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화저널」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년전의 일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전부터 안면은 있었지만 왜소한 몸집하며 투박한 생김 생김이 나의 주위를 끌지 못하였다.
「문화저널」의 면면을 헤아리지 못했던 독자들도 그러하였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밤기차안에서 「문화저널」을 다시 만났다. 가방속 읽을거리들이 바닥을 드러낼 때, 불가피한 선택으로 「문화저널」을 다시 만났다. 그때야 비로소 「문화저널」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그 소박함이 더욱 빛나는 우리의 그릇, 질그릇을 만났다. 나는 그렇게 「문화저널」을 만났고 「문화저널」의 벗이 되었다.
92년 1월호(통권 44호) 「문화저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첫째, 표지 디자인의 변화가 보여주는 그 「신선함」은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둘째, 91년 전북예술을 총결산하는 특집기획은 92년 전북예술을 앞가름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앙의 문화독점으로 전북예술에 대해서는 소홀함이 많았다. 작은 성과나마 제 것을 추스르고, 반성하는 마당이 되어 그 의의가 더욱 빛낫다.
셋째, 1894년 농민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지면배려에 대해서는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문화저널」혼자서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에 대다수 전북사람이 방관만 하고 있기에 부끄러움이 앞서기도 했다.
끝으로, 「문화저널」을 만나면서 아쉬움이 있었다면 편집에 있어서 사진에 대한 자리매김 문제이다. 기사 중요도에 비해 사진이 너무 작거나 크거나 한 문제, 사진이 한 장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글로만 채워지는 면구성 문제 등 어려운 여건이겠지만 세심한 배려를 기대한다.
오늘의 조간, 석간, 사보, 광고지, 스포츠신문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매체의 홍수는 매체수용자에게는 또 하나의 공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질그릇같은, 새벽별 같은 매체를 기다리며 심호흡 한다.
새봄을 열어 제낄 「문화저널」다음호를 기다린다.