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1492년 콜롤버스가 신대륙(아메리카)을 발견했다고 배워왔다. 또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위치를 설명할 때 극동에 위치해 있다고 배웠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같은 이야기에는 뭔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면, 그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은 무엇인가? 「발견」(discover)이란 아무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덮어져 있어(cover) 세상의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덮개를 치움(dis-)으로써 깨닫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아무도 살지않고 비어있는 땅이었단 말인가? 그러기에 지구상의 그 누구도 콜롬버스 이전에 방대한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단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왜곡되고 잘못된 인식인 것이다. 콜롬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그곳은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잉카제국, 아스테카 제국, 마야문명 등을 이루고 살고 있던 땅이었다. 그당시 세계인구는 3억이 채 되지 못하였다. 발견된 땅에는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의 존재는 구라파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방대한 땅과 함께 콜롬버스에 의해 발견 된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 어디인가? 아마 삼척동자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 일 것이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내가 서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일 것이며, 또한 세계의 모든 곳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은 극동에 위치하고 있다고 얘기하는가? 어디에서 보아서 극동 또는 동아시아인가? 대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구라파에서 볼 때 한국은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두가지 예에서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모두 다 구라파 중심의 시각, 즉 강대국 중심의 시각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수백년을 넘게 사용하여 온 용어와 설명을 구태여 바꾸어서 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반대쪽에서 보는, 즉 약소국의 시각에서 세계를 봄으로써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한쪽의 일방적인 시각과 논리가 아닌 양쪽의 시각과 논리를 살펴 봄으로써 사실을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971년 우루과이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에 의해 쓰여진 「라틴아메리카의 파헤쳐진 혈관」(Las venas abiertas se America Latin)은 콜롬버스의 도래 이후로 약 5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대륙이 미국과 구라파 선진국들에게 어떻게 수탈되었는가를 중남미인의 시각에서 쓴 책이다. 선진국의 발전과 중남미 국가들의 저발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결부되어서 나타나졌다. 다시 말해, 선진국들의 풍요는 상당 부분 중남미국가들에서의 수탈의 결과였다. 이들 선진국들은 중남미국가들을 수탈하는 과정에서 발전, 합리 등의 이름으로 그들의 국가이익을 추구해 나갔으며 이는 중남미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곧 바로 종속, 비합리였다.
1971년 초판이 나온 후 7년동안 20판이 나올 정도로 수없이 많이 읽힌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탈된 대지 : 라틴아메리카 5백년사」라는 제목으로 박광순씨가 1988년 번역서(범문사)를 내 놓았다. 번역에 있어 아쉬운 점은 번역대본을 원서인 스페인어판을 사용하지 않고 영어로 번역된 영역판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재번역이 되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잘못 이해된 곳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관계에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이 중남미인, 즉 수탈된 자의 입장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그동안 지니치리만치 서구중심적 교육을 받아, 한편의 시각에만 의존하여 왔던 우리로서는 이제 시각을 보다 객관적으로 갖기 위해서 이책을 한번쯤 읽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중남미를 연구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