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들어 서는 시점에서 문학계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꾸준하게 이어졌던 올해 우리 문학계는 민족문학 위기설과 그에 대한 반론 및 또 다시 재개된 리얼리즘 논쟁 등 다각적인 변화가 굵직한 움직임으로 떠올랐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의 원년이기도 한 올해 전북문학계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뒤를 잇는 신인작가들의 등단과 풍성한 작품집 출간, 다양하게 치러진 문학 관련 행사 등이 활발하게 이어 지면서 그 어느해보다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향적 성과의 이면에는 특정부문에 치우친 창작작업의 양상과 평론 활동의 미약함으로 전북 문학의 위상을 정립하는 실질적 작업이 없었다는 보다 절실한 문제점과 함께 이 지역의 역사와 현실을 담아내려는 치열한 작가의식과 소재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91년 한해동안 전북문학이 거두어낸 성과는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이지역 문인들과 후학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석정시비는 지역 문학계에 큰 의미를 부여한 수확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석정선생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이시비 건립은 전북문학의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남겼다. 이와 함께 가람 이병기 선생의 탄신 1백주년을 기념해 열린 「추모의 밤 및 가람문학 재조명 심포지엄」역시 가람의 문학세계를 보다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시도로서 전북문학의 맥을 찾아 나서는 일련의 의미있는 작업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올해 전북문학의 구조 변화 중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특징은 지난 88년에 창단, 3년 동안 소극적인 활동을 벌여 왔던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가 새로운 의지를 모아 재출범한 점이다. 3년 동안의 공백기를 딛고 새롭게 활동을 재개한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는 전주 시내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지를 펴내는 등 의욕적인 모습으로 전북지역에 민족문학의 발판을 다지는 작업으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민문협은 지난 10월 전주 온다라미술관에서 제1기 민족문학강좌를 열어 현기영 ,김용택, 김남주, 김영현씨 등을 강사로 초청, 민족문학이 안고 있는 현안 문제들을 점검하고 함께 생각하는 자리로 마련 일반인들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젊은 문학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민문협은 금년에 신인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들이 참여하면서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민족 문학의 새지평을 열었던점에서 올해의 가장 큰 수확으로 꼽힐 만하다.
새 집행부 출범과 함께 의욕을 다진 문인협회 전북지회는 지난 4월 금산사에서 「전북문단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진데 이어 여름에는 원광대에서 「마한백제문화의 우수성과 특수성」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고, 또한 제72회 전국체전기간에 열린 전라예술제 동안에는 「전환기, 전북문단의 새지평」이란 심포지엄을 개최, 이 지역 문학의 현실을 점검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또한 이때를 전후해 출간된 『전북문단』제9호는 「전북정신」이란 대주제 아래 전북지역의 고전문학과 근 현대 문학사 및 작가들을 재조명하여 자료적 가치가 더욱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는 지난 88년 이후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난 각종 문예지를 통한 이 지역 신인작가들의 잇따른 등단과 전주를 비롯한 각 지역의 문학동호인들의 동인지 발간이 두드러졌던 한해였다.
그러나 이같은 문인들의 급격한 양적팽창에도 불구하고 등단 문인들의 작품 중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은 역작은 많지 않아 진정한 문학적 힘을 발휘하는 작품의 창작이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는 작가의 작품이 치열한 의식과 진정한 삶의 뿌리에서 사회의 공감대를 갖고 잉태될 때 비로소 오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문단의 데뷔나 일련의 문학행위를 어떤 사회적 명예를 얻는 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안일한 일부의 작가의 의식이 문단 저변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뛰어난 작품활동을 보인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현행 각종 「문학상」에 대한 위상정립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문학상이 작가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킨다는 긍정론과 현행 문학상이 기존 문인수에 비해 너무 많아 자칫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될 우려가 크며, 문인들이 스스로 상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 한해동안 전북문단에는 창작집 출간이 풍성했던 것도 주목할 일이다.
특히 김난곤,백학기,안도현,이상인,최형씨를 비롯 다수의 시인들이 주목할만한 시집을 출간, 눈길을 끌었으며 수필, 시조집, 동화, 동시 등 창작집의 발간도 러시를 이뤘다.
그러나 예년과 마찬가지로 소설부문의 창작집 출간은 최정주,우한용씨 등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눈에 띄지 않는 등 타분야에 비해 극히 적어 균형있는 문학발전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같은 기존 문인들의 활동외에도 여러 문학 동호인회와 단체들의 각종 문학관련 행사들이 문학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 주목을 받았다.
이중 열린마당 아사달이 매달 열고 있는 「열린시 낭송의 밤」과 전주 시문학회 시창작교실의 열의를 비롯 문협 남원지부의 꾸준한 문학행사와 고창 모양문학동호인회의 의욕적인 활동 등은 올해 전북문단이 거둔 소중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시각속에 한해를 보낸 전북의 문학계는 앞으로 좀 더 내실을 다지며 일반독자들에게 다가서서 함께 하려는 진실된 노력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곧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역민의 살아가는 참 모습을 담아 내어야 하는 지역문학의 절실한 과제이며, 문학의 위상정립이라는, 문인들이 스스로 풀어내야 할 하나의 매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