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역’이란 주민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가는 역사적 공간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또 그렇게 살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넓게 보아 ‘지역문제’란 해당 지역주민들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요구와 권리가 내․외적 요인에 의해 억압당하고 제한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지역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일정한 공간적․생태학적 조건속에 존재하는 인간사회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을 지니며,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필연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문제의 내용 및 성격은 각 사회의 역사단계에 따라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출현은 사회의 공간적 조건(=사회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이전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즉 자본주의는 이전의 자급자족적인 자연경제를 해체시키면서 출현하였으며, 이에 따라 지역공동체도 해체도리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신하여 자본주의적 공간재편성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전통적 농업지역의 해체와 새로운 산업도시의 형성이다.
자본주의체제의 확대․발전(=독점자본화)에 따라 사회전반적 수준에서의 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되며, 이러한 자본의 운동은 사회의 공간적 분화를 주도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역사회의 구조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편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도 전체적으로 자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우리는 생산활동(=노동) 뿐 아니라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소비활동(=의․식․주 및 교육․문화활동등) 전반을 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우리 삶의 자본에의 의존 또는 종속은 자본의 성장에 따라 점차 심화되어 나갈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산업화 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지배적인 사회관계로 정착되었다. 특히 6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과정은 국가정책을 매개로 한 자본의 고도축적과정이었으며, 이것은 농업(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부문은 급속하게 축소되었으며, 이것은 농업(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부문은 급속하게 축소되었으며, 서울․경기지역 및 동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산업지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60년대 후반 이후 농촌지역으로부터 도시산업지역으로의 인구의 거대한 이동이 이루어졌으며, 이 결과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지역문제가 새롭게 발생하게 되었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식시키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자본의 확대재생산은 지역 및 지역주민의 삶에 대한 지배력의 강화로 나타난다. 그런데 자본의 지역에 대한 지배력 강화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지역주민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키게된다. 예컨대, 일산 분당에서의 신도시 건설 사업은 국가정책을 매개로 한 자본의 지역지배과정이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왔던 해당지역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국가는 지역개발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택난 해소 등을 신도시 건설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최소한 두가지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왜 하필이면 그곳이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도시 건설이 왜 독점자본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어거지가 아니다. 사실 작년에 독점자본에 정부가 허가한 골프장 건설부지는 신도시 건설 부지면적을 훨씬 상회하는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재벌이 소유한 비업무용 토지는 발표된 것만 하여도 수천만평에 이른다. 이처럼 자본이 소유한 토지는 제외시킨 채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어 있는 전북지역에서의 지역발전에 관한 논쟁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공간에서 그간 누적되어 왔던 무수한 지역문제들이 폭로되고 또 그만큼 많은 해결책들이 제시되겠지만, 분명한 점은 지역정책은 지역주민의 요구에 따라 지역주민의 주체적 참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지역으로의 자본침투는 다양한 형태상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끊임없이 확대․심화될 것이며, 이것은 지역주민의 생활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운동, 이것을 지역운동이라 한다면, 이것은 지역의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현재 지역내 조그마한 생활상의 요구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지역주민운동의 풍부한 사례와 그 발전의 과제들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 주고 있다.
2.
90년 7월 숭실대 기독교 사회연구소 주최로 열린 ‘도시지역운동세미나’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아 출판한 『도시 주민 지역운동』(한울,1990)은 바로 지역주민운동에의 실천적․이론적 관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도시지역운동에 대한 이론화의 시도(제1부), 지역운동과 부문운동의 관계에 관한 논의(제2부), 지역운동과 주민운동과의 관계에 관한 사례분석(제3부), 지역운동의 경험을 교환하는 토론(제4부) 등을 담고 있다.
제1부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지역구조의 변화 및 지역주민의 저항방식, 그리고 지역운동의 과제등을 이론적으로 점검하고 있으며, 제2부에서는 지역운동과 노동운동, 여성운동, 교회운동, 정당활동 등의 부문운동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논의와 함께 각 논문의 발표자와 방청자간의 토론을 수록하였다. 토론에서는 전체 사회운동과 지역주민운동과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논의되며, 각 부문운동과 지역운동의 연대방식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 3부는 몇 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민운동의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다. 빈민운동, 공해추방운동, 시민운동, 마을자치운동 등을 담고 있는 3부의 글들은 생상한 체험들을 제공하고 있어 지역문제의 과학적 분석을 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마지막으로 제4부는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노동․여성․빈민․시민운동분과로 나누어 토론한 내용을 보고서로 꾸며 놓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지역(주민) 운동의 일상적인 과제, 조직적 과제, 여타부문운동 및 여타 지역과의 사안별 연대방식등에 대한 활발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지난 수년간 정치권에서의 쟁점이 되어 왔던 ‘지방자치제’가 91년의 주요과제로 떠올랐다. 수십년 동안을 중앙집권화된 국가권력의 지배하에서 지역발전에 관한 요구들을 억압당해왔던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주민의 정치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 일단 반가운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자제의 실시 및 그 방법등에 관한 논의에서 정작 그 주체여야 할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완전히 소외되었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이것은 남(또는 그들)의 잔치가 되어버릴 위험도 있다.
지방자치제 선거가 실시될 91년 한해에는 지역발전에 관한 무수한 논의들이 난무할 것이다. 선거에 입후보할 후보들 치고 누구인들 지역의 문제에 관해 언급하지 않겠는가. 특히 그간의 경제성장과정에서 농민의 농지를 대상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국가가 제시하는 신도시 건설의 근거와 무관한 것이다. 또한 신도시에 세워진 아파트 등을 살펴보면 이것이 기본적으로 서민의 주택난 해소를 위한 것인가에 의문이 생긴다. 무주택자에게 안정된 주거환경을 마련해 주려면 신도시 건설은 국가에 의해 시행되었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지역주민이 국가 및 자본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역내 생활(또는 활동) 근거지를 갖고 있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삶을 왜곡․억압하는 조건들에 저항하여 자신들의 생활상의 요구와 이해를 적극 발현시켜 나가는 운동’을 ‘지역(주민)운동’이라 한다. 그동안 약간은 소홀했던 감이 없지 않은 지역주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최근 실천적․이론적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누적되어 왔던 지역문제가 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에 따란 지역주민의 저항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가정책을 매개로 한 자본의 지역침투는 계속될 것이고 보면 지역주민운동의 성패여부는 향후 사회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