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3 | 칼럼·시평 [시]
‘구부러진 역사’
이희찬(2004-01-29 11:43:45)
구부러진 역사여
넌 어떤 놈이냐
너는 언제나 여우처럼 간사하였구나
너는 언제나 강한 자의 편을 들어
개처럼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었구나
사람답게 살고파 몸부림치던
숱한 민중들을 외면하고
너는 너 좋을대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였구나
사람들을 짓밟고 서서
사람들의 기름을 쥐어짜며
권력자의 비위나 맞추는 대변인 역할이
정녕 그렇게도 달콤하더냐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는 자처럼
너는 진실을 독점했지만
너는 적당히 정직했고 적당히 거짓되었구나
구부러진 역사여
너는 도대체 어떤 놈이냐
네가 사람들을 끝끝내 속일 줄 알았더냐
아니다 아니다
너는 지금 당장 이리 내려와 무릎을 꿇어라
가증하고 뻔뻔스러운 너를 고발하는
저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자들이
일제히 원통함을 터뜨렸나니
네 두 귀가 터질 것 같지 않느냐
자 똑똑히 보아라
너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긴 두루마리가 펼쳐졌도다
너 구부러진 역사여
너는 어서 단두대에 목을 내놓아라
이제야말로 너를 처단할 때가 왔도다
약 력
1954년 전주출생
198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당선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