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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 | 칼럼·시평 [서평]
『지역감정 연구』(김종철, 최장집외, 1991, 학민사)
지역사회연구모임(2004-01-29 11:39:02)

92년 한 해에는 법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총선과 대통령 선거, 기초와 광역 두 차례의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단체장선거는 연기됨)등 네차례의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67년 6대 대통령 선거이후 최근의 지방의원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철만 되면 우리사회에서 대중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역감정이 거대한 힘으로 되살아 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사외에 있어 지역감정, 지역갈등의 문제는 60년대 이래 추진된 경제성장 우선정책으로 심화되어 왔으며, 우리사회에서 호영남대립을 정점으로 하는 지역감정은 61년 군사쿠데타로 민선정부를 뒤엎은 박정권이 정통성과 도덕성이 없는 권력의 기반을 다지고 장기집권을 추진하려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다. 박정권이 이렇게 악용한 지역감정은 80년대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로 발전하게 되며 87년 6월 항쟁이후 87년말 대통령석거와 88년 4.26총선에서 뚜렷하게 표출되었다.
이렇게 표출된 지역감정은 몇차례의 선거과정에서 현상적으로 드러난 정치적 결과 때문이 아니라 민주변혁과정에서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감정의 극복을 위하여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을 필요로 한다.
지역감정이라고 통칭되는 지역문제를 연구하고 극복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한 논문들을 모아 놓은 대표적인 책은 『지역감정 연구』(김종철, 최장집외, 1991, 학민사)이다. 이 책에는 1부 지역감정과 한국사회, 2부 지역감정의 어제와 오늘, 3부 지역감정의 사회심리, 4부 지역감정과 정치적 책임 등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18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인 김종철의 「지역감정 어떻게 볼 것인가」는 “우리사회의 정치제제와 지배구조를 형성하는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데올리기는 지역감정”이라고 보고 “이 조작된 이데올로기가 권력의 구조와 부의 분배, 사회구성원들의 심리와 정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칠 때 그것은 그 어떤 모순보다도 먼저해결”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지역갈등은 “영남인 대 호남인의 치졸한 원한이나 반감이 아닌 즉 전라도 민중과 경상도 민중간의 갈등이 아니라 전라도민중과 지배집단간의 갈등”이며 지역감정과 지역패권주의의 피해자는 “지역패권주의에 따른 한국경영에서 소외된 전라도 사람들과 경상도 이외의 지역사람들이며, 경상도 지역의 농민과 노동자들도 대구, 경북정권이 밀고나온 자본가를 살찌우고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정책 때문에 소외당해 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대 최장집교수의 「지역감정의 지배이데올로기적 기능」은 “지역감정과 같은 비합리적인 집단적. 심리적 계기들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역감정을 “6월항쟁이후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권력블록이 기존의 반공주의와 자본주의적 발전주의라는 핵심적 이데올로기의 동원만을 통해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특정의 조건하에서 그들에 의해 새로이 동원된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유형”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교수는 “지역감정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라고 평가하고 6월항쟁으로 위기에 몰린 집권세력이 “사상 유래없이 강력해진 반군부독재민주동맹을 약화”시킬 방법으로 “고전적인 분할지배전략”을 택하였으며 그 핵심이 “사실을 은폐하고 현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도록 하는 허위의식을 유발해 내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감정이라 보고 있다.
지역감정의 원인을 통계분석과 국민의식조사를 통해서 연구하고 있는 논문으로 「오늘의 지역감정의 실태」(박용남), 「사회심리적으로 본 지역감정」(민경환), 「지역간의 사회적 거리감」(나간채), 「연고주의와 지역감정」(홍동식)등이 실려 있다. 이들 논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한국사회에 서의 지역감정의 문제는 호남인에 대하여 비호남인들이 지니는 편견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호남인의 지역감정은 현실적 차별에 초점을 맞춘 반면 영남인의 지역감정은 호남인의 성격 및 행동양식(고정관념, 부적 관념, 사회적 차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제2부 지역감정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지역갈등의 역사」(이병휴), 「지역격차의 태동」(문석남), 「광주민주화운동과 지역문제」(정근식), 「제6공화국과 지역감정의 심화」(김만흠)등의 논문이 실려 있다. 2부에서는 모두 동일한 시각에 입각하여 서술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갈등의 역사를 한민족 형성에서부터 제6공화국까지 각각 검토하고 있는 글들이다. 이병휴교수는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국가간의 대립이나 지배층의 정지적 입장차이로 지역간의 대립이 있었으나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문석남교수는 지역격차의 태동기인 해방이후부터 60년대까지의 기간을 경제적 측면에서 격차의 구조적 틀이 잡히기 시작한 시기라고 보고 그 요인으로 해방 이후 토지개혁의 실패와 자유연고성 투자성향등을 지적하고 있으며 가장 결정적 요소로 지역편중적 개발정책과 정권의 독재성을 들고 있다.
정근식 교수는 “광주민중항쟁을 보는 지배계급의 시각은 우발적 사건, 특정지역의 사건으로 축소하려는 경향과 특정지역 주민의 사회심리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1979년 10월에서 1980년 6월까지의 시기는 “한국의 파시즘적 정치구조의 재편기로,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독점자본의 요구에 따른 정치권력의 재편기”라고 성격규정을 내리고 있다. 또한 광주민중항쟁을 자본주의 발전과 속성인 지역불균등발전과 지배블럭(독점자본, 군부, 고위관료 등)의 상호작용과 관련시켜 볼 때 지배블럭이 선택할 수 잇는 지역은 독점자본 진영의 진출이 적고 자기희생이 가장 적은 지역이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만흠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지역갈등은 지역간의 갈등이 아니라 지배모순을 중첩적으로 부과받은 특정지역과 지배집단간의 갈등”으로 파악하여 전라도 민중과 경상도 민중간의 갈등이 아니라 전라도 민중과 지배지단간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이 책 3부에 있는 「지역감정과 지방신문」(김영호), 「사투리의 정치학」(이두엽)등의 논문은 지역감정과 언론과의 관계를 밝히고 있는 글이다. 이들 필자들은 신문과 TV가 지역감정을 확대, 심화, 조장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언론의 정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현상의 배후에 가려진 사실들에 주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에 있는 김용학 교수의 「엘리트층원․탈락의 지역격차」, 그리고 4부의 「정치․행정과 지역감정」(최문성), 「경제․개발의 격차와 지역감정」(최원규), 「제13대 대통령선거 투표행태 연구」(깅형국), 「지역개발의 새로운 주제로서 지역주의」(권태준), 「탈지역정치의 잠재력과 민주발전」(한상진) 등의 논문들은 각각 지역감정의 해소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실려있는 논문들이 일관된 입장에서 지역감정, 지역문제를 정리하고 있는 글들만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읽을 때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실려 있는 논문들은 크게 두가지 시각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는 견해가 있는데 이들에 따르면 지역감정이 지역간의 사회경제적 격차, 권력기구 및 상층관료조직의 엘리트층원의 지역간 차별, 대기업에서 호남지역출신의 배제등의 지역문제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 해결책도 자본투자를 통한 지역개발, 관료기구나 대기업인사 층원에서 지역적 차별의 철폐, 지역간 교류의 확대를 통한 차별의식의 철폐등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지역문제에 대한 이해는 객관적 현상에 대한 파악이기는 하나 자칫하면 지역감정을 부추길뿐만 아니라 그 해결을 지배세력에 의존하려 한다(이러한 견해에 대한 정리와 비판은 「지역감정, 그 몇가지 신화의 제거」(이성호), 『문화저널』1991년 8월호 참조바람). 다른 하나는 지역감정을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지배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동원된 지배이데올로기로 파악하는 견해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배세력은 지역감정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을 통하여 사호의 계급간 지배 - 피지배관계를 지역간의 지배 - 피지배관계로 왜곡․전도시킴으로써 자신의 지배구조속에서 형성․심화된 체제모순을 은폐시키고, 동시에 민중운동진영을 지역적으로 분할시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견해는 이 책의 김종철, 최장집, 정근식, 김만흠 등의 글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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