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상품이 가격에 제한없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수입 직배영화관에 몰리는 인파를 보면서 우리굿에 대한 심한 갈증을 느끼던 터에 「호남 좌우도 풍물굿의 만남」이란 문화저널사의 창간 4주년 기념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만사 제쳐놓고 첫 공연장에 찾아갔다. 푸진 쇠소리와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장고 가락의 변화 무쌍함과 잡색들의 재능을 보는 맛도 있지만 풍물패 구성원 전원이 연출하는 일사 불란함과 신명을 같이 느껴보는 맛을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몇시간을 치고 끊임없이 뛰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풍물패의 여유로움은 가락이 점점 빨라지면서 급기야 풍물패와 구경꾼이 혼인일체가 된듯한 짜릿한 감동을 전달하였고, 이러한 감동은 우리 풍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기에 우리가 풍물을 찾고 아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라는 공동의 이익에 우선하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우선하는 ‘결사체’가 많은 요즈음 전북문화저널사가 옅어져가는 공동체 의식을 안타까워하며 풍물굿판을 기획한 데 대하여 힘찬 박수와 함께 앞으로의 기대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 풍물 굿판을 지켜내고 풍물의 장점인 신명성을 더욱 살리기 위해서는 몇가지 지켜야할 것과 보강 했으면 하는 점들이 있어 그 몇가지 점을 지적해 본다.
첫째, 장소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풍물은 당산굿을 지내면서 ‘잡귀잡신’을 몰아내고 ‘풍어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와 군사를 훈련시키고 싸움터에서 군대를 통솔하는 악으로 쓰여졌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풍물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서양악과 근본적으로는 다른 고유한 특징이기도 하다. 관객과 연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바램을 담아내고, 집단의 일치성을 고도로 발휘해야 하는 것이어서 모두가 대상이고 모두가 잡색 참여자 이다.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실내체육관 같은 평지의 마당이나 열린 공간이 아닌, 좁고 높은 무대를 장소로 선정함으로써 원천적으로 대중의 참여의 폭을 단절 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둘째, 참여 단체의 준비와 추죄측의 준비가 미비했던 것 같다.
주최측은 각 풍물패에 대한 특징과 관심있게 지켜볼 점 그리고 이 굿판을 통하여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지를 설명했어야 한다고 본다. 단지 자료집은 읽어 보라고 홍보하기 보다는 진행방법을 고민했더라면 더 큰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굿판에 참여했던 대중들이 굿이 끝나고 나서 단지 시각적 차이인 복장과 등장인물의 차이 이외에는 남는 것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를 반영하는 예라고 본다.
참여단체의 준비 정도는 2시와 5시에 시작하는 굿판이 조금 달랐다는 데서도 나타나지만 중요한 것은 「풍물을 통한 놀이 마당의 전형을 제시하고 보급 하는데 주력한다」는 대전제를 놓고 좌 우도가 만나 멋진 가락과 춤을 재창조해서 대중에게 선보인다든지, 풍물패의 지향점을 제시해보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좌도와 우도가 여러 가지로 분리되는 점만을 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셋째, 사물놀이는 우리 풍물의 영역을 분명 확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풍물이 갖는 공동체성, 현장성을 사물놀이패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확장 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많은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열린 공간에서의 힘찬 활동을 기대해 본다.
문화마당은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전수하고 이를 지켜 내려는 결의의 굿판이 될 때 오랜 생명력이 부여될 것이란 믿음을 다시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