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역사, 철학, 정치, 경제를 다룬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중국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직접 다녀와서 만리장성과 자금성의 웅장함과 마오타이주의 맛을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의 외형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이며, 그것은 문학 즉 그들의 시나 소설, 또는 영화 등을 통해서 재미있고도 손쉽게 이룰 수 있다. 신영복이 번역한 중국 여류작가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사람아!』도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작가 다이호우잉은 1938년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집안에서는 최초로 학교에 들어가고 1956년 상해 화동사범대학에 입학한다. 1961년에는 소꿉친구와 결혼하고,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적극 참여 하였으나, 이후 1969년 반혁명분자로 비판받고 이혼을 당한다. 그때 비판받던 한 시인과 사랑에 빠지나 결혼이 허락되지 않자 결국 그 시인은 자살하고 만다. 그 후 1972년 상해 당 위원회의 창작그룹에 배치되었다가 1980년 이후 상해 대학에서 문예이론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는 작가의 이러한 생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선 이 소설의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손유에와 자오젠호안은 어렸을 때부터의 친구로서 같은 대학에 진학한다. 여기서 손유에는 선배 호젠후를 만나고 그들는 마음 속으로 서로 사랑을 느끼나, 손유에는 자오젠호안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호젠후의 구혼을 거절한다. 때마침 불어닥친 1957년의 反右派투쟁 과정에서 호젠후는 우파로 지목되고 손유에는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기에 이른다. 호젠후는 퇴교 처분을 받고 유랑생활을 하게 되며, 손유에는 졸업 후 자오젠호안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1965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보수파로 비판을 받고 당 간부 시류의 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겨난다. 더욱이 손유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그녀와의 결혼생활에 부담을 느끼던 자오젠호안은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고 재혼을 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손유에는 대학으로 돌아와 강의를 하며 딸 한한과 함께 살고, 20여년의 유랑생활 동안 한결같이 손유에를 마음에 새기며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의 관계를 사색하던 호젠후도 대학으로 돌아온다. 손유에는 동료교수인 홀아비 슈흥종의 은근한 구애에 동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20년전의 사랑없는 결혼을 뒤풀이하지 않고 결국 호젠후와 결합하게 된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와 같지만 소설 자체는 이러한 전개 과정을 연대순으로 친절히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 10명의 중요한 등장 인물이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일인칭 서술을 하고 있으며, 회상의 수법이나 대화 중의 간단한 언급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사건의 전개과정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왜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였는가? 그 이유를 작자 자신은 후기에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려고 하며, 이 소설이 ‘인간에 대한 인식과 이상을 표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인물의 영혼을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리얼리즘의 전통적 방법으로는 자신의 사상,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고 느끼고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탐구해가는 작가의 의도는 그 예술적 완성도와 관계없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간’을 묘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어째서 작가에게는 그토록 각별한 의미가 있는가? 왜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의 관계가 문제로 부각되는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대문학사와 정치사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중국문학은 1919년부터 1949년까지를 고전문학과는 구분되는 현대문학으로, 1950년 부터는 현대문학과 구분하여 當代문학으로 분류한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의 당대문학사는 다시 여러 단계를 거치나 크게 보아 문화대혁명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문혁전에는 1942년 모택동이 발표한 延安文藝講話의 이론에 따라 문학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즉 문학과 예술은 노동자, 농민, 병사를 위하여 봉사해야 하며, 보급(대중성)의 기초위에 예술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명제 아래 문학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7년 이후의 문학은 신시기 문학이라고 하여 이전과는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 출발점이 ‘傷痕문학’이다. 상흔문학이란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동안 중국인이 겪어야 했던 생활의 질곡과 그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말한다. 이 상흔문학에서 한걸음 나아가 문제의 폭로뿐 아니라 그 본질의 파악에 노력하는 작품들이 나오는데 이를 ‘反思문학’이라 한다. 이 반사문학의 주제와 제재는 중국 내부에 대한 자기 고발과 폭로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다시 ‘인간에 관한 문제’로 집중된다. 즉 문혁에서의 ‘계급적 인간’이 아닌 ‘진정으로 해방된 인간’을 추구하고 있으며, 특히 애정의 문제로부터 접근하고 있어 신시기 문학을 ‘사랑의 해방’으로 특징 지우기도 한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바로 이 반사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으로 그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중국현대사에 대한 이해이다. 1956의 ‘백가쟁명, 백화제방’, 1957년부터의 반우파투쟁, 1958년의 대약진정책의 실시와 그 실패, 1961년 유소기, 등소평 등의 경제조정정책(자본주의적 요소내포) 실시와 모택동의 정치적 위기, 1965년부터 71년까지의 문화대혁명, 1976년의 모택동 사망과 4인방의 체포, 그리고 이후 이글을 쓴 1980년가지의 과정을 개략적으로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작품은 한낱 연애소설로 전락하고 만다. 작가가 문혁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인간 개인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촞점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은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고, 오로지 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소외’당한 인간들의 고통과 새로운 모색만이 서술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시대배경과 당시 문단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사람아 아, 사람아!』는 우리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닌 큰 의미를 지닌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우리와는 다른 이념과 체제 속의 사람들은 어떠한 인간을 추구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려낸 인물들이기에 그 각각의 인물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그려진 손유에와 호젠후, 미래를 이끌어갈 시왕과 한한, 역사의 희생물로 그려지는 나약한 자오젠호안과 슈홍종 그리고 리이닝, 같은 희생자이면서도 속물 근성으로 자신을 유지하는 시류와 그의 아내 첸유리, 요뤄쇠. 이들 모두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의 인명은 발음상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본을 그대로 따랐음을 밝히며, 시왕이라는 인물에서 1989년의 천안문사태를 예견할 수도 있듯이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해주니, 재미있게 읽으며 중국의 문학, 역사, 철학을 동시에 체험하기를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