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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 | 연재 [문화저널]
『독자를 위한 현대문학이론』(1)
이종민 전북대 교수, 영문학/주간(2004-01-29 11:31:47)

【편집자 주 : 현대는 가히 이론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사회구성체 논의가 사회과학의 영역을 넘어 온 학문 및 운동 영역을 뜨겁게 달구더니 요즘에 와서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사회과학도들까지 들뜨게 하고 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의 경우 이러한 착잡한 이론적 논의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혹자는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여기며 애써 외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러한 논의를 현학적인 사람들의 자기 과시적인 ‘이론을 위한 이론’ 싸움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이론적 논의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줄뿐만 아니라 정체되어 있는, 아니면 전망을 상실한 우리 문화예술계에 신선한 돌파구를 제공해주리라 기대하고 있기도 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자신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며 실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제까지 소외되었던 자신의 입지를 보강하려 하기조차 한다.
우리가 이론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 논쟁에 끼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복잡한 논의구조 속에서 실제 작품이 생산되고 소통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략적이나마 이해가 필요해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복잡한 내용까지는 몰라도 그것의 탄생 배경 및 개략적 윤곽 및 다른 이론들과의 상이점들은 적어도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그것의 생산적 기능을 수용하든 그것의 역기능에 경계의 눈길을 보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그냥 도외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일 수 없다. 그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현학자들의 착잡한 주의주장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도 대략적인 길잡이는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포스트모더니즘 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잇는 것처럼 그것이 이제까지 없었던 ‘무슨 굉장한 미술’이 아니라 다양한 이론적 입장들의 하나라는 정체도 알게 될 것이고 그래야 그 최면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론의 최면에 함몰되어서도 안되지만 이런 이론에 대한 경계를 자신의 무지를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입장에서 번역 소개된다. 그 역사적 배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구 문학이론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그래서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있는 상황에 또 하나 혼란의 혹을 덧붙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해 뵈는 이론들의 가르마를 타주는 소박한 길잡이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1) 러시아 형식주의, 2) 맑시스트 이론, 3) 구조주의 이론, 4) 탈구조주의 이론, 5) 독자지향 이론, 6) 페미니스트 비평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각 이론의 전반적인 특성을 개괄하고 그 대표적인 주자들의 중요한 주의주장을 소개하며 이러한 이론들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아울러 개관하는 것으로 꾸며질 것이다. 특히 제 4장에서는 ‘신역사주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포스트모던’주의 주장들의 특성을 살필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들은 가능한 풀어 번역을 할 것이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간단한 역자 주를 첨가할 것이다. 이 번역의 텍스트로는 『독자를 위한 현대 문학이론 입문(A Reader's Guide to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제2판 하비스트 휫쉬잎 출판사(1989)을 사용했다. 저자 라만 셀든(Raman Selden)은 랭카스터 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무쪼록 이 작업이 착잡한 이론에 움츠리고 있을지도 모를 적지 않은 문학(뿐만 아니라 일반 문화예술) 애호가들에게 어깨를 펼 수 잇는 계기를 제공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서언 : 다양한 현대 문학이론들의 도전

최근까지만 해도 일반독자는 물론 전문적인 비평가들조차 문학이론의 발전전개를 이해하기 위하여 애쓸 이유가 없었다. 그 이론이란 꽤 세련된 전문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문학비평가라 자처하지만 사실은 철학자라 할 수 있는 몇몇 소수 전문인들만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문학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신문지상의 서평이든 라디오나 텔레비전 문예관련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책소개이든, 일반 독자를 향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존슨 박사(18세기 영국의 신고전주의 시인, 비평가)처럼, 위대한 문학 작품은 보편적인 것으로 인간 삶에 대한 일반적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가정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독자들에게도 특별한 지식이나 언어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평가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나 작품의 사회 역사적 배경, 그 인간적 관심사, 상상력이 넘치는 ‘천재성’ 및 위대한 문학작품의 시적 아름다움 등에 고나하여 편안하면서도 분별력 잇는 의견을 들려주면 된다. 바꿔 말해 비평은 우리들의 세계관이나 독자로서 우리들 자신에 대한 견해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 문학에 관한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이러한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지난 20여년동안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상식적 합의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들에 시달려야 했다. 영국인들은 대륙에서 밀려 들어오는 지적 중압감을 떨쳐버리는데 특히 익숙해 있었다. 우리들(영국인들)은 종종 독일 이론가들이 너무도 다루기 힘들며 프랑스인들은 완고한 합리론자들이라고 불평하곤 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적 쇼비니즘을 고수했으며 이 외국 침입자들을 막을 수 있었다.
1980년 콜린 맥케이브(영국의 구조주의자)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교수직 임명을 받지 못하게 되자 ‘구조주의’가 화제거리가 되었다. 구조주의자들과 캠브리지 대학내의 동조자들의 항의를 통하여 리비스 박사(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비평이론가)의 대학내에 틈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타임즈 문학부록』은 이 스캔들과 그 지적 배경에 관한 특집호를 때맞추어 발간하였다. 이것에 접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틀림없이 ‘맥케이브 사건’을 통하여 구조주의 이론가들의 스스로를 대중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 이전보다도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맥케이브의 구조주의에는 맑시즘의 기운이 서려있다거나 그의 구조주의적 접근이 사실은 구조주의에 대한 탈구조주의적 비판에 해당한다거나, 혹은 그에게 주로 영향을 준 것이 바로 프랑스작가 쟈크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구조주의다는 등의 설명은 다니 뿌리 깊은 편견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필자가 이 문제에 관한 안내 책자를 써보겠다는 과감한 결심을 하게된 것은 주로 현대 문학이론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이 그것을 명료화하려는 노력을 정당화해줄 만큼 충분히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은 이제 이론이라는 것을 경멸스럽게 내팽개쳐 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내팽개치기를 요구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논쟁적인 개념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이론이라는 몸에서 많은 피와 살을 발라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이론에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비난거리를 제공해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문제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 원래 이론의 진짜 얼얼한 맛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대충 간을 맞춘 음식을 기꺼이 받아 들이리라. 적은 말로 많은 것을 말하기 위하여 거친 단순화의 우를 범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러한 불가피한 단순화나 개괄적인 일반화에 오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왜 우리는 문학이론이라는 것과 씨름을 해야 하는가? 이 소동이 가라앉기를 단순히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인가? 이론의 실질적인 접목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가까운 장래에는 불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징후도 있다. 새로운 이론 잡지들이 출간되고 새로운 과정이 개설되며 이론적 문제들을 위한 학술회의들이 개최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비평적 자각이 새로운 세대의 문학교사들 사이에 분명해진다 해도 놀라서는 안된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일기와 글쓰기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체험과 이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첫째 이론에 대한 강조가 읽는 것을 소박한 행위로 과소평가하게 하는 경향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소설의 의미구조나 시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염두에 두게되면 우리는 더 이상 소설의 ‘사실성’이나 시의 ‘진지성’을 소박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게 될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자신들의 환상을 간직한채 순수성의 상실을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지한 독자라면 최근 중요 문학이론에 의해 제기되는 좀더 심각한 문제들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우리들 독서에 불임의 영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 대한 몰입을 다시 촉발시켜줄 것이다. 물론 자신의 독서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종류의 문학이론이든 아무것도 제공해주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이론이나 개념들이 문학작품에 대한 자신들 반응의 자발성을 손상시킬 뿐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들은 문학에 대한 ‘자발적’ 담화가 앞선 세대의 이론화 작업에 무의식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낌’, ‘상상력’, ‘천재성’, ‘진지성’ 그리고 ‘리얼리티’ 등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는 세월의 흐름에 의해 신성화되어 이제는 상식적인 말이 되어버린, 죽은 이론으로 가득한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는데 있어 모험적이고 탐구적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문학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모험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문학이론이란 바로 문학에 대하여 여러 가지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혹은 작품이나 독자 아니면 소위 ‘리얼리티’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론가도 부분적인 것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입장에서 다른 관점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포괄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하게 마련이다. 로만 제이콥슨이 제시한 다음의 언어소통에 관한 도식이 이러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화자 

문맥
메시지
접촉
부호
 청자


화자는 청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는 부호(보통은 화자나 청자가 익히 알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된다. 이 메시지는 문맥(혹은 지시 대상물)을 갖게 마련이며 이것은 접촉(매체 즉 일상적인 말, 전화, 글)을 통하여 전달된다. 문학을 논의할 때는 이 ‘접촉’이란 부분을 생략할 수 있다. 접촉이라는 것이 의례 인쇄된 언어(연극은 예외이지만)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 도표를 다음과 같이 다시 그릴 수 있다.
작자

문맥

부호
독자


제이콥슨은 여기에 언어 기능을 다음과 같이 첨부한다.

정서적

지시대상의 시적
메타언어적
함축적


우리가 만약 화자의 입장을 택한다면 우리는 언어의 환기적 기능에 주목을 할 것이고 만약 문맥에 주의를 집중한다면 언어의 지시적 기능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문학이론 역시 이러한 기능중의 하나를 강조하게 된다. 앞으로 살펴볼 주요 이론들을 예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낭만적

맑시즘적
형식주의적
구조주의적
독자지향


낭만적 이론들은 작가의 생각이나 삶을 강조하고 ‘독자비평’(혹은 현상학적 비평)은 독자의 체험에 중점을 두며 형식주의 이론은 글쓰기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서구 맑시스트의 경우 언어의 지시적 기능만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맑시스트 비평은 사회 역사적 문맥(context)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며, 구조주의 비평은 의미를 형성할 때 사용하는 부호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접근 방식이든 최상의 수준에서는 문학적 의사전달의 다른 차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 예들 들어 맑시스트 비평에서는 작가, 독자, 텍스트 모두가 일반적인 사회학적 시각속에 포괄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비평은 이 도식에 포함되지 않는데 그것은 다른 종류의 이론에 적용할 수 있는 의미의 ‘접근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비평은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이 모든 접근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현대비평이론에 대한 포괄적 조망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가장 도전적이고 두드러진 경향에 대한 안내를 의도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오랜, 그리고 다양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길버트 머레이, 제임스 프레이저, 모드 보드킨, 칼융, 노쓰롭 프라이 등의 작품과 관련된 신화비평은 제외시켰다. 그것이 대학에서나 대중문화의 주류에 끼어들지도 못했으며 앞으로 살펴볼 이론들 만큼 활발하게 기존의 생각에 도전을 한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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