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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 | 연재 [문화저널]
김두경의 옛말사랑시루밑 못막은 놈 허방에 빠지듯 한다
김두경 부안지역편집위원(2004-01-29 11:28:54)

요즈음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나 아니면 조카들, 그리고 TV에서 아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생일이 참 별 것이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 생신 보다도 온통 아이들 생일이 무슨 위대한 탄생이라도 되는양 별스런 날이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에 찰떡도 하고 식혜도 하고 호밧엿도 하여 자식 손자들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하는 풍경은 보기 힘든데 손자 생일에는 응접 탁자위에 촛불 휘황한 생크림 케익을 주빈으로 모시고 각종 과자와 과일, 꽃으로 장식하고 푹신한 안락의자에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이 둘러앉아 「생일 축하 합니다」도 아닌 「해피 버스데이 투유」를 손벽 맞추어 부르며 촛불 끄고 박수를 치는게 당연한 행사가 되었다.
또 돈에 정신 빠진 어떤 얼간이들은 호텔에서 아들 놈 친구들까지 초대해 ‘허파 버러지 데이 투유’를 한다나 어쩐다나.
하지만 우리는 안그랬다.
촛불을 한숨에 불어 끄는 정력 시험에, 옆에서 조금 입김을 보태 주는 것이 아니라 ‘에미야 찹쌀 여기 내놓았다. 우리 손주 개똥이 시루밑 막아주어라’
그랬다. 그 없던 시절에도 생일날 만큼은 할머니께서 찹쌀을 내놓으셨고 정 찹쌀이 없으면 수수참이라도 내놓으셨다.
그리고 시루도 크고 구멍이 많이 뚫린 옹기 시루를 썼지 생일날 만큼은 찰떡이 잘 익는 질시루는 쓰지 않았으며, 가능한 생일떡은 많이 하여 이웃집에 조금씩이라도 돌리며 우리 손주 생일임을 널리 알리셨으니 왜 그랬을까?
인생은 곳곳이 허방(함정)임을 아시는 우리네 할머니께서는 귀여운 손주들을 그 허방에 빠지도록 가만 두고 보지 못하였다.
시루에 뚫린 구멍은 단순히 떡을 피기위해 김을 올리는 구멍이 아니라 인생의 허방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을 이땅의 사람처럼 차진 찹쌀로 떡을 하여 먹고 붉은 팥을 놓아 귀신까지고 범접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김이 오를 때 수분을 흡수하여 떡이 수월하게 익도록 하는 질시루를 못쓰게 하고 조금 더디지만 마음이 더가야 더욱 찰지게 익는 옹기 시루를 썼으니, 이 정성의 떡을 온동네로 돌리며 우리 귀여운 손주 살아가다가 허방에 빠져 좌절하거든 손을 붙들어 달라고, 앞에 놓인 허방을 미리 알려 주라고 우리 손주가 이렇게 커가고 있다고 알리신 것이다.
그러니 부모없이 「시루밑 못막은 놈 허방에 빠지듯 한다」는데 이 풍요의 시절에 우선 먹기는 곳감이 단 경제라지만 - 허파버러지 데이 투유라니 에라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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