서 파생한 역사 철학이 콩도르세의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소묘( Sketch ot the Progress of the Human Mind)』라는 제목의 유명한 논문에 잘 표현되고 있는데, 사회의 진화속에서 인간조건의 진보적인 개선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료타르는, 적어도 이 점에서는 분명히 헤겔과 맑스가 이러한 ‘철학’의 계승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제 이러한 모든 계몽주의적 구도는 와해되었다.
“진보가 가능하고 그럴듯하며 필요하다는 이런 생각들은 예술, 기술, 지식 및 자유의 발달이 인류전체에 유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근거하고 있다.
두세기가 지난후에야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인 징후에 좀더 민감하게 된다. 피비린내 나는 지난 이백년 동안의 어떤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도, 어떤 종류의 맑시즘도 인류에 대한 범죄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떤 생각이 아우슈비쯔를 보편적 해방을 향한 전반적(경험적이건 사변적이건) 진보 속의 고양(Aufheben)으로 위치지울 수 있단 말인가? ”
료타르는 이러한 생각을 ‘사소한’것이라고 칭한다. 좀더 합당한 말은 ‘낡은’일 것이다. 루카치의 소위 ‘낭만적 반(反)자본주의(Romantic anti-capitalism)’가 이미 18세기 말에 나타난 계몽주의 및 이것《계몽주의》이 이상적인 전자본주의적 과거(an idealized precapitalistist past)라는 이름으로 재가해주고 있는듯한 부르조아적 사회질서에 대항했다. 헤겔과 맑스는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적 비판에 대응하여 이를 콩도르세나 다른 ‘철학’이 제시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역사발전에 대한 이해로 통합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의 거부는 흔히 니체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치부되는데 세기말 유럽 사상의 악명 높은 ‘약방의 감초’였다. 이러한 전통의 가장 유명한(그리고 가장 복잡한) 최근의 예가 바로 막스혹하이머(Max Horkheimer)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er Adorno)의 『계몽주의의 변증법(Dialecitic of Enlightenment)』(1944)이다. 이에 의하면 이러한 ‘철학’에서 재가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지배욕구는 후기 자본주의의 ‘완전하게 통제된 사회(totally administrated world)’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억제되게 되면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인 파시즘의 형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타적 서술체계에 대한 불신(incredulity towards metanarratives)’은 적어도 다양한 ‘거대한 서술체계’를 낳은 바 있는 계몽주의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렐이 말하는 진보의 환상에 대한 세기말적 인식은, 포스트모던 예술과 이러한 ‘불신’을 다르게 파악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특히 당혹스러운 것이리라. 20세기 초 모더니즘이라는 영웅시대의 대가들도 전반적으로 역사적 진보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23년 『율리시스』에 대한 유명한 서평에서 엘리어트는, 조이스의 신화이용을 ‘현대 역사의 무용과 혼돈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통제하고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며, 의미와 형태를 부과하려는 방법’으로 설명하였다. 프랑크 커모드(Frank Kermode)는 소위 ‘종말의식(the sense of ending)’ 즉 한 시대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생각 혹은 ‘종말 위기의식(the mood of end-dominated crisis)’은 ‘모더니즘에 있어 풍토병과도 같은 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문명의 마지막 파국의 장이라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종말론적 생각은 꽤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러한 (커모드의 주장대로 중세이후 서구사상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인) 종말의식을 자신들에 고유한 것으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이를 모더니즘과는 적대적인 것으로 보아 모더니즘을 계몽주의의 한 예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린다 헛치언(Linda Hutcheon)은 모더니즘을 ‘현실에 대한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통어에의 믿음’으로 규정하는데 이거야말로 계몽주의적 구도의 가장 특징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러셀 버만(Russel Berman)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나 하버마스와 같은 계몽주의적 구도의 옹호자들이 공히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서 혹은 모더니즘의 개념은 르네상스 혹은 적어도 19세기 이후 서구사회에 팽배한 인문주의의 문화적 형성과 상응한다. 그래서 오늘날 논쟁이 지난 두세기 동안 자주 반복되어 나타났던 계몽주의와 이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대의 조응과 흡사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현대성에 대한 이처럼 획기적인 정의의 결과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잇던 미학에서의 혁명 및 이전시대의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형태와 대조적인 것으로서의 현대 예술 혹은 모더니스트 문학의 출현이 갖는 의의를 상대적으로 훼손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있어 역사적 구체성은 이하의 논의에서 보강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우선 모더니스트 예술을 계몽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것, 즉 포스트모던 예술에 교유한 정체(identity)를 부여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모더니즘의 특성에 대한 전유(專有)의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2. 모더니즘의 공동화(空洞化)
다음 두 글을 비교해 보자:
“ 다차원적이고 파악하기 어려운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간에서는, 마치 규칙이 없는 놀이에서처럼, 어떤 것이든 다른 것과 병행할 수 있다. 대빗 살(David salle)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부동의 이미지는 아무것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의미는 열쇠고리에 달려있는 열쇠처럼 분리할 수 있다. 고립되고 전후문맥과도 통하지 않는 이미지들은 하나의 일관된 통일성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요동하면서도 상호 관련되지는 않는 이들의 교호작용이 의미를 고정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 다양성과 불확정성이 우리 시대의 속성이다. 그것은 오로지 ‘활주성(滑走性: das Gleitende)’에 의존한다. 그래서 다른 세대가 확고한 것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인용문은 1987년 로스앤젤레스의 미술비평가인 수지 가브릭(Suzy Gablik)이 한 말이며 두 번째 것은 1905년 휴고 폰 호프만쉬탈(Hugo von Hofmannsthal)이 한 말이다. 둘다 세계를 다양하고 중층적인 것으로 그리는데, 가브릭은 이러한 시각이 포스트모던 예술에만 독특한 것으로 여긴다. 궁극적으로는 니체에게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현실인식은, 지난 세기말 중부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상당히 널리 퍼져있던 것이며 호프만쉬탈과 같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들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에게만 고유한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적 모티프에 대한 이런 식의 전유는 포스트모던 예술에 대한 설명에 있어 매우 전향적인 것이다.
이러한 논지의 힘은 모더니즘 자체의 속성에 대한 우선적 고찰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 유진 런(Eugene Lunn)은 이에 대한 탁월한 정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 1. 미학적 자의식(Aesthetic Self-Consciousness or Self-Reflexiveness) ‘ 예술작품 창작과정 자체가 작품의 핵심이 된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여 temp perdu)』에서 그 전형적 예를 제공해 주고 있다.
“ 2. ‘동시성, 병치 혹은 몽타쥬(Simultaneity, Juxtaposition, or Montage)’작품은 유기적 형식을 상실하고 다양한 담론이나 문화매체들로부터 연유한 많은 편린들의 집합물이 된다. 입체파 화가들이나 초현실주의자들의 꼴라쥬수법을 연상시키는 이것은 이이젠슈타인, 베르토프 혹은 그밖의 혁명적인 러시아 영화제작자들의 영상적 몽타쥬기법과 궤를 같이한다.”
“ 3. ‘역설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paradox, Ambiguity, and Uncertainty).’ 세계 자체가 일관성이 있고 합리적으로 확인 가능한 구조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어, 호프만쉬탈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다층적이고 불확정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비엔나 대학에 제출하였다가 그 음침하고 애매모호한 이미지 때문에 거절된, 크림트의 위대한 회화 즉 ‘철학’, ‘의학’, ‘법률학’ 등이 이러한 시각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 ‘4. 반 인간화와 통합된 주체 혹은 인격체의 사망(Dehumanization and the Integrated Individual Subject or Personality)’ 행보의 ‘나는 다른 존재이다’라는 유명한 선언은 조이스에 의해 시작되어 초현실주의자들이 계승한 무의식에 대한 문학적 탐구에 의해 공명된다.”

기이하게도 모더니즘에 관한 최근 논의중 가장 흥미로운 두 책의 저자인 페리 앤더슨과 프랑코 모레티는 런의 정의에 해당하는 비교적 통합된 형태의 예술적 실체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앤더슨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모더니즘은 문화적 범주중에서 가장 공허한 것이며,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매너리즘, 낭만주의 혹은 신고전주의 등과는 달리 그것은 그것 스스로 어떤 구체적이 것도 지칭하지 못한다.’ 고 주장한다. 앤더슨은 어쩌면 예술의 역서에 있어 전통적인 범주와 그 기원이 임의적이며 그 용례로 불확실하며 가변적인 용어에 과도한 믿음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모레티는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자신의 회의를 표현하는데 있어 좀더 구체적이다.
“ ‘모더니즘’은 너무 자주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합성어이다. 나는 브레히트를 모더니스트로 분류하지는 않을 것이다…나는 다만, 예를 들어, 초현실주의, 『율리시스』, 브레히트의 어떤 작품 등을 포괄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범주를 생각해 낼 수 없을 따름이다. 이러한 개념들의 공통적 특질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도 없다. 그것들은 너무도 상이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브레히트의 작품은 런의 정의에 나타나는 ‘공통적 특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격(疎隔: Verfremdung)효과’는 분명히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실제 삶을 엿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브레히트는 자기 서사극의 결정적인 특징으로 몽타쥬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연극은 관객들이 분명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구성되어 있다. 또 그것들이 드러내는 서술체계는 개인을 일관성 있는 하나의 주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모더니즘내의 상당한 변형까지를 부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런의 설명이 갖는 한가지 장점은, 그것이 1914년 이전의 확신에 찬 프랑스 입체파의 합리주의와, 비엔나의 ‘권태로운 미학주의(langorous aestheticism)’나 독일의 표현주의가 만들어 낸 ‘신경질적이고 흥분상태이며 고뇌에 찬(nervous, agitated and suffering)’ 예술 사이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조에 있다.
또 이는 예술 자체의 위상에 관한 모더니즘내의 매우 중요한 차별성을 무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의 정의는 19세기 말 전 유럽에 걸쳐 나타난 예술의 독특한 특성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에 대해 이러한 개념을 지니는 것의 잇점은, 예를 들어, 찰스 젱크스같은 사람에 의해 제시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다음의 정의를 고려해 볼 때 분명해 진다. : ‘이제까지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현대적 기술과 다른 어떤 것(보통은 전통적 건축술)과의 결합과 같은 이중적 약호(double-coding)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원래 의도했었던 것처럼) 포스트모던 예술의 보편적인 성격규정으로 본다면 이는 더없이 불충분한 것이다. ‘이중적 약호’-런이 말하는 동시성, 병치, 혹은 몽타쥬-는 분명 모더니즘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피터아크로이드(Peter Ackroyd) 의 『황무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 엘리어트는 처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재생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 안에서 그가 지탱할 수 있는 어떤 것, 실질적인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었던 문학을 읽음으로써, 또 그에 반응을 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다른 소설과는 달리 『율리시스』가 그에게 그토록 강력한 충격을 주었던 이유이다. 조이스는 언어의 다중적사용을 통해서만 그 존재가 가능한 세계를 창조했다. 목소리들을 통하여, 문체의 패러디를 통하여 그는 언어에 대한, 나아가 문체의 상대성에 대한 역사적 의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엘리어트 발전의 전 과정은 이러한 의식을 공유하도록 해준다…『황무지』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단테, 키드, 제라르 드 네발, 산스크리트 등에서 인용한 행들로 하나의 몽타쥬를 창조해낸다. 발견된 ‘진리(truth)’는 없다. 끊임없는 그리고 분명 무의미한 과정 속에서 하나 위에 다른 하나가 겹쳐지는 다양한 문체와 해석이 있을 뿐이다.”

엘리어트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불연속성의 물신(fetish of discontinuity)’ 이후 ‘더 광범위한 서구적 전통으로의 복귀’를 나타낸다는 젱크스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적절한 예라 할 수 있다. 엘리어트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전통과 개인의 재능」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자신의 작품과 광범위한 유럽 전통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관계이다.:

“역사의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세대를 뼈 속에 간직하고 작품을 쓸 뿐 아니라, 호머 이래의 유럽문학 전체와 그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자기나라 문학 전체가 동시적 존재속에서 동시적 질서를 형성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작품을 쓰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이 의식은 일시적인 것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영속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며, 또한 일시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을 동시에 의식하는 것으로서, 작가를 전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시간 속의 자기위치, 즉 자기의 현대성을 가장 예민하게 의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엘리어트가 ‘더 광범위한 서구적 전통’이라는 맥락과 관련하여 자기 스스로를 위치지운다는 점에서 주요 모더니스트들(예를 들어 조이스, 쇤베르크 혹은 피카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좀더 광범위한 문맥에 담론을 위치지우기 위해 자기반사성(self-reflexivity)을 뛰어넘는다’는 린다 헛치언의 주장을 그 설득력을 잃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역사기술적 메타픽션(historiographic metafiction)’ 《메타픽션이란 주 관심사가 소설의 본질 및 그 서술방법인 소설작품을 가리킴-역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현대의 많은 소설작품들-러쉬디의 『심야의 어린이들(Midnight's Children)』, 죤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연인(The French Lieutenant's Woman)』, 줄리앙 바니즈의 『플로베르의 앵무새(Flaubert's Parrot)』등-을 설명하려 하는데, 그녀가 예로 들고 있는 이들 작품들은 꽤 이질적인 것들이며 유사한 점이 있다면 20세기초 콘레드, 프루스트, 조이스, 울프 등이 사용했던 모더니즘적 수법을, 비록 그 용도나 형태는 다를지언정,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헛치언의 주장은, 포스트모던 예술에 대한 정의나 그 예가 세기말 모더니즘 혁명과의 절연이 아니라 그 연장이라는 당황스러운 사실을 다루기 위해 이용되는 다수의 교묘한 책략의 한 예에 불과하다. 또 하나 널리 퍼져있는 흐름은 모더니즘을 엘리트주의로 몰아치는 것이다. 그래서 헛치언이 ‘모더니즘의 애매모호성과 신비주의’를 지적하고 잇는 것이며, 안드레아스 후이센은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경향이 모더니즘의 대중문화에 대한 가차없는 적대의식에 대한 도전’ 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내적 구성에 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는 지나치게 강력한 것이다. 지독스러울 정도로 관리다운 엘리어트조차도 런던의 음악당을 좋아했으며 그 리듬을 자신의 시작품속에 사용했다. 스트라빈스키도 『봄의제전(Le sacre du printemps)』만 아니라, 랙타임(빠른 박자로 절분법을 많이 사용한 곳으로 재주음악의 시초-역자)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병사의 이야기(L'Historire du soldat)』도 작곡했다. 모더니스트 대가들의 미학주의, 즉 예술을 ‘현대역사의 무용성과 혼돈의 거대한 파노라마’로부터의 도피로 여기는 경향을 고려해 볼 때 엘리트주의라는 이런 비난은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포스트모던 예술이 획기적으로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다이즘이나 구성파 혹은 초현실주의 등과 같은 전위파 예술의 전개와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들도 사회 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좀 더 광범위한 투쟁의 일환으로서 예술과 인생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모더니즘적 기교를 이용했던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논의될 것이나 이제까지의논의로도 포스트모던 예술이 색다른 것이라는 주장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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