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시작과 기원은 어디일까? 하는 의문은 어쩌면 인류의 시작에 관한 의문과 같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음악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 또 무엇을 위하여 음악을 해왔으며, 어떻게 해서 인류의 오랜 역사속에서 끊기지 않고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들은 그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이처럼 음악의 시작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들에 관해 이를 과학적으로 해명해 보려는 시도는 18세기 이래로 계속되어 왔는데 항상 큰 장애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조선조의 중요 음악서적인 「악학궤범」의 다음 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하구나! 음악의 어려움이여! 좋은 음악도 귀를 스쳐가면 곧 없어지고 없어지면 흔적이 없구나.” 이처럼 음악이란 뚜렷한 형체를 남기지 않는 무형의 산물이기에 인류의 오랜 역사속에서 음악이 자연의 일부처럼 인간과 그 생활을 함께 해왔지만 기록이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로 원시시대나 고대의 음악을 해명한다고 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의 음악을 연구함에 있어 많은 방법론들을 개발해 왔다. 그 몇 가지를 보면 첫째, 유아의 가창에서 음악의 원초적 형태를 발견하려는 심리학적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유아가 환경에 지배된다는 사실 때문에 그 한계를 드러냈고 둘째, 현재까지 남아있는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가 있었는데 이 역시 유물의 연대나 물량에 있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음악의 시작을 연구하기에는 미흡하였다. 셋째, 민족음악학(비교음악학)에 의해서 현존하는 자연민족의 음악을 관찰하는 방법이 있는데 오늘 이 방법이 가장 유력하기는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인류학적 연구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오랜 옛날의 음악은 아무 형체도 없고 기록된 것도 없기 때문에 위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연구되어진 성과를 토대로 개인적인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음악의 시작에 관해 추측해 보는 수 밖에는 없다고 하겠다.
음악의 시작에 관해서는 그동안 다아윈이 주로 새를 관찰하면서 제기한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성적충동설, 루소와 스펜서가 주장한 언어의 자연스러운 억양에서 음악선율의 기원을 찾았던 언어 억양설, 스펜서와 분트가 주장한 흥분된 감정에 의해서 나오는 음성에서 음악의 기원을 구하는 감정표출설, 바라셰크와 뷔히너가 주장한 집단노동의 과정에서 리듬현상의 기원을 찾는 집단노동설, 이외에도 신비로운 자연의 여러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의감으로 인한 종교적 행위에서 기원을 찾는 종교의식설, 음악의 마술적 기능에 착안한 마술설, 신호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음악이 발생했다는 신호설 등 많은 학설이 있었다. 이러한 학설들이 나름대로의 근거는 갖고 있었으나 모두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시작에 관한 의문은 주로 유적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나 종족음악, 민족음악학적 방법에 의해 다소나마 밝혀지고 있다. 음악의 시작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요약해 보면 대체로 이렇다.
인류의 삶과 더불어 음악의 발생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신체의 호흡이나 맥박, 또는 걸음걸이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느낄 수 있었으며,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이를 흉내내거나 모방해 보면서 선율을 느낄 수 있었고, 생활하면서 주변의 생활도구나 어떤 물건들을 두드려서 나는 인공적인 소리에 매력을 느껴 이를 청각적으로 재현해 보는 일을 재미삼게 되면서 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언어가 생기기 이전에는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게 되는데 이러한 소리들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을 길게 뺀다든지 혹은 높낮이를 둔다든지, 아니면 엑센트를 준다든지 하는 자연스런 변형을 가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간의 소리나 자연의 소리를 인위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생활주변의 어떤 기구들을 이용하여 이를 두드리거나 불어보거나 긁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악기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음악의 시작은 인간의 일상생활속에서 아주 평범하게 시작되었고 이것이 차츰 발전하면서 음악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음악은 분명히 인간생활에 어떤 기능을 했을텐데, 그렇다면 음악이 무엇을 위해서 사용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원시시대에 있어서 음악의 기능은 대체로 음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원시시대에는 음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이 곧 음악의 목적이며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시형태의 음악이 음악적으로 조금씩 정교해지고 인간의 생활이 조금씩 발전하여 집단을 이루면서 공동생활을 해 나가는 단계에 이르게 되자 음악은 인간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조금씩 부여받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성대를 이용한 소리나 기구를 이용한 인공적인 소리들이 자연환경의 모방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인간 스스로의 삶의 위안인 샤머니즘적 행위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해명되지 않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에 대한 두려움은 곧 신에 대한 경외감으로 나타나고 인간은 신에게 정중함을 표하기 위해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지던 음악을 신에 대한 제사에 사용하였다. 즉 종교음악이 탄생하게 된 것인데 이때 종교음악은 신을 모시는 것이기에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음악을 담당하던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지위를 갖게 되고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시대의 음악이 모두 종교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세속적인 인간생활속에서의 여러 행사, 즉 싸움, 집단노동, 축제 등에서 음악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음악이 어떤 신호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언어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고, 집단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피로를 덜기 위해 일노래(노동요)를 하기도 하고, 싸움을 하면서 힘을 돋우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고, 축제를 하는 동안에 흥을 내며 음악과 춤을 추는 등 인간의 세속적인 생활에서도 음악은 많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류에게 있어서 음악, 언어, 종교, 집단노동, 축제 등 인간 생활에 필요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존재해 왔는지를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인류의 기원에 관해서도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태인 바에야 현재까지의 과학적 해명을 근거로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는 수 밖에는 없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던 때를 대체로 구석기시대 부터로 보는데 이 시기의 인류는 주로 수렵이나 어로, 채집생활을 하던 시대로 사람들의 집단은 규모도 작고 고립되어 있었으며 인구밀도도 낮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조잡하기는 하지만 석기, 목기, 골각기를 이용한 생활도구를 갖고 있었으며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도 지니고 있었으며 자연환경이 좋고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는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그들의 생활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남겨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류생활에 있어서 본격적으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의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인데 이 시기에 인류는 기후의 변화로 인해 동식물의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인류의 식량 자급방법도 그동안의 자원약탈경제에서 생산경제로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생산도구가 개발되고 원시농경이 시작되면서 농업생산력이 높아져 식량의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자연히 인간의 생활방식도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인간집단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으며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분업화와 전문화, 교역 등이 발행하였고 계급이 분화하기 시작하였다. 또하 인군가 증가하면서 집단생활내에 독특한 문화적 특징들이 생겨나며 여러 가지 사회조직이나 제도 등이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성장의 가속화가 새로운 문명의 발생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간생활의 변화는 자연히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그동안의 음악은 개인적이고 개별적 수준에서 행해져 음악이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수준이었다면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게되고 집단적인 행사를 이루는 과정속에 음악이 사용되면서 이제 음악은 집단전체의 의사가 반영되고 인식의 공유를 이루는 음악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음악은 오늘날처럼 예술로서의 음악이나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닌 음악외적인 부대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직까지도 원시시대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자연민족의 음악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자연민족의 음악적 특징은 음악이 미(美)를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매우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음악과 춤이 결부되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이러한 사실들은 음악이 신비로운 것으로 부적과 같은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사회내부의 통합을 이루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또 음악은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고(이는 음악의 종교적 성격과 관련하여 음악인의 전문화나 계급적 지위획득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드럼이나 플루트 등 자연민족이 사용하는 악기들은 언어와 동등한 의미전달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악기가 음악연주의 보조수단이 아닌 음악 그자체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상에서 우리는 원시시대의 음악의 시작과 그 기능을 통해서 인류역사에 있어서 음악이 어떻게 발생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18세기 이래로 많은 음악학자나 문화인류학자들이 음악의 시작과 기원에 관해 많은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이것이 역사로 분명히 기록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분명하게 밝혀낼수는 없었다. 그러나 음악의 기원을 밝혀내려는 많은 시도들은 다양한 방법론의 개발과 함께 조금씩 그 실체를 선명하게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윤곽들을 보면 대체로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가며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환경의 소리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이를 모방하고 자신의 여러 가지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음악을 영위하였는데 이것이 인간생활의 조건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중에 그 기능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변화는 인간이 집단생활과 정착생활을 영위하게 되고 경제적 잉여를 생산해내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시작 되었는데 음악은 그 기능을 더욱 더 확대하면서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주도적인 위치에 이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더욱이 음악은 아주 오랜 원시시대부터 인간생활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자연민족의 음악적 특징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사회에서 요구하는 음악의 기능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음악인과 보통사람들과의 계급적인 분화를 가져오면서 인간의 의식수준을 지배하고 인간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