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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 | 특집 [특집]
양적 확대속의 허상, 그 내용의 빈곤과 획일성
김은정 편집위원(2004-01-29 11:20:30)

1980년대 이후 우리 미술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양화와 양적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신표현주의, 다시 말하면 새로운 이미지의 시대를 거쳐 80년대 말부터 오늘까지 전개되고 있는 다원주의 미술의 양상 속에서 금년 한해 우리 미술계는 해외 미술품 완전 수입 개방과 박물관 미술법 제정, 민중작가 구속 사건, 한국고미술품의 해외 경매, 표절 모작시비등 굵직한 움직임과 함께 적지 않은 구조적 변화를 가져 왔다.
다양화와 양적인 확대의 양상은 올해 전북미술계에서도 예외없이 가장 큰 특징으로 부각됐다. 우리나라 미술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쫓아가는 상황이 전개되는 속에서 올 한해 전북미술계는 젊은층의 전시 폭주, 민간 화랑의 기획전 확산, 주제전 형식의 단체전 증가등을 특징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작품전들이 획일적이고 걸러지지 않은, 상상력 빈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이러한 양적확대와 다양화 속에서 어떠한 내용을 확보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점이 제기됐고 따라서 전시회의 양적 확산에 견줄 수 있는 질적인 성장이 절실한 과제로 지적 됐다. 특히 이러한 전시회의 양적 확산 속에서 신선한 문제 의식을 기대하고 있는 많은 관객들에게는 적잖은 전시회가 ‘그것이 그것으로’ 보여지는 실망과 식상함을 안겨 주었고 또한 개중에는 기성작가나 외국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작가의식이 결여된 전시회도 적지 않아 큰 아쉬움을 남겼다.
올해 전북 미술계의 가장 큰 특징은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 단체전이 크게 늘었던 점이다. 일각에서 의욕적인 창작정신을 크게 평가받기도 한 이들 전시회는 그러나 창조력의 고갈이나 문제의식의 부재, 여과 없이 채택된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의 팽배 등이 더욱 절실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예년보다 더욱 늘어난 민간화랑의 각종 기획전은 전북미술의 위상을 점검하고 그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작업으로서 올해의 성과로 꼽힐 만하다. 그중에서도 세계적 격변 상황속에서 다소 침체되는 듯한 경향을 보였던 민족 미술 계열의 기획전을 꾸준히 마련했던 전주 「온다라 미술관」이나 개관당시부터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기획전을 꾸려온 「얼화랑」, 그리고 지역작가 중심으로 초대전을 이어오고 있는 「대성화랑」은 올해에도 특징적인 결실을 거두었으며 전북미술의 오늘을 이어 가는 구심체 역할을 해냈다. 이와 함께 지난 3월에 개관한 전주 우진문화공간의 역할도 금년의 새로운 성과로 부각될 만 하다.
올해 전북미술계에선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가 예년보다는 크게 늘어 폭주 현상을 보였다. 기존 단체들의 정기 작품전과 개인전, 그리고 새로 모습을 보인 단체들의 창립전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이루어졌던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는 이지역 미술인구의 저변 확대와 함께 표현 양식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근래의 전시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내용의 빈곤과 획일화 현상을 더욱 절실하게 드러내주는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이들 전시회는 창조력에 의 치열한 작가 의식이나 젊은 세대다운 문제의식을 반영해내지 못한채 획일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오히려 미술 전시회에 대한 식상함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미술계 자체의 평가이기도 했다.
올해의 단체전에선 이지역의 독창적 정서와 그 현실적 문제를 담아내는데 작업의 중심을 세워 두고 있는 「들 바람 사람들」의 네 번째 정기작품전과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형식과 내용면에서 그 방향을 꾸준히 모색해나가고 있는 「전북회화회」의 주제전이 수확으로 꼽힐 만하다.
미술이 우리의 삶과 무관할 수 없다는 뚜렷한 인식으로 활동해온 「들 바람 사람들」은 금년에도 농촌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들로 이지역의 현실적 문제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그것의 예술적 형상화측면에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채 관객을 감동시키는 힘을 발휘해내지 못했다는 면에선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전북회화회」도 〈전북의 산하〉주제전을 통해 지역의 독창적 정서를 담아내고 또한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 가는 땅과 삶으로부터 출발한 미술의 힘을 발휘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으나 기획의도를 충족시키기에는 적지 않는 작품들이 관념적 요소를 채 극복해내지 못함으로써 보다 치열한 창작정신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단체전은 수많은 단체 기획전이 폭주하고 잇는데 반해 내용상의 빈곤과 획일적인 작품경향이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부각돼 있는 현실에서 치열한 현실 인식과 문제 의식을 발휘하는 소중한 바탕으로서 가능성을 안겨주었다.
이와 함께 서울,전주,광주,부산 등 4개 지역의 미술관과 화랑이 공동으로 기획해 열렸던 「92 한국화­그 감성의 모색전」은 우리 시대의 정서에 알맞는 새로운 양식과 방법의 창출을 꾸준히 모색해온 각 지역의 작가들이 초대된 전시회로 관객들의 큰 관심을 모았으며 이 지역 화단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각 지역의 현대미술 작가가 참여한 「제2회 현대미술 교류전」이나 〈전북문화저널〉이 역량있는 신인작가 발굴을 위해 주최한 「전북 청년작가 초대전」, 민족미술협회의 「작은 조각전」등도 의미있는 기획전으로 꼽힐 만 하다.
민전으로 이관 된지 3년째를 맞은 전북미술대전은 응모작품이 지난해보다 30점이나 줄어든데다 전반적으로 창의적인 실험정신이 부족하고 신인다운 참신한 문제 의식 또한 미비해 미술대전의 성격과 위상 정립이 절실한 과제로 부각됐다. 이 지역 미술인들이 가장 폭넓게 참여함으로써 전북 미술의 오늘을 보여 주는 「전북 미술단체 연립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참여 작가 부족과 그 취지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분위기로 새로운 방향모색이 절실하게 제기 됐다.
올해 활동이 가장 돋보인 작가로는 서양화가 임옥상, 유휴열씨를 들 수 있다. 연초 호암 미술관 초대전을 가져 국내 미술계의 큰 관심을 불어 일으킨 임옥상씨는 작가적 역량을 인정 받았다는 개인적 성과뿐 아니라, 『민중 미술의 제도권 진입』이라는 미술사적인 의미를 부여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미술의 영역을 전북지역에서 새롭게 구축해온 유휴열씨는 근래의 활발한 활동을 바탕으로 금년에는 일본 관서지역 화랑 미술제인 「오사카 아트페어」에 초대된데 이어 서울 금호미술관 초대전을 가짐으로써 지역작가의 활동영역을 새롭게 확대 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 전북 미술계에선 젊은 작가의 개인전이 전에 없이 더욱 활발하게 이어지면서 그 가능성을 돋보인 신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신인들의 작품전은 기존 단체전과는 양상을 달리 하는 기획, 주제전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인 다원주의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반영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화와 양적 확산에 비추어 그것의 질적 성숙을 가늠해내는데는 아무래도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양적확대에 반해 내용과 형식상의 빈곤, 그리고 획일성이 확연하게 드러난 금년 전북 미술계는 지역 미술의 독창적인 정서와 건강성을 확보하고 올바른 미술언어의 회복을 위해서는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정신과 이 지역에 대한 보다 진지한 애정과 관심이 더해져야 한다는 과제를 절실하게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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